[2017하반기*함께가는여성] 민우ing_연관검색어 ‘억울하게’, ‘실수로’, ‘호기심에’ 성폭력에 관한 아무말, 이제는 바꾸고 싶다!
★민우ing
연관검색어 ‘억울하게’, ‘실수로’, ‘호기심에’
성폭력에 관한 아무말, 이제는 바꾸고 싶다!
도미(김현지) | 여는 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순박한 청년이 화려한 도시의 불빛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뽀뽀 해주고 싶다는 말에 기분이 나빠, 가해자의 터치를 추행이라고 신고한 것입니다”
막무가내로 달려가는 재판동행지원단(2013~2014), 성폭력피해에 공감하는 첫사람 재판동행단(2015~현재)이 성폭력 재판 방청을 하러 간지도 5년이 흘렀다. 재판에는 어김없이 ‘아무말’이 준비되어있다. 주로 피고인 변호사가 선처를 호소하거나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공격하기 위해 하는 말이지만, 가끔은 판사와 검사도 ‘아무말’을 한다. “성경험 유무가 유무죄 판단에 영향 준다”, “피해 학생들은 예뻤나요?”* 같은 사례가 그렇다.
*2016 서울○○지방법원 성폭력전담재판부 첫사람 재판모니터링 중
판사, 검사, 피고인 변호사의 발언만 놓고 보면 놀랍지만, 많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이러한 질문(?)은 익숙하다. 성폭력에 대한 통념이 강한 사회에서는 사건과 무관한 성경험과 개인적인 사생활 등이 성폭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리고, 피해자가 계속 피해를 증명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주변에 자신의 신상이 알려져 입방아에 오르고, ‘왜 그 자리에 있었냐’ 따위의 비난과 의심을 받는 상황이 사건 그 자체보다 더 힘들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을 ‘2차 피해’라고 하지만, 대개 위와 같은 질문들은 결론이 나기 전까지 ‘합리적인 의심’이자 가해자가 당연히 할 수 있는 반론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래서 올해 ‘‘미’간에 힘을 주고 ‘어’이 없는 성폭력재판부와 피고인의 아무말을 ‘캣’치한다!’는 의미로 꾸려진 미어캣기획단은, 성폭력전담재판부 운영현황을 조사하면서 동시에 ‘성폭력 변호 광고’를 샅샅이 분석해보기로 했다.
광고로 보는 가해의 언어: ‘억울’, ‘실수’, ‘호기심’
“말 못할 억울한 일로 고통 받고 계십니까? 억울하도록 과중한 처벌, 그것만은 반드시 피해야합니다- 부당한 처벌을 무죄, 불기소, 집행유예로” 지하철 성폭력 피고인 변호사 광고가 SNS를 뜨겁게 달군 적이 있었다. 이 모든 광고 문구들을 단순히 피고인의 법적 권리, 방어권을 위한 정보제공으로 보아야 할까?
미어캣기획단과 함께 들여다본 광고는 가해자 서사의 결정체였다. 아무런 단서 없이 ‘억울하게’, ‘실수로’, ‘호기심에’를 검색했는데도 성폭력 가해 변호 광고와 성폭력 가해자의 문의글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성폭력 광고는 그 양에 있어서 타 형사 광고에 비해 압도적인 비율을 자랑한다. 한 포털사이트 9월 24일 검색 기준, 성범죄 키워드로만 46건의 광고가 뜨는 데 비해 사기 변호 광고는 26건, 폭행은 13건, 절도 8건, 강도 3건 정도에 불과했다.
거의 모든 성폭력 광고는 “성폭력은 엄중하게 처벌되는 범죄로서 신상공개처분과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까지 당할 수 있으니 수사단계부터 유능한 성폭력 ‘전문’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성폭력이 정말로 ‘엄정처벌’이 약속된 범죄였나? 미어캣기획단의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 된 최근 3년간 서울지방법원 성폭력사건 재판 결과는 집행유예가 27.9%, 벌금형이 41.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작년 상반기 검찰의 기소율은 34.5%에 그친다.
변호사 광고 속의 성폭력은 이러한 사실과는 상관없이, ‘착각과 오해 혹은 실수로 인한 우발적 행위’, ‘호기심에 한 한 번의 실수’ 등 이해하고 넘어갈만한 가벼운 사건으로 치부된다. 정확한 처벌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성폭력 가해자를 괴물화하는 통념과 포퓰리즘식으로 난립한 극단적 처벌조항 몇 가지가 성폭력 피고인 변호사 광고의 홍보 전략이 되고 있는 것이다.
