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12월호 [민우ing] 성폭력 범죄 양형에 대한 제안
성폭력 범죄 양형에 대한 제안
- <검∙판사 이렇게 할 수 있다>Ⅱ 성폭력 범죄 판결 속 양형 이유 분석
이선미(썬) ∙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우리의 시각으로 법관의 시각을 보다.
얼마 전 상담소 탁자 위에 한 이름 모를 변호사의 명함이 놓여 있었다. 명함은 봤지만 지금도 이름을 모른다. 아니 읽지 못했다. 대신 이름을 한자(漢子)로 박으면 어떡하느냐는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다. 명함 하나에 공연히 씩씩거린 나는 한자 까막눈이다. 괜스레 명함주인이 얄궂게 느껴졌다. 내가 의뢰인이라면 첫 만남부터 거리감을 느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문턱 높은 ‘법’ 때문에 만나게 된 사람인데 낯설고 어려운 포스를 풍기는 명함이라니.
그런데 문득 ‘내가 너무 과민한건 아닌가?’ 싶다가도 ‘왜 이러지?’ 싶어진다. 이는 필시 판례분석 활동을 하며 받았던 스트레스로 인한 뾰족함이다. 판례를 분석해야 하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하기가 버거웠다. 일상과 동떨어진 언어로 구성된 ‘법’의 영역에서 나의 독해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례를 붙잡고, 같은 줄을 읽고 또 읽는 신공(?)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성폭력 범죄의 판례에 관심이 있는 8인의 기획단이 모여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법’ 그 자체를 분석하는 것이 아닌 법을 집행하는 법관의 시각을 들여다보고자 했기에 가능했다. 우리의 시각으로.
왜, 무엇을 보고자 했나.
상담소에서는 <검∙판사 이렇게 할 수 있다>의 두 번째 시리즈로써 올해 가을 성폭력 범죄 판결 속 양형의 이유를 분석했다. 기획단은 모여서 대법원 종합법률서비스에 공개 된 2009년 7월 1일부터 2011년 12월 31일까지의 성폭력 범죄 판결문 69건(28사례)을 살펴봤다.
2009년 아동성폭력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성폭력에 대한 공분이 가해자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모아졌고 이에 대해 국회와 관련기관이 편승하듯 강경처벌정책을 내놓으며 법정형을 상향조정하고 양형기준안을 정비했다. 그러나 기획단은 높은 법정형이 실질적인 처벌을 담보하지 않기에 처벌에 있어서 양형을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에 판례의 시기를 2009년 7월 이후로 설정하고 ‘양형의 이유’를 중심으로 분석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는 처벌의 수위만을 높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형량을 결정하고 이를 집행하는 법관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만약 법관이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과 인식을 가졌다면 법정형이 높아졌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법 개정을 통해 무언가 변화를 기대한다면 반드시 법관의 의식 변화도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 그래서 법이 아닌 그 안의 내용을 보는 것이 중요했고 판결문에서 어떤 이유를 들어 양형을 결정했는지를 따져보고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했다.
정리하자면 ‘법률’ 자체 보다 어떻게 해당 형량을 결정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분석하는 것이 실형 선고율이 낮은 지금의 상황에서 실질적인 처벌 가능성을 보다 확장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양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보며 법관의 판단 기준이 무엇이었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보고 살펴봤다.
성폭력 범죄 양형에 대한 우리의 요구
1. 판결문에서 양형이유를 구체적으로 서술하라. 양형에 있어 개별적 사유의 내용 및 고려의 정도를 구체적으로 판결문에 서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재판결과를 이해하고 그 결과가 적절한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2. 피해자와의 합의가 양형감경사유로서 제시될 때 양형에 미치는 정도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라. 피해자와의 합의 ‘과정’에 대한 질적 고려 및 양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의 마련이 필요하다. 3. 친족간성폭력 및 부부강간죄의 합의에 대한 양형의 판단은 관계의 특수성과 합의의 과정을 반드시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 친족간성폭력 및 부부강간죄의 경우 다른 가족들로부터 합의종용을 받아 진정한 의사에 의하지 않고 합의할 높은 개연성을 갖는다. 따라서 형사합의를 양형에 반영할 시에는 관계의 특수성과 합의의 질적 과정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
위 세 가지 의견과 함께 전문가(장임다혜∙조인섭 정책위원) 의견을 첨부하여 대법원과 양형위원회를 포함한 전국의 각 법원에 의견서를 발송하고 회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각 의견을 뒷받침하는 분석 내용은 상담소 홈페이지에 올린 의견서를 통해 보다 상세하게 확인하실 수 있다. 또한 이를 내놓기까지의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회의록과 기획단이 성폭력 범죄 판례를 보며 나눴던 다양한 문제의식을 일곱 개의 꼭지로 담아내어 연재하고 있으니 이 또한 상담소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다. 아니 확인해 주시길 바란다.
의견서를 통째로 싣지 못하고 요구를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기획단만의 요구가 아닌 우리 모두의 요구로 변화를 기대하며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그 변화의 과정을 당신도 지켜보고 싶지 않으신가. 그렇다면 상담소 홈페이지로!
썬
• 못난 나를 마주할 때 도망가지 않고 직면하는 법을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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