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12월호 [생생한시각] 삼발이 의자로 버티는 국민건강보험, 그 다리 중 하나가 금이 가기 시작하다
삼발이 의자로 버티는 국민건강보험, 그 다리 중 하나가 금이 가기 시작하다
최규진•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부장
건강보험이라는 삼발이 의자
한국의 건강보험은 세 개의 다리로 구성된 의자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다리는 대한민국의 모든 병원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보험공단과 계약을 맺고, 건강보험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건강보험당연지정제’라는 다리다. 이 제도로 인해 모든 병의원은 공단이 정한 수가체계에 따라 진료비를 결정해야 한다. 두 번째 다리는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되도록 한 ‘의무가입제’이다. 조금만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면 알겠지만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증이 있었던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지금이야 병원에서 이름만 말해도 건강보험으로 자동 처리되지만 1989년 이전 만해도 보험처리가 안되면 배 이상 비싼 진료비를 지불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다리는 최근 이명박 정부에 의해서 금이 가기 시작한 모든 의료기관의 ‘비영리법인제도’ 다. 대한민국의 병원은 의사 자격을 가진 개인, 국가, 지방자치단체, 사회복지법인이 비영리법인 형태로만 지을 수 있다. 비영리병원은 수익의 일부를 외부 투자자에게 배당할 수 없으며, 모든 수익은 병원 내 인건비, 의료설비, 연구비 등으로만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주식회사형 병원을 뜻하는 영리병원은 병원에서 번 돈을 투자자에게 배당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의료기관이다.
거침없는 하이킥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이렇게 세 개의 다리로 구성된 ‘국민건강보험’ 이라는 의자에 앉아있다. 그런데 삼발이 의자는 다리 하나만 부러져도 주저앉고 만다. 이명박 정권 5년간 추진한 의료민영화 정책은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의자에 앉아 있는 국민들을 주저앉히려는 시도였다. 이명박 정권은 당선 초기, 인수위 시절부터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를 들고 나왔었다. 우리가 잘 기억하듯이 이러한 시도는 거대한 촛불들에 의해 전면 거부되었다. 촛불에 뜨겁게 데인 다음부터, 이명박 정권은 다양한 우회적 법안을 통해 의료민영화를 시도했지만 국민들의 저항으로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하지만 법안 통과가 반대에 부딪히자 현행법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법적 제도적 절차를 시도했다. 임기 4개월을 앞둔 이명박 정권은 이제 아무것도 상관없다는 듯이 보건복지부를 앞세워 국민들을 향해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렸다. 보건복지부가 시행규칙을 고시해 영리병원을 허용에 물꼬를 튼 것이다. 민의의 대표기관이라 한다는 국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행정부의 시행규칙 제정이라는 꼼수를 통해서 말이다.
영리병원 시행규칙 고시의 내막
정부는 경제자유구역에 투자하는 외국기업이나 외국인 거주자들을 위한 외국병원을 짓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것은 앞서 말한 삼발이 의자에 금을 내는 일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투자자는 삼성과, KT&G가 50% 그리고 일본 다이와증권이 50%를 투자한 컨소시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상 이명박 정권과 공조를 이루며 건강보험을 흔들어왔던 삼성에게 정권이 준 선물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인천송도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경제자유구역은 18개 전국 도시에 해당되며 광역자치시만 하더라도 3개가 포함된다. 사실상 강원도를 제외한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 서울의 대형병원 몇 군데가 한국 의료시스템을 뒤흔드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전국적으로 확산될 영리병원에 의해 한국 의료시스템의 붕괴를 걱정하는 것은 절대 기우이지 않다. 이미 병원협회는 “해외자본에게만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것은 역차별”이라며 영리병원의 전면 허용을 요구하고 있어서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은 결국 전국 주요 도시로 퍼질 수 있다.
흔들리는 의자, 무엇을 할 것인가
이렇듯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삼발이 의자의 다리 하나가 ‘영리병원 허용’에 의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만약 영리병원이 전면적으로 허용되면 나머지 다리들도 함께 흔들리며 주저앉아 버릴 것이다. 영리병원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아무리 병원비가 비싸더라도 부자들은 달려갈 것이다. 이러한 이들에게 ‘건강보험 의무가입제’는 불필요한 제도일 것이다. 그리고 병원들은 민간의료보험과 직접계약을 하는 미국식 의료시스템 전환을 요구할 것이다.
OECD 대부분의 나라들은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의료기관 비율이 75%를 넘는다. 하지만 한국은 국립대를 다 포함해도 공공의료기관은 7%밖에 안 되는 나라다. 공공의료기관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네 개의 균형 잡힌 다리를 가진 의자도 아니고 삼발이 의자에 위태롭게 앉아 있는 것이 한국의료의 현실이다. 결국 금이 간 다리가 부러지기 전에 의료민영화 관련법과 제도들을 다 폐지시켜야 한다. 그리고 의자가 무너져 엉덩방아를 찧기 전에 우리가 고쳐내야 한다. 흔들리는 것을 감지했을 때 당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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