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상반기-함께가는 여성] 기획_제대로 된 처벌, 그것부터가 시작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세상에 밝혀진 뒤 많은 이가 공분했다.
‘사람도 아니다’, ‘악마도 따로 없다’
하지만 이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여성을 한 사람이 아닌 몸으로 품평했던 채팅방
불법 촬영물을 범죄로 여기지 않고
소비·유포했던 무수한 웹사이트
그 다음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었을 뿐이다.
‘N개’의 성착취를 끊어내기 위해 사회가 해야 할
첫 번째는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것이다.
변화는 그로부터 만들어진다.
[2020 상반기-함께가는 여성] 기획
제대로 된 처벌, 그것부터가 시작
2020년 2월 14일,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제대로 된 수사와 피해자 지원,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출범하였습니다. 해당 공대위에 피해자 변호인단으로 함께하고 있는 조은호 변호사에게 26만 명의 가해자는 어떻게 처벌 받을 수 있는지, 기술 발달로 범죄 수법이 변화해왔는데 법률에 공백이 있진 않은지, 지금까지 동종 범죄는 어떤 처벌을 받아왔는지 질문해보았습니다. [편집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누가 가담 하였는가
• 조○○ 등 운영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가담자들은 크게 조○○* 등 운영진, 후원자, 무료 이용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운영진은 아르바이트 등을 미끼로 피해자에게 접근하여 개인정보를 취득한 뒤 이를 유포하겠다고 위협하거나, 피해자를 강제추행·강간하는 장면을 불법 촬영한 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였습니다. 이들은 겁먹은 피해자에게 가학적 행위를 시키고 스스로 촬영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하고, 이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 핵심 가해자 조○○은 소위 ‘박사방’이라는 이름으로 텔레그램 성착취 방을 운영해왔다.
• ‘후원자’
조○○은 텔레그램 대화방 유료 회원들을 ‘후원자’라고 불렀습니다. 후원자들은 영상을 시청하였다는 의미에서 관전자라고도 불립니다. 이들은 성착취 영상의 내용이 실존하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라는 점을 알면서도 죄책감 없이 영상을 즐겼습니다. 후원자들은 피해자를 품평하며 모욕하거나, 영상 내용을 제안하였습니다. 이들은 범행을 모방하거나, 추가 비용을 지급하고 운영진에게 피해자에 대한 가혹행위를 지시하였습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대화방은 후원자들의 참여로 더욱 활발하게 운영되었습니다.
• 무료 이용자
조○○과 운영진은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하여 무료 ‘맛보기방’을 개설하였습니다. 운영진은 제작한 성착취 영상 일부를 무료로 배포하며 유료 대화방을 광고하였습니다. 무료 이용자들은 제공된 영상이 불법 촬영물임을 알면서 시청하였고, 곧 조○○의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처벌할 수 있는가
• 조○○ 등 운영진
검찰 발표에 따르면 조○○에게 적용된 혐의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음란물 제작·배포/유사성행위/강간/강제추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아동복지법 위반, 형법상 강요/강요미수/협박/살인음모/사기/무고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입니다.
박사방이 언론에 알려지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극단적 선택을 예고하는 영상을 찍도록 강요한 것, 중요 인사의 정보가 들어있는 USB를 주겠다고 속여 1,500만 원을 받은 것, 피해자를 시켜 경쟁 텔레그램 방 운영자를 강제추행죄로 고소하게 한 것 등이 포함된 결과였습니다.
• 후원자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최대 26만에 이르는 후원자에 대한 처벌입니다. 소라넷, 웹하드 카르텔 등 앞선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서도 불법 촬영물을 시청한 이들 역시 제작자와 공범으로 보아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현행법과 기존 판례의 해석으로는 시청한 이를 제작자와 동일하게 처벌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번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특이점은 후원자가 시청한 성착취 영상이 그들의 ‘취향’을 반영하여 실시간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조○○은 텔레그램이 신속한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매체라는 점을 적극 활용하여, ‘맞춤형 성착취’가 가능하다고 홍보하며 그 대가로 가입비를 요구하였습니다. 후원자는 미래에 있을 성착취 영상 제작을 후원하기 위하여 가입비를 제공하고, ‘취향’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며 제작 방향을 지시하였습니다. 즉 후원자는 성착취 영상 제작의 자금 제공자이자 주문자·소비자로서, 역할 분담을 통해 조○○ 등 운영진의 성착취 영상 제작에 가담한 공동정범*으로 볼 수 있습니다.
*2명 이상, 공동으로 죄를 범한 자를 이른다.
설령 후원자를 조○○의 공동정범으로 볼 수 없다 하여도, 이들의 행위는 성착취 영상 제작의 방조, 교사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법과 판례는 범죄를 저지르도록 시키거나 부추기는 유·무형의 행위를 교사·방조로 봅니다. 조○○은 ‘회원이 없는 박사방은 무의미 하다’며 후원자의 존재가 성착취 영상 제작의 원동력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후원자는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영상을 시청하고, 의견을 표출하며, 제작비를 지급하였으므로, 불법 영상물 제작을 무형적, 정신적으로 교사·방조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무료 이용자
텔레그램 대화방에 있는 동영상은 클릭하여 시청하면 자동 다운로드 되어 안드로이드, 데이터를 순차적으로 거쳐 최종적으로 캐쉬 폴더에 저장됩니다. 우리법은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임을 알면서 소지한 자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동 대상 성착취 영상을 시청·소지한 무료 이용자 역시 처벌 가능합니다.
*2020년 5월 20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하여 기존의 처벌조항(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서 벌금형이 삭제, ‘1년 이상의 징역’으로 변경 되었다.
강간문화의 연결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첫 번째, 제대로 된 처벌
현행법의 처벌이 외국에 비해 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성범죄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쳤던 이유는 형사 사건을 담당하는 세 축인 수사기관과 법원, 변호인 등이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 기관은 디지털 성범죄가 실존하는 피해자에 대한 엄연한 폭력이며 특히 아동 성착취 영상은 제작이 곧 아동학대라는 사실을 간과한 채, ‘야한 동영상쯤 누구나 보는 것’이라는 만연한 인식으로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결국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한국 사회의 여성·아동혐오, 성차별적 인식의 연장선입니다.
이번 사건의 가담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근본적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제2의, 제3의 조○○은 계속 등장할 것입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은 이들의 범죄를 더욱 처벌하기 어렵게 만들 것입니다. 결국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궁극적인 방법은 가해자가 가해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약자에 대한 폭력을 유희 삼는 사회에서, 약자를 존중하는 사회로 바뀌어야 합니다. 앞으로 논의될 법들이 처벌 강화에 그치지 않고 차별과 혐오를 종식시키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피해자 지원 또한 중요한 과제입니다. 피해자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일상의 회복입니다. 인터넷 공간에 한 번 유포된 정보는 제작자를 처벌하더라도 다시 유포될 수 있기에, 피해자는 언제든 다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성착취의 피해자가 되었든 잘못은 가해자에게 있습니다. 피해자가 최대한 과거의 범죄와 분리될 수 있도록, 피해자는 당당하게, 가해자는 움츠러들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법률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조은호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2019년 변호사시험 합격 이후 여성인권, 아동인권, 소수자인권, 과거사문제 등 공익활동에 참여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아동사법,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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