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상반기*함께가는여성] 민우ing_‘02-335-1858’은 지금!
민우ing
‘02-335-1858’은 지금!
로이(정예원)
여는 민우회 성폭력상담소 | 매일 가던 작은 동산이 그리워 로즈마리를 키워요
쌓여진 말하기, 또 다른 말하기를 가능하게 하다
한 포털 사이트에 “제가 강간으로 결혼했음을 이제야 알았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2017년 말 한 가구회사에서 있었던 성폭력사건 보도를 접한 후 자신의 예전 경험에 비로소 성폭력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는 한 여성의 얘기였다. 어떤 경험을 재구성하고 명명하는 것이 누군가의 말하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동시에 수많은 말하기들이 스쳐지나간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운동,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서울대 교수 성희롱 사건,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 #○○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운동 등.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어떤 말하기는 또 다른 말하기를 가능하게 하는 발판이 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 어때왔는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여성들의 힘 있는 목소리들이 일상적으로 모여드는 곳이 있다. 바로 성폭력상담소의 상담전화이다. 최근 #MeToo 흐름과 함께 상담이 늘어났다. 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는 2018년 1월부터 3월까지, 총 315회의 성폭력 상담이 이루어졌다. 이는 전년도 같은 기간의 상담횟수인 226회에 비해 39.4% 증가한 수치이다. 피해자들은 “미투운동 보면서 나도 말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부끄러워해야 하잖아요”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에 대한 메시지가 ‘피해자가 쉬쉬해야 하는 일’에서 ‘말할 수 있으며 문제제기할 수 있는 일’로 점차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더 많은 말하기가 여전히 필요하다.
오래전 성폭력 상담이 두드러져
두드러지는 경향은 자신 혹은 주변인의 과거 성폭력 피해에 대한 상담이다. 수년 전 사건부터 수십 년 전 성폭력 사건에 이르기까지 오래 전에 발생한 사건들이며 가해자는 주로 사촌오빠, 이웃아저씨, 이웃오빠, 친부, 교사, 선배, 동기 등으로 피해자와의 신뢰관계와 친분을 이용하여 가해를 한다. 성폭력 가해자들은 대부분 ‘그는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같은 분석의 대상이라기보다 우리 일상에 있는 존재이며, 사회적 지위로 인한 영향력이 큰 ‘권력자’에 국한되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가까운 관계망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이 왜 긴 시간동안 드러날 수 없었는지를 살피기 위해, 그 침묵의 시간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피해자의 맥락에 주목해야 한다. 피해자가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이유는 정말 다양하다. 아동시기에 피해가 있어 자신의 경험을 성폭력이라고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으며, 뭔가 문제라고는 감각했지만 나중에서야 성폭력이었다고 알게 되거나, 자신과 가까운 사이에 있는 사람이 가해의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이라고 규정하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워 그 상황을 잊으려 하기도 한다. 가해자가 술에 취해서 혹은 실수로 한 행동일 뿐일 것이니 자신만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하다가 문제제기 시점을 놓친 경우, 피해에 대해 얘기하면 오히려 자신이 의심받거나 지지받지 못할 것이 예상되어 말하지 못했거나, 피해를 알리는 것이 피해자에게 좋지 못하다는 통념이 강력하여 말할 수 없어서, 가해자가 주위 사람들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어서 피해를 말하면 ‘내가 아는 그 사람은 그럴 리없다’라는 반응이 돌아올 거란 예상이 되어서 등. 피해자들은 간결하게 한 문장으로 설명되지 않는 복잡하고 구체적인 맥락을 말한다.
“이제 와 그 때 일 들춰내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 “피해를 알리는 것은 당신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 “한 사람 인생 망치려하느냐”, “나 때는 더 심한 일도 있었다”,
“(배우자의 성폭력피해를 알게 된 후) 이렇게 된 이상 같이 못살겠다. 이혼하자”, “괜히 일 크게 만들어 집 안의 분란을 만들지 말라”
오래전 성폭력사건을 밖으로 꺼내려고 할 때 듣게 되는 말들이다. 각각 다른 상담사례이지만 피해자가 유사하게 반복적으로 듣는 말들은 우리 사회가 피해를 알리는 것에 대해 가지는 불편함과, 가해자에게 이입하는 경향, 성폭력피해를 개인적이거나 성애적으로 보는 가부장적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더불어 위의 말들은 단순 발화에 그치지 않고 피해를 지속하는 구조를 지탱하고, 대응의 첫걸음을 내딛기 어렵게 만든다. 주변에서 가해자의 앞날과 명예를 걱정하여 두둔해줄 때 가해자는 반성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즉, 주변인들이 사건에 대해 갖는 입장은 성폭력의 용인, 지속, 중단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말하기는 어떤 청자를 앞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피해자들이 말할 수 있는 환경이었는지, 말했을 때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려고 했는지. 그동안 우리 사회가 과연 어떤 청자였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가해자가 말하는 서사가 더 익숙하게 다가오는지, 가해자가 피해자를 공격하는 논리가 더 친숙하게 다가오지는 않는지 점검하고 성찰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주체로 서야 성폭력 피해로 인해 오랫동안 침묵의 시간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앞당겨지지 않을까.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다양한 대응이 이루어지려면, 더 많은 첫사람
오래전 성폭력 사건에 대해 대응하려는 피해자들은 2~30년 전 사건인데 고소가 가능할지 묻곤 한다. 형사고소가 자신의 피해에 대해 알리는 창구로 기대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사건의 경우 법적인 해결에 있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가해자가 사망하여 책임을 물을 이가 부재하거나, 가해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거나 알 수 없는 경우, 시간이 많이 지나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증거확보 또한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해자가 가해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 친고죄 폐지 이전의 사건이어서 고소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친 경우, 성폭력사건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황이나 증거가 거의 없을 경우 등 성폭력사건을 입증하고 수사를 진행하기 힘든 상황이 그렇다.
성폭력상담을 하면서 형사사법적 대응의 한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떤 대응도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다가가진 않을지 우려하게 된다. 피해자들에게 그 외의 대응방법을 모색하자는 말이 힘없게 여겨지지 않을지 고민이 될 때도 있다. 따라갈 수 있는 절차가 없을 때, 일방적인 해결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건이 놓인 상황과 피해자들이 목표하는 바에 따라 대응의 로드맵을 새로이 찾아가며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사건마다 다른 n개의 대응들이 힘을 가지기 위해서 어떤 조건들이 요구될까.
한 상담 사례에서 피해자는 형사고소가 불가능함을 확인하고 가족 행사에서 수십 년 전 사촌오빠의 가해사실을 종이에 적어 알리고, 지지자를 모았다. 그 과정에서 동생에게도 피해가 있었음을 알게 되어 두 명의 피해자와 조력자들은 가해자에게 직접 사과와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협상하는 대응을 하였다. 이렇게 대응의 선택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고 겹겹의 고민들이 뒤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속해 있는 각 곳에서 다양한 방법들이 축적되고 공유된다면 여러 대응의 선택지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사법영역이 포괄하지 못하는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일상 속 ‘작은 정치’의 경험이 여러 층위에서 촘촘하게 짜여지는 것이 절실하다. 이러한 일상의 변화는 위의 사례와 같이 주변인들이 피해자와 함께 연대했던 것처럼 피해에 공감하고, 가해를 인정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존재가 두터운 바탕이 될 때 시작될 것이다.
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서 발표한 카드뉴스 ‘조직 및 공동체, #MeToo의 흐름 속에서 공생의 조건을 고민하고 있나요?’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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