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12월호 [人터뷰] <일다> 박희정 편집장, 성희롱에 ‘까칠한’ 세상을 그리다
<일다> 박희정 편집장, 성희롱에 ‘까칠한’ 세상을 그리다
책 제목이 <당신 그렇게 까칠해서 직장생활 하겠어?>라고 한다.
‘직장 내 성희롱’을 다룬 만화라는 걸 알고 보면 씁쓸한 제목이다.
하지만 이 책은 희망찬 씨앗이기도 하다.
최초의 ‘직장 내 성희롱’을 다룬 만화책이자,
성희롱이 공론화되고 법제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의미 있는 사건들을 모아낸
소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씨앗의 특별함은 ‘다음’을 만들어내는데 있다.
이 특별한 만화책은 ‘직장 내 성희롱’을 막연하게 고민하던 이들에게
기댈 수 있는 나무 그늘이 되고, 나아가 숲을 이뤄낼지도 모른다.
이 새로운 씨앗을 만들어 낸 박희정 편집장에게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편집팀
반갑습니다. 책 출간 축하드려요.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만화로 풀려면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일단은 법적인 용어들이나 개념을 설명을 해야 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개념 용어를 말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로 설명하는 해야 하니까요. 어떤 인물이 나와서 설명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 받는 느낌일 것 같더라고요. 지루하기도 하고요. 너무 교육 받는 느낌이 들겠다 싶더라고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설명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최대한 그런 느낌이 들지 않게 하는데 중점을 두었어요. 처음 책을 기획할 때부터 단순히 사례집에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례를 고를 때도 특별하게 사회적,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사건으로 골랐어요. 성희롱 개념이 처음 등장한 사례라든지, 법제화로 연결된 의미 있는 사건으로요. 성희롱을 다루다보니 사례를 표현할 때도 선정적으로 보이지 않게 묘사했어요. 특히, 얼굴들을 표현할 때, 그림의 이미지로 인해 어떤 인식들이 생겨나잖아요. 그런 부분을 피해서 얼굴을 추상적으로 묘사했어요.
현재 ‘일다’ 편집장으로 계신데요. ‘일다’ 편집장이자 박희정 개인의 첫 책으로 어려운 주제를 선택하셨어요.
출판사에서 먼저 기획을 제안하시면서 ‘일다’ 작가를 추천해달라고 연락이 왔었어요. ‘일다’ 기자들과 얘기를 하다가 적절한 작가로 저를 추천하셨죠. 제가 다양한 기사를 쓰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어요. 꾸준한 관심을 갖고 있었고요. 성희롱 문제는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는데도 아직까지도 피해자들이 문제를 드러내기 힘들고, 기업들의 인식도 너무 척박하죠. 이런 상황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게 원동력이 됐죠. 이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작업하기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사례집이 아닌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다룬 만화책은 처음이잖아요.
처음에는 막막하더라고요. 자료들을 손에 닿을 수 있는 건 다 찾아봤어요. 민우회 자료가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근데 보면 볼수록 정리하기가 더 어렵게 느껴지는 거예요. 기자니까 말로 설명하는 일은 어렵지 않은데, 이야기로 구성한다는 게 막막해서요. 구체적인 내용을 잡는데 오래 걸렸어요. 민우회는 자료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감수도 해주셨고 도움 되는 조언도 많이 해주셨어요. 책을 내기 전에 불안한 것도 있었어요. 개인의 이름으로 책이 나오지만 어쨌든 ‘일다’ 기자로서의 위치도 있고. 제가 자료들을 본다고 봤지만 실수하거나 미흡한 부분도 있으니까요. 민우회가 감수를 맡아주신 덕분에 안심하고 책을 낼 수 있었죠.
감수를 맡았던 노동팀 활동가가 책에 나오는 캐릭터가 박희정씨와 많이 닮았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자신을 그리신 건가요?
저 맞습니다.(웃음) 책 속에서 설명해주는 존재가 필요한데 인위적으로 만들지 말고, 내 책이니까 나 자신을 그렸어요. 이건 좀 웃긴 이야기인데요. 작업하면서 똑같은 얼굴을 엄청 많이 그리잖아요. 마지막 컷에 등장하는 얼굴은 제가 그려놓고도 정말 저랑 똑같았어요. (웃음)
책을 보면 아직은 익숙하지 않고 어려운 이야기를 누가 봐도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내셨어요.
기사를 쓰다보면 설득력을 많이 고민하게 되거든요. 대중들에게 비판이든 대안이든 현실적으로 설득력 있게 다가가기를 고민하게 되요. 여러 각도로 열어놓고 생각하게 되죠. 칼럼을 쓸 때도 어떤 반론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식으로 얘기 할 수 있을까?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기사를 쓰기 때문에. ‘일다’ 기자로서 훈련된 부분이 많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림은 언제부터 그리신 거예요?
중고등학생일 때부터 만화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최초의 만화 작업이라면 초등학교 때 <캔디 캔디>를 따라 그리던 때죠. 대학에 진학해서도 만화가가 되겠다는 결심이 흔들리지 않고 왔었는데. 여성주의를 접하고 세계관이 바뀌면서. 기자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여기까지 왔네요.
출간 된 책에 대한 감상이나 바람이 궁금합니다.
책을 만들 때 내용이 너무 어렵거나 분량이 너무 적지 않은 중간 정도의 수위를 구성하려고 노력했어요. 책을 마감하기까지 2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데요. 그런 고생은 금전적인 보상만을 생각한다면 하기 어려운 일이잖아요. 얼마나 팔릴지 모르겠지만 (웃음) 많이 읽어주세요. 그리고 기왕에 나온 책이니 좋은 역할을 하면 좋겠죠. 성희롱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소망도 있고요. 책 머리말 말미에도 썼지만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세상의 부조리에 맞선 여성들의 용기 덕분이에요. 민우회와 같은 여성단체들의 활동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사례들을 고를 때, 여성단체들의 활동을 기록하는 의미에서 쓴 것도 있어요. 감사와 존경을 바치는 의미도 있고요.
회원들에게 마지막 인사 해주세요.
책을 내는데 민우회에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성희롱이 사회에 알려지기까지 해왔던 활동들에 존경과 감사를 드리고요. 아, 책도 많이 소개해주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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