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10월호 [기획] 일상에서 꽃 피우는 치유
일상에서 꽃 피우는 치유
박소라(모모) · 예술심리치료센타 ‘꿈꾸는 몸, 춤추는 마음’
누에를 아시나요? 누에는 스스로 자기 입에서 나온 실로 ‘고치’를 만듭니다. 자기 집에 갇혀서 번데기로 굳어져 갑니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게 바로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내 생각과 감정에 갇혀 꼼짝 못하고 살고 있는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고치를 뚫고 밖으로 나와 훨훨 날아가고 싶었습니다. 행복 하고 싶었습니다. 이 글은 한 마리의 누에가 자신이 만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찾아 떠나는, 앓음으로 깨닫고, 아름다운 나를 보게 된 소박한 여정의 흔적입니다.
‘익숙한 삶’의 자리로부터
조금은 늦은 나이에 스윙을 만나 춤의 세계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몸의 세계를 만났습니다. 몸에서 생기와 기쁨이 흐르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리듬에 따라 몸이 움직일 때마다 마음은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춤 떼라피와도 인연을 맺었습니다. 춤 떼라피를 경험 하던 중 성추행 피해를 경험했습니다. 사건을 계기로 숨겨져 있던 무의식이 의식으로 거침없이 흘러나왔습니다. 누르고 누르던 분노와 슬픔, 두려움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정신을 놓고 6개월 이상을 살았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무언가를 잡기 위해 물속에서 발버둥 치던 순간이었습니다. 지푸라기 하나라도 나무토막 하나라도 의지하고 싶은 시간이었습니다. 가족들에겐 말도 못하고 지나간 인연을 찾아가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주위에서 힘이 되어주려 했던 친구들도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술로 모든 것을 잊고자 했던 하루 하루가 몸의 기운을 모두 빼앗아 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뒤로 물러나 설 자리가 없는 벼랑 끝에 서서 그냥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춤과 리듬’, 내안에 꽃피다
세상과 나에 대한 분노로 가득하고, 나의 의지로 삶을 통제할 수 없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수축되어 있었습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춤 떼라피를 하며 그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몸에 온전히 저를 맡겼습니다. 리듬에 맞추어 하늘 위로 치켜 올려져 있는 두 팔, 허공으로 높이 뛰어오른 두 발, 새의 깃처럼 허공으로 퍼져나간 머리카락. 분명 날개가 없는데도 날고 있었습니다. 투명한 날개가 사라질 무렵, 꼭 감긴 두 눈을 떠보니 한 소녀가 내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녀는 나에게 살포시 다가와 속삭입니다. “소라, 나는 움직이고 싶어. 큰 걸음으로 걷고 싶어. 뛰고 싶어, 춤추고 싶어. 날고 싶어. 내 손을 잡아 줘”
나는 너다, 너는 나다
리듬에 몸을 움직입니다. 꼼지락 거리는 엄지손가락이 보입니다. 계속 바라봅니다. 다섯 개의 손가락은 한 손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왼손이 보입니다. 왼손과 오른손이 한 몸통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몸통과 연결된 두 발을 봅니다. 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땅은 다른 사람의 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땅을 딛고 ‘나와 너’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치에 갇혀 나를 고집했던 순간에는 다섯 개의 손가락이 하나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섯 개의 손가락이 각각 별개였습니다. 만약 손가락이 별개라면 두 번째 손가락을 잘라버린다고 해서 다른 손가락들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생각을 바꿔 몸을 보니 다섯 개의 손가락이 독립된 모양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한 개의 손가락이 없어지면 다른 손가락들이 얼마나 아프고 불편할까요. 몸이 말해 줍니다. 너의 불행이 나의 불행이 되고, 너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라구요.
“타인의 불행 위에 나의 행복을 쌓지 않으리라.” 내가 꿈꾸게 된 또 하나의 삶입니다. 누군가를 밟고 회사에 들어가고, 승진을 하는 삶. 필요 이상의 부를 채우기 위해 누군가는 아프고 굶주리게 하는 삶. 타인에게 폭력과 상처를 주는 삶. 나만 보였을 때는 너무나 당연한 세상사였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춤을 추고 수행을 하면서 이 둘이 떨어져 있지 않고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경쟁을 던져버리고 ‘너도 좋고 나도 좋은,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새로운 길을 가고 싶어졌습니다. 경쟁사회에 살면서도 전혀 경쟁하지 않고 사는 길. 경쟁에 이기면서도 타인을 억누르지 않고, 경쟁에 지면서도 패배감이 없이 사는 길. 자신에게 허락된 지혜와 능력과 사랑이 이 지구에 여한 없이 흘러나가도록 통로가 되는 삶. 그 길의 가능성을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앓음’, ‘알음’, ‘아름’다운 나
앓는 고통을 지나니 알아지게 되었습니다. 앓는 고통 없이 알아지는 것이 없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각을 넘어 있는 그대로를 보고 절대적으로 수용 하고 수용 받는 삶.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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