꽃뱀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한 기사형 광고는 “여타 범죄는 근 10년간 감소한 반면 성범죄는 약 117%의 증가율을 보였다”며 이 수치가 억울하게 성폭력 혐의를 받은 사람들 역시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라는 엉뚱한 결론을 늘어놓기도 했다. 급격하게 증가한 성범죄가 무고한 사람을 양산한다는 법무법인의 광고와 달리, 여전히 많은 피해자들은 증거가 없거나 가해자가 아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무고죄 피의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선뜻 문제제기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1.9%에 머무르는 성폭력 신고율*과 무고죄 역고소를 걱정하는 피해자들의 처지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출처: 2016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 여성가족부
그러나 광고들은 엄연한 준강간 가해를 ‘남녀 사이에 술 먹다보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일’로 포장하고 여성들의 허위고소 가능성을 의심한다. 특히 연예인에 의한 성폭력 사건은 ‘무고한 남성이 많다’는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단골 소재이다. 성폭력 무고에 관한 통계조차 없는 상황임에도, 광고들은 전체 무고 증가 통계를 예로 들며 ‘합의금을 목적으로 접근하는 사례가 많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었다.
그 밖에도 성폭력 피고인 변호사 광고의 문제점은 많다. 사법체계가 피해자의 말만 듣고 처벌한다는 불신을 부추기고, ‘성범죄전문’을 내걸고 무죄와 경감을 확신하며* 법무법인 홈페이지부터 카페, 블로그, 기사형광고, 그것도 모자라 변호사가 직접 질문을 올리고 답변하는 것으로 밝혀진 지식검색이 판을 친다. 가해의 언어를 그대로 차용한 성폭력 피고인 변호사 광고는 가해자가 반성할 틈을 주지 않는다. 무엇이 이렇게 성폭력 피고인 변호사 소송시장을 키워온 것일까. 난립하는 성폭력 피고인 변호 광고들은 가해자에게 이입하고 피해자를 의심하며 ‘진짜’ 성폭력을 선별해온 우리 사회의 거울상이기도 하다.
*대한변호사협회 규정에 의하면 광고의 ‘전문’표시는 전문분야등록을 한 변호사만이 사용할 수 있다.
성폭력 가해의 언어를 돌파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
성폭력 통계는 언제나 가해자는 괴물이 아니며, 일상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이야기해왔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상담 통계에 따르면,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 피해는 2015년 76.1%, 2016년 83.2%에 달한다. 9월 29일 <연관검색어: 억울하게, 실수로, 호기심에> 발표회의 토크쇼 패널로 함께한 김홍미리 연구활동가는 “‘그런 가해자’는 없다는 것과 ‘누구라도 가해자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반성이 빨라질 수 있을 것” 이라는 이야기를 남겼다.
실제 많은 성폭력 가해자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한다. 가해자가 ‘괴물’로 형상화될수록 ‘억울한’ 가해자는 늘어난다. 가해자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피해자다워야 한다’는 통념과도 맞닿는다. 성폭력을 타자화하는 대신 성폭력의 일상성에 주목하는 것이야말로 가해의 언어에 맞서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노력일 것이다.
덧붙여 이선미 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전 활동가는, “가해자가 속한 조직에서 내부적으로 성찰하고 정비하려고 할 경우 가해자도 교육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조직에서 ‘이번만 잘 넘겨라’라는 격려를 받는 가해자에게 교육은 효과도 의미도 없다”는 경험을 들려주었다. 성폭력 사건을 직면하게 되었을 때, 주변사람들이 가해 혹은 가해자와 어떻게 만나야하는지를 압축적으로 담은 한마디였다.
이 날 발표회 마지막 순서로, 현수막에 참여자들과 함께 성폭력 가해의 언어에 맞서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적었다. “가해에 대한 인정”, “반성”, “반드시 처벌받는”, “바로잡음”, “피해에 공감하는”… 참여자들이 남긴 희망사항들은 구구절절한 가해자의 언어에 비해 이렇게나 단순하고 명쾌했다. 성폭력에 관한 연관검색어가 ‘억울’, ‘실수’, ‘호기심’이 아니라, ‘깨끗한 반성’, ‘확실한 처벌’, 그리고 ‘공감에 바탕한 새로운 관계맺기’로 바뀌는 날을 기대해본다.
❚도미
한 해가 너무 빨리 지나가고 있어서 제 마음이 다 억울한 지경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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