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10월호 [생생한시각] 반경 2.3km안에 홈플러스만 세 곳
반경 2.3km안에 홈플러스만 세 곳
-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을 반대운동, 이렇게 진행됐습니다.
정경섭·민중의 집 대표
지난해 12월이었습니다. 합정동에 홈플러스가 입점 예고 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망원시장과 월드컵 시장을 찾아갔습니다. 두 시장은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예정지에서 불과 650미터 거리에 있었서 만약 홈플러스가 입점 된다면 크나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의외로 두 시장 임원들의 반응은 덤덤했습니다. “이미 결정된 걸 어떻게 하겠느냐”, “우리 같은 사람들이 대형마트가 입점되는 것을 막아낼 수 있겠느냐”고 한숨을 내쉬면서도 조금은 무기력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 보이셨습니다.
몇 차례 만남을 가지면서, 망원시장과 월드컵 시장 뿐 아니라, 인근 골목 상가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게 되어 결국 지역 공동체가 파괴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토론했습니다.
시장의 상인들은 적게는 10년, 많게는 30년 넘게 시장에서 장사를 해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두 명이 홈플러스 입점을 한번 막아보자고 의지를 밝히니, 빠르게 서로에게 전달됐습니다. 남다른 동료의식으로 감정의 전이도 굉장히 빨랐습니다. 전통시장은 공동체와 다름 없습니다. 한 곳만 장사가 안 될 수는 없습니다. 잘되면 함께 잘되고, 못되면 함께 망한다는 의식이 존재했습니다.
공동체이기 때문에
바로, 이 공동체 의식이 최초의 홈플러스 반대 투쟁을 하게 된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즉 나와 당신을 묶어내 서로에게 의지를 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후, 임원들이 찾아와 “시장 상인들이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을 막아내기 위해서 대책위를 꾸렸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대책위까지 꾸리고, 매주 월, 수, 금 회의까지 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올 1월부터 본격적으로 상인들과 함께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를 위한 행동에 돌입했습니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최초로 이 사안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한 건 저였지만, 한번 불이 붙기 시작한 상인들은 기적과도 같은 일들을 해냈습니다.
월, 수, 금 밤 10시 매주 세 차례 회의가 열렸습니다. 전통시장 반경 1킬로미터 안에는 대형마트가 입점될 수 없게 법이 개정됐지만, 홈플러스 측은 법 개정 직전에 구청에 서류 등록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상인들은 회의를 통해서 이를 극복하는 방안은 여론을 조성하는 길 뿐이라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여론은 가만히 있으면 자연스럽게 조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네 번의 철시, 포기하지 않는 걸음
쉽게 결정하기 힘든 시장 철시가 무려 네 차례나 단행됐습니다. 철시를 단행하기까지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회의 때마다 과연 전 시장이 문을 닫고 데모에 나가는 것이 가능하냐는 의견, 시장 철시 정도의 강력한 의지 없이는 거대자본을 이길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습니다. 철시가 결정되서도 임원들은 시장 상인들을 일일이 방문해 하루 장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간곡하게 설득했습니다.
첫 번째 철시 때는 마포구청 앞까지 삼배일배를 하고 갔습니다. 두 번째에는 상암동 홈플러스를 세 번째는 국회 앞으로 갔습니다. 네 번째에는 강남에 위치한 홈플러스 본사 앞으로 집결했습니다. 네 번의 철시 동안 모두가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군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2.3킬로미터 안에 무려 세 곳의 홈플러스가 입점 되는 기네스 북에 오를만한 상황을 세상에 알려내기 위해서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고, 30도가 넘는 땡볕 아래에서도 철시를 단행하고 모였습니다.
전통시장의 존재 이유
때로는 주민을 위해서 대형마트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대형마트에서 번 돈은 지역 경제를 위해서 쓰이지 않습니다. 전통시장에서 번 돈은 지역에서 유통되며, 지역 경제를 활성화 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전통시장은 문화적인 이유에서도 필요하다고 사람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시장은 단순히 물건만 사고파는 곳이 아닙니다.
특히, 전통시장에서 상인과 몇 십년간 관계를 맺어온 손님의 관계는 대단히 특별합니다. 손님의 입장에서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키는 가게는 어느 새 삶의 일부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통시장은 상인들끼리만 친밀감을 형성하는 ‘상인들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과의 공동체입니다.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그래서 더 뜨거웠던 것 같습니다. 1만5천명이 넘는 동네 주민들이 시장상인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합정도 홈플러스 입점반대’서명에 동참했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를 비롯해 마포지역 시민단체가 대책위에 이름을 올려놓고 힘을 보태주었습니다. 서울시에서는 ‘마을 만들기’가 한창인데, 이미 전통시장을 통해 형성된 마을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마포지역 시민단체들에게 형성됐습니다.
공동육아, 생협 등 공동체의 전통이 있는 마포에서 망원시장, 월드컵시장을 지켜는 건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성미산을 넘어서지 못한 공동체가 기존의 공동체인 전통시장과 만나며 공동체의 새로운 확장을 모색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8월30일에 입점을 하겠다는 홈플러스는 상인들의 천막 농성 때문인지, 지역 여론 때문인지,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건지 알수 없지만 입점을 연기했습니다. 아니, 아직까지 입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단은 절반의 승리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지만, 그래도 거대자본이 추석 대목을 포기하고 입점을 연기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마포구청·마포구의회·서울시의회에서도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은 상도덕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불과 2.3킬로미터 안에 세 곳의 홈플러스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입니다. 골목 상권과 전통시장을 지키기 위해 민우회 회원들의 많은 관심, 그리고 지지를 호소하며 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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