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8월호 [민우ing] 공동체,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서는 법
▣민우ing
공동체,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서는 법
이선미(너굴) ● 한국성폭력상담소
이 글의 제목은 상담소에서 진행하는 사업의 이름이다. 총회 자료집을 꼼꼼히 봤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 사업의 정체를 알기는 어려울 거다.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이름 한번 올려보지 못한 사업. 7월이 되었는데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이제야 겨우 소식을 알린다. 극비리로 추진해야 하는 사업이었냐고 묻는다면 민망할 뿐. 중구난방 아이디어로만 있는 것들을 정리하고 이제야 겨우 1차 작업의 결과물을 손에 쥐었다. 더운 여름 자꾸만 멀리 떠나려는 멘탈을 부여잡고 보낸 시간을 보고한다.
민우회 상담소는 ‘성폭력가해자교육’을 하고 있다. 97년부터 시작한 가해자 교육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그동안 가해자 교육을 위한 매뉴얼도 세 권이 나왔다. 가해자 교육은 성폭력 사건이 잘못된 성문화에 기인하기에 교육을 통해서 가해자의 행동과 잘못된 인식을 바꾼다는 목적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가해자 교육은 조직 내부의 징계 절차나 피해자와의 합의 과정에서 결정된다. 회사‧노조‧학교‧사회단체 등 다양한 조직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공동체에서 의뢰된다.
외면이 아닌 ‘우리’의 문제로
‘공동체 해결’은 성폭력을 개인 대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문화나 구조의 문제로 바라보기 위한 노력이다. 또한 성문화나 의식에 대한 성찰과 성별권력관계를 점검하는 계기를 마련하여 공동체의 변화를 지향한다. 이 과정 속에서 피해자가 사건 이전과 같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이 원대한 의미와 목표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의 과정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공동체가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공간이거나, 가치관을 공유하며 의미를 두는 공간이기에 사건은 일상을 함께 보내는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그러다 보니 일상적인 갈등이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으로 옮겨와 갈등이 증폭되기도 하며, 가해행위를 성폭력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도 항상 따라다닌다. 또 가해자의 처벌 수위를 두고 적당한지 과한지를 두고도 긴 시간 공방을 하기도 한다. 그 과정은 몇 가지 원칙이나 규칙으로 정리하기 어렵고 정돈되어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개입하거나 판단하는 것조차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외면하거나 침묵하게 된다. 정치권 뉴스가 나오면 피로감을 먼저 느끼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한편 또 다른 상황은 가해자 개인에 대한 징계로 사건을 빠르게 마무리 하는 방식도 있다. 철저히 구성원들과 가해자를 분리하고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외면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 또한 공동체 문화나 성의식 변화로 연결되기는 어렵다. 이쯤 되면 이런 질문이 나올 법 하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
그 질문 때문에 상담소 활동가들도 머리를 싸맨다.
질문을 해소 할 수 있는 통로로서
어느 날 “가해자 말고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없나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
질문의 배경은 이렇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이후 내부 절차에 따라 처리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끼리 감정이 상하기도 하고 피해자/가해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혼란스럽다. 그래서 성폭력 사건 이후, 그동안의 과정들을 정리할 수 있는 교육이 구성원들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가해자에게 주어지는 교육시간 만큼이나 구성원들에게도 사건을 소화하기 위한 시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상담소는 구성원들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계획을 세웠다.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생각하니 그동안 미뤄뒀던 ‘공동체 해결’과정에 대한 점검이 필요했다. 그래서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 해결 경험이 있는 활동가를 섭외하여 간담회를 진행했다. 노동조합‧정당‧단체 등에서의 해결 절차에 대한 경험과 평가를 나눌 수 있는 그야말로 전문가들. 간담회에서 많은 이야기가 나왔지만 지면의 한계로 몇 가지만 소개한다.
▶ 반성폭력 규칙을 잘 준수 했는지에 대해서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와 구성원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지, 이 사건을 거치고 각자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한 평가 도 필요하다.
▶ 피해자가 해결 과정에서 고통스러운 이유는 사건의 의미가 제대로 소통되거나, 토대의 변화 조짐이 보이지 않을 때이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 명예회복이 어렵고, 공동체 복귀도 어려워진다. 성폭력 사건의 의미화를 위한 충분한 작업이 필요하다.
▶ 구성원들이 사건에 대한 정보 없이 판단하거나 입장을 갖는 것은 어렵다. 의문이나 질문을 해소 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
▶ 피해자 요구를 중심으로 한 사건 해결은 조직 내 부담을 피해자에게 부여하게 된다. 또 피해자의 요구가 정당한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만 발생할 뿐 피해자의 역량강화에도 도움이 안 된다.
▶ 피해자라는 정체성은 잠정적인 것이다. 정체성이 변화 할 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피해자는 일시적으로 약자가 되었을 뿐이지, 운동사회에 기여한 사람이고 투쟁하는 사람이다.
▶ 해결 과정에서 가해자의 변화는 중요한 포인트이지만 사건 해결의 지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문가 간담회 이후 피해자 대리인, 피해자, 대책위원 등 다양한 역할을 했던 사람 10명을 대상으로 개인 인터뷰도 했다. 인터뷰를 통해 각 조직의 사건 해결의 흐름, 구성원들의 역동, 논쟁이 발생하는 지점, 공동체 해결의 의미 등을 짚어보며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아이디어를 수집했다. 우리는 이 아이디어를 정리하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10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공동체 해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기
성폭력 사건 이후의 공동체 구성원이 사건을 정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시작했다. 계획은 중구난방으로 뻗어나가 ‘공동체 해결’ 과정에 대한 평가와 이 과정 중에 피해자가 자신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개발하는 것, ‘공동체 해결’의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을 찾는 것까지 흘러갔다. 아직 어디까지 정리할 수 있을지 담당자도 확답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성폭력 사건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 직면하는 법을 알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이며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가 소외되지 않는 방법을 찾을 거라는 것이다. 사방으로 뻗어 정리되지 않은 고민들이 부담스럽거나 초조한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내용을 담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는 중이다. 정신없는 이글을 끝까지 읽은 당신 마음 속에도 그 기대가 자라고 있다고 믿는다. 기대를 품은 당신, 10월에 만나자.
* 프로그램 시범 운영을 할 팀의 신청을 받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우리에게 필요하다 생각하신 분 고민하지 마시고 전화주시길. (02-739-8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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