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8월호 [민우ing] 디지털 수신환경점검을 하러 남도에 가다
디지털 수신환경점검을 하러 남도에 가다
윤정주·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
우리는 언젠가부터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옥상에 올라가 안테나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케이블 방송 또는 위성 방송에 전화를 한다, 텔레비전을 연결해 달라고. 왜냐면? 안테나 하나만으로 텔레비전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동안 지상파 방송사들은 난시청 문제만 나오면 입버릇처럼 “디지털 전환이 되면 난시청은 다 해결된다”라는 말만 되풀이 해왔다.
정말 그럴까? 의심이 들었다.
자, 출발
그래서 DTV코리아에 전국적인 수신환경조사를 요구해 왔고, 논의 끝에 6월 27일부터 7월 1일까지 4박 5일 동안 3개의 팀(서울·수도권팀, 충청·전라팀, 강원·경상팀)으로 나눠 조사를 해 보기로 했다. 나는 충청‧전라팀이었고, 우리 팀은 충주를 시작으로 충청과 전라내륙을 거쳐 해안가를 돌아보기로 했다. 충주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간 식당부터 실내외 수신이 가능한지 점검해보았다.
“어라?! 잘 나오네.”
“그렇다니까요. 실내 안테나로도 디지털 신호는 웬만큼 잡혀요. 그리고 실외 야기 안테나로는 거의 잡힐걸요?”
DTV코리아측은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이제 겨우 한군데 봤을 뿐인데 뭐. 우리는 서둘러 점심을 먹고 충북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로 갔다. 장소 선정은 DTV코리아측이 만든 ‘수신환경지도’를 보고 전파가 가장 약한 곳을 내가 직접 골라서 찾아갔다. 선정한 곳들이 난시청도 있고, 수신이 잘 안되는 지역도 있어 DTV코리아측에서는 족집게라며 같이 일하자는 스카우트 제의도 농담 삼아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찾아간 곳은 디지털 난시청지역이다! 그곳은 실외 안테나로도 2채널(KBS2와 민방) 밖에 잡히지 않았다. ‘앗싸’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다시 의기양양해 졌다.
“그것봐요. 나오지 않는데도 있잖아요.”
“그러네요… 난시청 지역도 있네요.”
그들은 당혹스러운 듯 말했다. 이렇듯 우리는 방문한 지역의 수신 환경에 따라 각자 일희일비하며 충청도와 전라도 구석구석을 다녔다. 우리는 그곳에서 다양한 사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파트 전체에서 홀로 직접수신을 하겠다고 관리소장과 싸우며 고군분투하는 부부, 마을 전체가 위성방송을 보고 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위성방송을 볼 수 없어서 정부지원을 신청해 놓고 있다는 할아버지, 안테나만으로 도저히 텔레비전이 나오지 않아 위성방송을 달아 매달 8,800원을 내고 있지만 겨우 KBS1만 시청하고 계시는 할머니 등. 무수히 많은 안타까운 현실을 보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일은 전남 보성군 미력면 도개리에서 만난 한 할머니의 상황이었다. 이 할머니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동네에서 유일하게 직접수신을 하고 계셨다. 그동안 안테나를 달아서 그럭저럭 아날로그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었는데, 현재는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할머니댁을 방문해 텔레비전을 점검해 보았으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올해 말 아날로그 방송이 끊기고 디지털 방송으로 바뀌는지도 모르고 계셨고, 직접수신가구에 대한 정부 지원도 모르고 계셨다. 이 지역은 실외에서 전파가 잡혀서 안테나 하나만 세우고 컨버터로 텔레비전을 연결하면 충분히 직접수신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간 장비로는 전혀 손을 쓸 수 없어서 죄송하다는 말만 하고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씀하셨다.
“혼자 사는데 텔레비전까지 볼 수 없어서 많이 외로워. 농사 지어서 일기예보는 꼭 봐야 하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
슬그머니 눈물을 훔치며 할머니 댁을 돌아 나오자마자, 같이 간 지상파 방송사측 사람에게 따지듯 물었다.
“보셨죠? 직접수신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이렇게 있는데 그동안 지상파 방송사는 뭐했죠? 전파라는 공공재를 사용하고 있고 수신료 꼬박꼬박 받으면서 뭐 했냐구요?”
“그러게요… 우리가 그동안 잘못한 것 같네요.”
우리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도 할머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어디 이런 분이 한 둘이겠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시청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4박 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각 팀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 DTV전환감시시청자연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논의하였고, 이는 KBS가 전국 각지에 콜센터를 운영해 원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안테나를 달아줘야 해결 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후 <수신환경점검 발표회>에서 이러한 대안을 지상파방송사에 요구 할 예정이다.
그렇다. 우리 시청자들의 요구는 복잡한 것이 아니다. 단지 지상파 직접수신을 하고 싶은 사람이 어려움 없이 직접 수신을 할 수 있도록 수신 환경을 개선하라는 것이다. 이는 시청자들의 매체 선택권을 보장하는 중요한 토대이다. 따라서 이번 점검 사업은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기초 작업이었고 많은 만남을 통해 축적된 다양한 사례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방향성과 대안을 제시해 주었다.
그래, 이제 하기만 하면 된다!
후기 - 어디를 가나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신 분들에게 지면을 감사인사 드립니다. 더운데 고생한다면서 고흥에서는 유자청을 주신 아주머니, 금산에서는 홍삼액을 손에 쥐어주신 아저씨, 작은 며느리가 가져왔다면서 비닐봉지에 튀밥을 담아 건네주시던 할머니, 당일에 전화 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오라고 했던 대전과 청주에 사는 나의 동서들. 그리고 광주민우회 백희정 대표님과 이미선 샘께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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