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회원이야기_“여러분, 제 목소리 잘 들리시나요?”
[2020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회원이야기
“여러분, 제 목소리 잘 들리시나요?”
차근차근. 올해 초 마음가짐이었다. 액션회원팀은 매년 진행해야 할 정기적인 사업이 있고 그 사업은 또 진행해야 할 시기가 있다. 1년에 3회 신입회원 만남의 날을 진행하고 그 사이 신입회원 세미나와 소모임을 그리고 틈틈이 번개모임과 원데이 클래스로 회원을 만난다. 그리고 대중강연과 회원 송년회로 한 해 사업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모두 뒤죽박죽 공백이 생기고 말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혼란스러웠지만 그때 우리 앞에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이 나타났다. 너도나도 줌을 이용했다. 회의도 했고, 토론회도 했고, 강의도 했다. 하지만 회원과는 줌을 통해 만나본 적이 없어 걱정이 됐다.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첫 만남은 ‘민우지역회원 만남의 날’이었다. 줌은 물리적 거리의 한계가 없기 때문에 평소에 만나지 못한 지역 회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작년 민우회 행사에 오기 위해 1박 2일 일정을 잡고 오셨던 회원, 기차시간 때문에 행사 중간에 서울역으로 달려가셨던 회원도 이젠 서로의 공간에서 편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만나기 전 여러 생각에 빠졌다. 말을 할 때 눈이 아닌 화면을 보기 때문에 말이 겹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말을 아끼게 되고 결국 어색한 정적이 흐르지 않을까. 하지만 친구와 영상통화를 해도 어색한 건 마찬가지이니 당연한 과정이라 생각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회원들을 맞이했다. 반가운 인사와 그간의 안부를 나눴고, 마지막 소감 순서가 됐을 때 한 회원이 말했다. ‘자주 만나요. 코로나 시국에도 시간 내서 만날 수 있는 페미니스트가 있어서 감사하고 어떤 자리에서든 자주 만나면 좋겠어요.’ 사실 코로나19 때문에 한 해 모든 계획이 엉망이 되어 속상하기도 하고, 처음 시도해 보는 줌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복잡했었다. 하지만 이 한 마디가 행사 마무리만을 집중하고 있던 나를, 그 순간 ‘일’이 아닌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존재에 위로 받는 한 명의 참여자로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의 활동이 누군가에게 뜻깊은 시간이 된다는 것. 여기서 오는 보람은 우리에게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준다. 그럼, 이럴 때일수록 더 자주 만나야지.
그 다음 언제나 많은 인기를 자랑하는 소모임을 진행했다. 다행히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특히 ‘사부작사부작’이라는 수다 떨면서 취미 활동을 함께 하는 모임은 만남 횟수를 늘려 달라는 요청도 있었고, 화면을 통해 각자 좋아하는 술을 마시며 뒤풀이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로 신입회원과 더 친밀해질 수 있는 ‘신입회원 세미나’, 큰 규모의 ‘대중교육’ 그리고 다양한 회원 번개 모임은 중간에 또는 시작도 해보지 못한 채 취소되었다. 기획부터 잘못된 것인지 단순히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줌이 모두에게 익숙해지려면 아직 시기상조인 것일까. 프로그램을 기획할수록 신청자는 감소하고 내 마음속 걱정과 질문들은 점점 커져갔다.
책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엔 ‘코로나 바이러스가 던진 과제는 코로나로 변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무엇이 문제일까. 점점 느슨해진 소통에 다들 익숙해진 것일까, 지친 것일까. 임시방편이었던 줌에 너무 의존했었나. 아니면 기존 우리 활동이 이젠 진부해진 것일까.
계속 생겨나는 질문들을 한곳에 밀어두고 우리 활동의 의미,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회원들에게 들은 공통적인 말이 있다. ‘같은 마음을 가진 페미니스트를 만나 좋았다’고. 그렇다, 우리에겐 그 ‘만남’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다. 비록 불안한 상황 속에서 회원과 만난다는 것이 아슬아슬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일상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장을 계속 마련하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이다.
여전히 물음표는 많고 다음에는 어떤 기획을 할지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진 않지만, 만남을 통해 서로 소중한 시간을 나누고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값진 보람을 맛보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를 고민한다.
민우회 신입회원 만남의 날 줌 화면 캡처
단(박해연)
❚여는 민우회 액션회원팀
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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