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8월호 [기획] 점이 아닌 선, 에피소드가 아닌 역사
▣기획
점이 아닌 선, 에피소드가 아닌 역사
몽 ‧ 언니네트워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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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婚呤(혼령)이 이 땅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 가부장의 망령이 깃든 결혼당근주의라는 婚呤(혼령)이. 이 婚呤(혼령)이 씌우지 않은 무리, 즉 婚(혼) 빼는 여자들이 이 유령을 퇴치하기 위하여 각지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 婚(혼)을 빼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婚呤(혼령)이란 실체 없는 아무것도 아님이 드러나리라.
- 전국 婚(혼) 빼는 여자 연합, ‘결혼안당근주의선언’ 中
얼마 전 언니네트워크 책장을 뒤적이다가 12년 전 발간된 연세대 여성전문저널 <두입술>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읽어보았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공산당선언을 패러디해서 만들었다는 ‘결혼안당근주의선언’을 읽고 혼자 사무실에 앉아 박장대소했던 기억이 난다. 아니, 婚(혼) 빼는 여자라니, 이런 유쾌한 비틀기가 가능한 선언문이라니. 왜 여태 몰랐던가!
5년 전인 2007년 1회 비혼여성축제에서 발표된 ‘비혼선언문’만을 기억하고 있던 내게, 총여학생회, 여성주의 자치언론 등 학내 여성주의 운동이 활발하던 2000년도의 ‘婚(혼) 빼는 여자 연합’과 ‘결혼안당근주의선언’은 또 다른 버전의 (비장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든든한 ‘참고문헌’이다. 나는 특히 비혼 여성들에게는 이러한 참고문헌이 더욱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혼자가 될 것이라는 불안, 아무도 내 삶의 정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만 같은 외로움, 결혼제도의 자장 밖에서 나아갈 길을 잃은 것 같은 혼란 - 이와 같은 수사들이 비혼의 의미를 채우지 않도록 다잡아주는, 내 삶의 나침반과 같은 참고문헌 말이다. 하지만 비혼 여성들은 충분한 참고문헌을 가지고 있을까?
하나의 플롯, 하나의 대본?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남성들의 관계, 계보, 역사는 ‘밀어주고 끌어주기’ 단 두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여성들, 특히 가족 내 역할로 환원되는 ‘여자다운 삶’의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여성들의 삶은 늘 ‘맨땅에 헤딩’이라는 말로 밖에 설명이 안 된다. 캐롤린 하일브런은 여성들이 ‘이야기들’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여성들이 단지 하나만의 플롯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며, 계속해서 자신들이 쓰지도 않은 하나의 대본에만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퍼뜨리는 ‘여자다운 삶’의 이미지가 너무 강력할 때, 용기 있는 여성들의 ‘맨땅에 헤딩’은 다른 삶을 상상하는 여성들이 따를 수 있는 역할모델로서 기록되고, 기억되고, 소환되기보다 남성사회의 인식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규정되고 해석된다. 이상한 여자의 삶이거나, 이상해서 비참한 여자의 삶이거나.
