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10월호 [기획] 힐링단상
힐링단상
나무· 사회복지사
처음 ‘힐링’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힐링 캠프’라는 예능 프로그램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힐링’이라는 단어도 상품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수긍할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힐링’이 와닿지 않았었다. 집에 돌아와 나에게 있어서 ‘힐링’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Y와 함께한 시간
8년 전에 처음 만났던 Y는 7년 전부터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고, 꾸준히 나에게 많은 고민들을 털어놓고 있다. 그 고민들은 연애에서 비롯된 것에서부터 자기 자신에 대한 것. 친구와의 갈등, 윗사람에게서 받는 스트레스, 진로에 관한 고민, 가정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조금 과장하면 Y의 삶에 있어서의 모든 고민들을 함께 했다고 할 수 있다. Y의 고민들을 듣고 그 고민들을 함께하는 시간들은 때로는 나에게도 매우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어떤 사람의 힘든 시간들을 오랫동안 함께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그 방향이 일방적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나 또한 Y에게 나의 고민들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나의 부족한 부분들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Y와 함께한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고, 스스로의 현재의 모습에 대해서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동안 Y와 나는 서로에게 어떻게 보일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돌아와서 다행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 중에서 가장 힘이 들었던 때는 대학원을 휴학하던 때 즈음의 3년 동안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던, 나는 스스로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고, 결국 그 힘겨움을 견디지 못하고 많은 것으로부터 도망쳐 나왔었다. 물론 그 시간들이 나에게 힘들었던 것만큼이나, 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어느 정도의 안정을 찾은 뒤에도 다시 학업을 마치기 위해서 대학원으로 돌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음 학기에는 복학해야겠다는 결심을 몇 번이나 했었는지 모른다. 도망치듯 나와 버렸던 그 공간을 함께 사람들의 시선들을 극복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었다. 시간이 흐르고 학교의 규정상 더 이상 휴학 상태를 유지 할 수 없는 시기가 되어서야, 내가 감내해야 할 시선들에 대해서 충분히 인정하게 되었다. 다행히 그즈음의 나는 내가 잘못했던 일들로 인한 좋지 않은 평가들에 대해서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해있었다. 그런 나에게 어떤 선배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돌아올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야!”라고 말 해주었었다. 그 선배의 말은 나에게 너무나 뜻밖이었다. 선배의 그 말은 도망치듯 떠났던 마음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어려움도,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성장까지. 모두 인정하는 말로 느껴졌다.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으로서 힐링
[‘연분홍치마’와 페미니스트 친구들의 수다]라는 이름으로 ‘두개의 문’ 상영호가 있었다. 그날 내가 앉아있었던 영화관에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첫 줄에 앉아있었던 내 앞의 무대에는 몇 년 전 물·길에서 강의를 해주었고,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 기억이 있는 사람과,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민우회 혹은 관련된 행사에서 언젠가 한번쯤 본 사람이 있었고, 아마도 객석 어딘가에는 민우회의 몇몇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되었었지만, 여하튼 그곳은 나에게 생경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공간에 앉아있는 것이 너무나 편안했다. 그 영화관에서는 이미 보았던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음에도, 일상에 지쳐있던 나는 며칠 전부터 그 날을 막연히 기다리고 있었다. 근래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공간은 나에게 익숙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의 마음을 가장 불편하게 만들었었다. 그런 나에게는 생경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던 그 날의 그 영화관이 피난처 같은 곳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힐링’ 또는 치유의 과정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가 만나왔고 앞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어 가는 과정들이 ‘힐링’이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치유의 과정이자 성장의 과정이다. 자신의 잣대로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서로의 현재의 모습을 인정하고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다. 상대방과 스스로의 현재의 모습을 인정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각자의 성장을 인정하는 것이며, 앞으로의 해나가게 될 성장의 가능성까지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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