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8월호 [문화산책] 넝쿨당에서 ‘나’는 누구?
▣문화산책
넝쿨당에서 ‘나’는 누구?
김민정(단팥) ·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2012년 6월은 진정 드라마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분위기를 피부로 느낄 때는 회사에서 직원들이 모였다하면 전날 드라마가 재방되는 순간이다. 한번 켜면 애국가 끝날 때까지 끄지 못하는 집중력 때문에 TV를 없앤 지 4년. 그러다보니 직원들의 드라마 파티가 시작되면 한마디도 끼지 못하지만, 경청하는 덕분에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는 빠삭하다. 그 중에서도 주인공은 <신사의 품격(이하 신품)>과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하 넝쿨당)>. 넝쿨당 팬이 되어버린 나는 이제 제법 이야기를 주도하고, 며느리들의 고민을 공유한다. TV도 없는 내가 어떻게 이야기를 주도하냐고? 다~ 방법이 있지^-^
남편도, 친정도 시댁에 더 자주가길 원했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김하늘과 장동건의 벚꽃 길 뽀뽀 사진을 본 뒤, 신품을 방송하는 날마다 방랑자처럼 정신없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텔레비전이 없는데다 본방을 사수해야 이야기에 합류할 수 있다는 일념 하에 주말 저녁마다 동서네 ☞ 친정집 ☞ 시댁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신혼이라는 이유로 시댁을 더 자주, 오래 갔었는데(친정, 시댁, 동서네 모두 가깝지만 남편은 시댁을 더 자주가길 원했고, 친정에서는 더 그랬다 -.,-^) 신품 시작 시간에 맞춰 가면 의도가 너무 드러날까 봐 오후 3~4시쯤 미리 가 자리를 잡았다. 시댁에 가면 TV만 보는데도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라 불편했지만 신품이 있어 잠시나마 망각할 수 있었다. 시댁은 연애 때도 수시로 들락날락였고, 끊임없이 먹을 것을 챙겨주시며 애정을 보여주셨다. 그렇지만 갈 때마다 긴장되고 불편한데, 정작 남편은 이해를 못 했다. “한 가족인데 뭐가 불편해? 너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맨날 가면 텔레비전만 보고, 밥 먹고, 심지어 낮잠(피곤에 쩔어 앉아서 조는 걸 낮잠이란다)도 자면서 불편하다고 말하는 건 말이 안돼.” 정작 자기는 친정가면 말 한 마디 못하고잔뜩 긴장 해있으면서.
그런데 언제부턴가 신품과 함께 기다려지는 게 있었으니 바로 넝쿨당이다. 시부모님, 주말부부 시누이, 남편, 어느 날은 동서네까지. 시댁 식구들과 시청하는 넝쿨당은 그야말로 가족드라마다. 어쩌다 귀남이가 윤희에게 지극 정성을 보이는 날이면 남편에게 “잘 봐!”하고 장난 반, 진담 반 눈치 주며 웃고 떠들다가도, 고부갈등 장면이 나오면 각자를 돌아보는 듯 조용해진다.
넝쿨당은 [시월드를 대하는 며느리 매뉴얼]
넝쿨당은 비현실적으로 무서운 시어머니, 싸가지 없는 며느리, 불륜같은 자극적인 소재 없이 시월드(드라마에서 시댁을 시월드라고 부른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인 차윤희의 시댁 식구들은 요즘 보기 드문 대가족이다. 시부모와 세 명의 시누이에 시할머니, 거기다 작은어머니·아버지까지. 그들이 얼마나 보수적인가는 이름에서도 드러나는데 아들 이름은 방귀남. 이름에서도 장군같이 귀하고 든든한 남성성을 부각시킨다. 반면, 딸들의 이름은 일숙, 이숙, 말숙이 같이 무성의하다. 그런데 그 귀하디 귀한 아들을 잃어버리고 슬픔과 자책에 빠져 살던 시어머니 엄청애 앞에 운명적으로 아들이 나타나고, 덤으로 며느리까지 생기게 된다. 엄청애에게는 그동안 엄마로, 시어머니로 하지 못했던(부러워했던) 욕구들이 마구 샘 솟는다. 그런데 그 욕구는 대부분 며느리를 통해 전달된다. “목욕 같이 가자, 현관문 비빌번호 알려 달라, 남편 밥 잘 챙겨줘라, 임신해라, (임신했더니)직장 그만둬라, 아가씨에게 말 높여라” 등등…. (엄청애가 며느리에게 바라는 것들이 결혼 5개월 차인 나에게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다. 하지만 출산에 대한 압박은 시월드의 공통적인 특징인가 보다. 나도 결혼과 동시에 “하루라도 젊었을 때 임신해야지, 아들이 있어야 든든해”라는 이야기를 아주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윤희는 만만치 않은 당찬 며느리다. 시댁과 남편을 위하는 말로 포장하며 결국 본인 생각대로 이루어지게, 현명하게 해결하는 데서 드라마를 보는 며느리들의 속을 시원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남편이나 친정에 하소연하거나 전적으로 매달리지 않고 혼자서 철두철미하게 해결하는 모습은 가히 「시월드를 대하는 며느리 매뉴얼」이라 할 만하다. 또, 차윤희 못지 않은 인물이 있으니, 바로 남편 방귀남이다. “잘못한 게 있으면 저랑 같이 혼내주세요”, “저도 이제부터 처남을 존중하는 의미로 말을 높이려 구요.” 며느리를 혼내는 어머니의 부당함을 꼬집을 때는 ‘허상’이라 생각하면서도 남편을 째려보게 된다. 허상이라도, 대리만족 할 수 있으니 작가가 고마울 뿐이다.
누구의 모습을 따라가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다운 모습’, 마음 가는 대로 살자.
차윤희는 애초에 며느리가 될 싹을 자르고자 고아 남편과 결혼했다. 차윤희에 막내 시누이 말숙이니는 가족도 남자들도 모두 자기 손바닥 위에 있다. 하지마 말숙이가 악몽을 꿀 정도로 두려워한 것도 시월드다. 결혼을 준비하는, 혹은 결혼을 전제로 두고 있는 여자들이라면 격하게 공감 할 부분이다. 나 역시 결혼보다는 동거가 하고 싶었던 것도 같은 이유이다. 결혼이 현실이라는 건, 경제적인 비용 발생 뿐 만 아니라 시댁 관계를 넘는 그야말로 시월드라는 새로운 나라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넝쿨당에 나오는 여러 며느리들이 갖고 있는 장점들이 없다. 주인공 차윤희 같은 현명함이나 작은아버지의 부인인 고옥의 순종이나, 시어머니 엄청애의 희생정신처럼 말이다.
사람 사는 모습 다르듯,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예비)며느리라면 누구의 모습을 따라가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다운 모습’, ‘마음 가는 데로’ 살기 바란다. 나쁜 사람은 없다. 그리고 누구도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각자의 위치와 상황이 만드는 불편함이 있을 뿐. 그러니 나다워야 후회가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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