동의할 수 없는 하나의 대본에는 그것을 상대화 할 수 있는 다른 이야기들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나는 그것이 여성주의적 개입이자 실천이자 역사쓰기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특정한 시대를 살아갔던 여성들의 다른 서사를 복원하는 것, 그 여성들이 자신의 열망을 실현할 수 있는 자원을 얻거나 빼앗기거나 협상할 수 있었던 사회문화적 조건이 무엇이었는지를 해석하는 것, 그 의식과 행위, 삶의 의미를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것으로 위치시키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플롯, 우리의 대본
그래서 나는 언니네트워크에서 비혼 운동을 하며 가장 감동스러웠던 순간을 꼽으라면, 1990년에 한국 최초로 독신여성단체 <한국 여성 한마음회>를 만들었던 김애순씨를 만났던 경험을 빼 놓을 수가 없다. ‘비혼이라는 용어가 한국사회에 등장한 건 10년이 조금 넘으니, 그 이전에는 독신이라고 했겠지?’하는 생각으로 포털에서 ‘독신’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다 읽게 된 <한마음회>의 오래된 기사. "혼자 사는 여성이 늘고 있으므로 그들에게 불리한 현행 세제나 아파트 분양권 같은 당면문제 해결에 힘을 모으고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당할 때 어려움을 함께 나누기 위해 단체를 창립한다"는 당시에는 엄청나게 파격적인 취지로 창립한 독신여성단체가 이미 20여 년 전에 한국여성운동사에 존재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한마음회>의 흔적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김애순 씨가 쓴 책 <독신 그 멋과 매력>, <독신 그 무한한 자유>를 출간했던 출판사는 폐업했거나 너무 오래되어 저자 연락처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김애순씨가 활동했던 여러 단체들에 연락을 해 보아도 알 수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급기야는 김애순씨가 졸업한 대학 학과 사무실에도 매달려보았지만 마찬가지였을 때의 절망이란…. 그러다 김애순씨가 살았던 10년 전 집주소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주소지에 살고 계실지도 알 수 없었고, 무작정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꼭 뵙고 싶다는 구구절절한 편지를 쓴 그 날로 등기를 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 정말로 기적과 같이 김애순씨에게 연락이 왔을 때- 그때의 희열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92명의 창립회원이 모여 400여명 가까운 회원이 있었던 한마음회의 시작, 독신에 관한 책조차 부모에게 들킬 새라 이불을 뒤집어쓰고 봐야 했던 20년 전의 3~40대 독신여성들, ‘가시 돋친 장미’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데려갈 사람이 없다’는 말로 둘러대면서도 결혼으로는 꿈꿀 수 없기 때문에 당당히 살아온 독신의 삶. 그 와중에 독신을 위한 교양강좌를 하면서, 명절마다 여행을 다니면서, 서로의 삶을 챙기면서 만들어간 네트워크…. 나에게 어색하기만 했던 ‘선배’라는 명칭과 불투명하기만 했던 ‘역사’라는 단어가 이렇게 가슴벅찼던 적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다가왔던 적이 있었을까. 그건 마치 내가 어떤 길 위로 걸어왔는지 알 수 없어 정처 없이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울 때 만난 이정표와 같았다.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기 위해서
한창 <한마음회>의 발자국을 찾아다닐 때, 내 이야기를 들은 한 친구가 지나가듯이 한 말이 있다. “나중에 10년, 20년 지나서 너처럼 다른 여성들이 ‘비혼’ 운동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면서 찾아올 수도 있겠네?” 순간 머릿속이 멍해져서 몇 초 정지해 있다가, 낮게 읊조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니, 그렇게 안 되려고 내가 지금 비혼 운동 열심히 하고 있는 거라고!’ 만약 내 미래에 그런 장면이 펼쳐진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지금은 생각만 해도 너무 씁쓸하고 슬플 것만 같다.
2011년 언니네트워크가 개최했던 <비혼PT나이트>에서 스피커 중 한 사람이었던 노미는 ‘남성들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건 ‘스토리텔링‘이 되기 때문이다, 비혼 여성의 삶에 대한 더 많은 스토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에피소드’가 아닌 ‘역사’이다. 각자 떨어져 맨땅에 헤딩은 하지 않을 수 있는 인식론적 토대, 때로 혼란스럽고 불안해지더라도 그것을 지탱해줄 수 있는 버팀목, 여성들이 ‘이야기들’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가질 수 있고 서로의 참조점이 되어줄 수 있는 역사. 그 역사를 다시 발견하고 새롭게 쌓아가기 위해서, 여전히 여자답지 않은 여자들의 더 많은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인다.
역사는 인간의 삶을 주어진 범위 이상으로 확장시키는 정신적 구성물이다. 그것은 우리들 각자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없어서는 안 될 닻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우리는 역사에서 삶에 대한 전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역사는 우리가 앞선 세대들과 일체감을 갖고 다음 세대들을 염두에 두는 행동을 하게 함으로써 인생의 한정된 범위를 넘어서게 만든다.
- 거다 러너, <왜 여성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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