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민우ing_제도가 □하지 못할 때
민우ing
제도가 □하지 못할 때
류(류형림) | 여는 민우회 성평등복지팀
여전히 성실하게 누워있는 사람.
누구와 어떻게 살고 있나요?
29.8%. 2019년 기준,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율이다. “비친족 가구”의 수는 2010년 20만5천가구에서 2019년 33만가구로 늘어났다.1) 이 숫자들은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구가 더 이상 보편적인 ‘가족’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결혼과 출산이 당연하지 않은 지금, 사람들은 누구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 친구와 가족처럼 지낸다는 것에 대해서 그게 가능하냐 질문하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 동성 친구와 22년째 함께 살고 있는 희진
“사회주택을 만들어서 주변의 친구들이랑 같이 사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 동성 파트너와 7년째 함께 살고 있는 지민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은 서로가 다 생각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노인공동체를 꿈꾸기 때문에.”
- 16년째 이어온 비혼공동체 멤버들과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영지
지난여름, 민우회 성평등복지팀은 법적 가족이 아닌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 여성들을 만나 인터뷰와 집담회를 진행했다. 13명의 동거 ‘가족’ 구성원이 들려준 ‘가족’의 모습은 원하는 관계, 삶의 방향에 따라 아주 다양했다. 하지만 법과 제도가 “사회의 기본단위”로 삼고 있는 가족의 범위는 여전히 혼인, 혈연, 입양뿐이다.2) 동거 ‘가족’들은 제도는 물론, 서로에 대한 권리를 아무것도 보장받을 수 없다.
우리는 아예 조건이 안 되는구나
법적 가족이 아니라면 포기하거나, 더 불리한 조건으로 이용해야 하는 제도가 많다. 공공임대주택이 대표적인 사례다. 공공임대주택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자격은 법적 가족에게만 주어진다. 그래서 정은은 공공임대주택 신청을 포기했다.
“저는 법적으로 1인 가구니까. 그러면 원룸 밖에 안 되는 거예요. 우리는 아예 조건이 안 되는구나 생각해서 포기한.”
- 비혼으로 남자친구, 강아지 네 마리와 11년째 함께 살고 있는 정은
내가 먼저 죽는다면
‘가족’으로서 서로에 대한 권리가 절실해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인터뷰와 집담회에 참여한 동거 ‘가족’들이 떠올리는 순간 중 하나는 죽음이었다. 내가 먼저 죽는다면 유산에 대한 권리는 법적 가족에게 주어진다. 누가 먼저 죽더라도 함께 살던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 수 있는 방법. 부모와 절연한 다현에게는 절실하고 현실적인 고민이다. 유언장 공증을 받는 방법도 알아봤지만, 법적 가족이 유류분반환청구소송을 한다면 상속분의 반은 돌려줘야 한다. 다현은 차라리 자신의 명의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쪽을 택했다.
“유서공증을 알아보는데 직계가족이 소송을 하면 반은 떼어줘야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반을 뺏어 간다는 게 너무 싫은 거예요. … 그래서 지금 집을 애인 이름으로 하고 서류를 하나도 안 남겨놨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 (전세대출) 원금도 이자도 다 반반씩 했거든요. 하지만 그거를 내가 이 사람한테 이자를 내고 있고 원금이 내 돈이고 이거에 대한 분명한 서류가 하나도 없어요. 사실 애인이 죽으면 나는 끝인 거죠.”
- 동성 배우자, 고양이 세 마리와 5년째 함께 살고 있는 다현
유족연금은 유언장에 쓰더라도 자신이 지정한 사람에게 줄 수 없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의 규정상 본인이 사망했을 때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배우자, 자녀, 손자녀, 부모, 조부모뿐이다. 공무원인 재윤은 만약 자신이 먼저 죽는다면 함께 살고 있는 동성 파트너가 유족연금을 꼭 받았으면 한다. 하지만 입양으로 법적 가족이 되는 방법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저는 연금을 받는 혜택을 가지고 있는데 제가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파트너에게는 줄 수가 없잖아요. 계속 구체적인 고민이나 생각들을 많이 해봤거든요. ‘내가 만약 죽을병에 걸리면 바로 너를 입양해서, 취득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도록 하자.’ 이런 얘기까지 막 했거든요.”
- 동성 파트너, 고양이 두 마리와 5년째 함께 살고 있는 재윤
복지제도, 1부터 재구성하기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가장 가까운 사람, 지금 내가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 공동체로서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도 없다. 반면에 절연하더라도 법적 가족에게는 당연하게 권리가 주어진다. 생계와 돌봄을 나누지 않는데도 단지 법적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제도의 지원 대상에서 배제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와 ‘가족으로부터 독립할 권리’가 동시에 필요하다.
복지제도, 1부터 재구성하기. 민우회 성평등복지팀이 지난 3월부터 쭉 진행해온 프로젝트의 이름이다. 가족이 아닌 ‘개인’을 기준으로 최저가 아닌 적정선을 보장하는 성평등복지국가.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13명의 동거 ‘가족’ 구성원과 9명의 비혼 여성을 만나 제도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 들었다. 이 생생한 이야기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소책자 〈제도가 □하지 못할 때〉와 토크쇼 〈‘가족’이 아니라서〉를 진행했다. 하나하나 모인 이야기들을 기반으로 내년 총선에서는 ‘성평등복지’를 의제로 제안할 예정이다. 누구나 혼자여도, 함께여도 온전한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사회가 지금은 멀게 느껴지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다면 변화는 성큼 앞당겨질 거라 믿는다.
1) 출처: 통계청, 장래가구추계
2) 민법 제770조(가족의 범위):
① 다음의 자는 가족으로 한다.
1.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2.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② 제1항제2호의 경우에는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 한한다.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제1항: "가족"이라 함은 혼인ㆍ혈연ㆍ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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