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10월호 [기획]치유의 유행과 자아에의 몰입
힐링의 힐링이 필요하다.
힐링의 사전적의미는
healing [|hi:lɪŋ] 영국식 (몸이나 마음의) 치유 입니다.
힐링을 주제로 토크 프로그램이 있고,
힐링을 위한 여러가지 치유프로그램이 있고,
힐링을 주제로 한 강좌들도 있습니다.
사방에서 "치유"를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예능프로그램을 볼 때도 공부를 할때도 힐링이 필요한가 봅니다.
왜? 우리에게 힐링이 필요할까요?
우린 지금껏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살았던 걸까요?
그래서
힐링을 천천히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마케팅전략으로 변해버린 "힐링"을 다시 살피고 고민해 보기로 했습니다.
"치유" 사회문화현상으로 퍼져나가게 된 배경은 무엇일지를 <친밀한 적>의 저자 정승화님이 풀어냅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치유가 될수 없을까? 회원 나무의 고민을 들어봅니다.
많은 치유 프로그램 중에 춤테라피 경험을 예술심리치료센터 <꿈꾸는 몸, 춤추는 마음> 운영자 모모님에게 들어봤습니다.
치유의 유행과 자아에의 몰입
정승화·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경기가 어려울수록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따뜻한 이야기와 실용적인 경제서가 강세를 보인다”고 한다. 한 대형서점은 IMF경제위기였던 1998년에 이어 2003년 카드대란이 한창이었던 시기에 이와 같은 진단을 내놓았다. 그리고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로 유래없는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시크릿>(론다 번 외)의 ‘비밀’,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공지영)의 ‘응원’, <하악하악>(이외수)의 ‘거친 숨소리’, 아고라 광장에서의 치유로서의 글쓰기, <개밥바라기별>(황석영), <완득이>(김려령), <리버보이>(팀 보울러) 등 성장소설, 죽음과 자살을 다룬 책, 섬세하게 인간의 마음을 위로하는 심리학 서적 등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연구소장인 한기호는 “1998년에는 잭 캔필드의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이레) 등 남들을 배려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즐겼다면, 2003년에는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나 <2막> 등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절망 앞에 선 '나'의 이야기를 찾았다. 그러나 2008년의 ‘나’는 ‘응원’을 받는 나, ‘위로’를 필요로 하는 나이다.” 성공이라는 미래의 희망도 꿈꾸기 어려운 현실에서 당장의 오늘 하루를 버티기 힘든 우울한 사람들은 내면의 상처에 집중하고 스스로 위안받는 자기치유에 몰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치유 열풍은 경제위기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인 것일까?
치유의 마케팅
1996년 넥스트그룹에서는 AT&T, 머크, 디아지오, P&G, 로레알, 유니레버 등의 대기업들의 지원 속에서 21세기 소비자행동이 무엇에 의해 좌우되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인간욕망 프로젝트’라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인문학자와 예술가를 비롯한 광범위한 사회경제계의 전문가들을 망라하여 수행된 이 연구에 따르면 음식, 섹스, 권력에 대한 기존의 원초적 욕망이 인류 역사 제1부에서 우리를 움직이는 핵심적 욕망들이었다면, 인류 역사 제2부에서는 최적의 마음상태를 추구하는 새로운 원초적 욕망이 동기부여와 설득, 그리고 행동의 역학을 지배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즉 현대인들은 섹스보다 마음의 평화를 더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 경제전문가들은 ‘현대의 마케팅 산업은 인간의 감정과 마음에 대한 실질적이고 진정한 통찰’에 바탕을 두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고객을 잠재적으로 우울증이나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로 바라보고 상품 구매의 전과정에서 정서적 만족을 향할 수 있도록 마케팅 전략을 새롭게 재조정하라는 논의를 통해 ‘치유자로서의 마케터’ 상을 제시하고 있다. 치유는 그야말로 21세기 새로운 소비자 욕망이자 문화적 코드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치유 열풍의 이면에서 우리는 심리학의 대중화를 관찰할 수 있다. 한겨레 문화센터의 상담코너 게시판에 올라온 다양한 글들이나 이에 대한 상담내용을 책으로 엮어낸 김형경의 <천개의 공감>에서도 어린시절의 애정결핍이나 폭력, 내면의 죄의식, 아버지의 대리형상, 방어기제, 투사된 감정 등. 자아를 해석하고 관찰하는데 심리학적 언어가 대중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통 받고 있는 자아를 전문가에게 호소하면서 자신의 자아와 감정을 관찰하고 치유적 언어로 해석하는 경향은 점차 일상화되고 있다. 그리고 심리학은 심각한 심리적 질병을 다루는 것에서 훨씬 더 넓은 신경증적 비참함의 영역을 포괄하는 것으로 확장되고 있다.
