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하반기*함께가는여성] 문화산책_혐오에 맞서는 아름다움, 드랙
★문화산책
혐오에 맞서는 아름다움, 드랙
민문(진윤선) | 여는 민우회 회원
성소수자 운동과 여성 운동은 젠더라는 주제 아래 가깝게 맞닿아있는 인권운동이다. 젠더 논의와 그를 둘러싼 혐오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싸움이기도 하고, 현시대의 문화의 일부이기도 하며, 누군가의 삶과 죽음이기도 하다. 그 치열함 사이에서 꽃피고 있는 문화, 드랙을 소개한다.
로고TV의 히트 프로그램 <루폴의 드랙레이스>와 함께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드랙 문화는 여느 장르와 다름없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예술 장르이다. 드랙은 오랫동안 크로스드레싱(사회적으로 정해진 자신의 성이 아닌 다른 성의 표현-의복, 행동 등-을 차용하는 것)으로 정의됐지만, 여러 정치적 의도와 해석으로 다양한 퍼포먼스를 하는 드랙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그 의미가 좀 더 넓은 "성별 이분법과 고정관념 부수기"로 발전하고 있다. 드랙(drag)은 dressed as girl(여자아이처럼 입기)의 약자로, 그 이름이 뜻하듯 오랫동안 남성이 여장을 하는 문화였다. 현재의 드랙은 연극계에서 시작한 문화를 성소수자 사회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발전시킨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큰 주춧돌이 된 스톤월 항쟁부터 현재의 <루폴의 드랙레이스>(이하 루드레)에 이르기까지 드랙과 드랙인들은 사회와 정치, 대중문화와 패션, 그리고 예술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아직도 여러 가지 혐오가 실재하는 사회에서 역동하고 성장하는 문화가 되었다.
이제는 성소수자 문화 내에 크게 자리 잡은 드랙은 성소수자 사회, 나아가 주류 사회가 가진 문제를 공유한다. 성별 이분법적 이성애 중심주의 사회가 혐오를 휘두를 때 성소수자를 한 카테고리로 묶을 때가 많지만, 그 안에도 주류 사회와 같이 인종, 젠더, 장애, 부, 학력 등의 교차적 차별이 존재한다. <루드레>를 보며 열렬한 덕질을 하면서도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드랙퀸들이 차용하는 과장된 여성성이 주류 사회의 여성 혐오와 연결되어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몇몇 드랙 용어들은 대놓고 여성 혐오적이기도 하다. "매우 여성스럽다"를 뜻하는 "fishy"란 드랙 용어는 영어 직역을 하면 "비린내가 난다"는 뜻인데, 그 어원은 여성의 보지에서 비린내가 날 것 같다는 표현에서 온 것이다. 드랙 문화가 게이 남성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만큼, 그들의 남성 권력도 같이 문화에 녹아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렬한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는 내가 드랙 문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 것은 자가비판을 통한 발전이 가능한 문화이며 젠더를 둘러싼 모든 혐오와 싸우는 가장 아름답고 즐거운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드랙은 단순히 여장이나 남장을 하는 게 아니라 과장된 성을 표현함으로써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여성성"과 "남성성" 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한다.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동시에 유색인종과 몸집이 큰 사람들도 환영하며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앞장서 싸우는 자기 표현의 문화인 드랙, 완전무결하진 않지만 나는 지금의 드랙 문화가 향하는 방향에 많은 기대를 한다. 드랙은 결국 "여성은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의 증명이 아닐까? 나는 이 문화에 매료되어 내 젠더를 다시 고민해보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직접 드랙퀸이 되기로 했다. 물론 여성으로서 과장된 여성성을 표현하는 것은 내가 힘들여 푼 "코르셋(내면화된 여성 혐오)"을 다시 입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드랙퀸이 되는 것으로 내 욕망에 솔직해짐과 동시에 어릴 적 꿈을 실현시키는 중이다. 루폴을 포함해 <루드레>에 출연한 한국계 드랙퀸 김치나 제일 최근 우승자인 사샤 벨루어, 시즌3 우승자인 라쟈 등 앞서나간 상상을 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받아 아름다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고,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하는 쪽이 이 지난한 싸움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만들어줄 거라고 믿는다.
<루드레>와 같은 주류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아직 지정 성별 여성인 드랙인을 참가자로 받고 있지 않은 만큼, 여성 드랙인들의 입지는 아직도 좁다. "서울드랙(@dragnerd_seoul)"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드랙과 드랙 팬 문화는 페미니즘의 재부상과 비슷한 시기에 자라나기 시작한 덕인지, 내가 만나본 한국의 드랙팬들은 모두 페미니스트들이었다. 페미니즘은 사회적/역사적으로 정의되어온 모든 여성적 이미지를 거부하는 운동이 아니라 여성을 포함한 모든 소수자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자신 있고 행복해지기 위한 운동이 아니던가. 짧은 머리에 노브라로 앞뒤 시스루를 입고 다녀도, 속눈썹을 열다섯 개 붙이고 패티 코트를 세 개씩 입고 다녀도 폭력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세상이 될 수 있게 싸우는 것이 페미니즘이고 인권운동이다. 같은 목적을 위해 싸우는 우리는 이렇게 각자의 방법을 택하면 되는 게 아닐까?
❚민문
드랙 이름은 뽀뽀. 여러분 같이 드랙 덕질 해요! 트위터&인스타: @PoPpoFa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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