치유 문화의 이면
이러한 치유 문화의 확산은 치유 전문가의 등장과 치유와 관련된 소비 시장의 형성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치유 문화는 행복하고 성공한 삶을 위한 정신건강과 감정 관리를 일상의 규범으로 부여하면서 틈새시장을 창조하였고 감정들, 지나친 사랑, 죄의식, 불안 등을 노출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공적 대상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매일의 삶 속에 있는 부부갈등, 양육, 실연, 이혼, 채무, 사업실패, 실직 등 삶의 사건들은 치유산업의 확대 속에서 ‘치료가 가능한 문제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심리치유적 문헌들에서 진정한 자아는 건강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정의된 감정적 상태와 동의어처럼 여겨지고 심리치유적 설득은 웰빙에 대한 문제를 의료적 은유와 병리화된 일상생활의 문제로 바꾸고 있다.
미국 대중문화의 메이크오버 문화(makeover culture)를 분석하면서 맥기는 근대 초 자율적인 “개인들의 적극적인 자기실현을 위한 노력을 강조한 ‘자조(self-help)’라는 개념이 최근 들어서 다양한 전문가 담론과 개인들의 욕망의 접합 속에서 자기치유를 위한 활동으로 그 의미가 변화되었음에 주목하였다. 이전의 ‘자조’는 정상성, 만족, 성공을 보증하는 삶에 대한 합리적인 대답을 제공하는 전문가들과 사회적, 정치적 관습에 부합하기 위한 활동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개인적인 행복과 향상된 삶의 질을 희망하는 개인들 사이의 상호협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개인적인 치유활동으로 정의되고 있다. 문제는 확산되는 자조담론과 치유문화가 새로운 능력주의의 신화를 유포하면서 사회적 성공과 실패를 개인의 자기관리의 문제로 변형시킨다는 것이다. 만일 성공이 단지 한 개인 자신의 노력의 결과라면, 어떤 실패에 대해서도 그 책임은 반드시 개인적 결점이나 나약함 때문인 것이 된다.” 자기계발 문화와 치유 산업의 대중적 확산 속에서 사회생활의 제 문제들은 자아와 심리의 문제로 환원되고 있고 이러한 심리화의 효과로서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심리화되고 사유화(privatization)되고 있다.
자유로운 자아를 위한 치유가 되기를
치유 문화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비판은 심리학과 치유학이 그것이 치료한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병을 창조하거나 최소한 부양시킨다는 것이다. 치유학은 사회관계 속의 다양한 갈등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다루거나 해결하는 것을 돕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우리에게 타자들에 대한 우리의 헌신보다는 우리의 요구와 선호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치유담론의 방패 아래, 사회관계는 사회적 제도에 대한 개인들의 관심이나 헌신의 부족을 용서하고 자기애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행복과 성공, 사회와 동떨어진 자아의 주관적 안녕과 평화에만 관심을 집중하도록 만든다.
소비와 치유적 자기몰입의 유혹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정신의 퇴조와 정치적인 냉소주의의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자아를 인준하도록 하면서 심리치유적 설득은 우리가 시민권이나 정치의 더 큰 영역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도록 만든다. 또한 불안한 시대에 허구적인 안정감을 약속하며 우리에게 사적인 자아와 공적 영역을 연결시켜 사유할 수 있는 힘을 무화시킨다. 치유 문화와 자조서에서 제시되는 자아상은 자아에서 공적인 내용과 정치적 내용을 텅 비게 만들고 그 내용을 자기애적인 자아에 대한 관심으로 대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입고 우울한 세계감은 한편으로 불안한 미래와 절망의 현실에 대한 반응이지만, 상품화된 치유 산업의 확산 속에서 우리는 치유 상품의 소비자로서만 위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치유 문화와 자기계발 문화는 사회적 성공과 실패를 개인들의 자기관리의 성공과 실패의 문제로 전도시키고 그 모든 사회적 불행과 실패의 책임을 개인의 감정 관리의 문제로 환원한다. 우리의 상처받은 내면과 우울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치유가 어떻게 진정으로 우리의 자아를 자유롭게 하는 ‘해방의 기획’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나의 상처와 우울이 우리 모두가 처한 사회의 일반적 상황과 구조적 모순 속에서 형성된 것인지를 깨닫는 것이 그 시작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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