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12월호 [문화산책] 그녀들도 나처럼, 나도 그녀들처럼 - <미쓰 마마> 제작기
그녀들도 나처럼, 나도 그녀들처럼 - <미쓰 마마> 제작기
백연아 • 다큐멘터리 <미쓰 마마> 감독
처음 필자가 사회에서 '미혼모'라 불리는 이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미쓰 마마>를 기획하며 염두에 두었던 것은 두 가지였다. 가능한 다양한 생각을 가진 여러 명의 엄마들이 쌩얼로, 모자이크나 음성 변조가 없이 출연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첫 번째였고, 아이들이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영화를 통해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것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 기획의도를 실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를 처음 방문했던 2010년에만 해도 쌩얼로 자신과 아이를 공개하는 것에 선뜻 응해주는 분을 찾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반드시 여러 명의 엄마들이 출연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들이 '미혼모'이기 전에 학생, 워킹맘, 엄마, 딸 등 수많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고, '미혼모'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엄마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충돌하는 지점을 드러내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몇 개월 동안 그녀들을 따라다니며 설득한 끝에, 처음으로 용감하게 출연 결정을 해준 사람은 대외정책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형숙씨였다. 그 후로 촬영을 지켜보던 다른 엄마들도 차례로 출연에 응해 주셨다. 그녀들은 기대 이상으로 솔직하고 거침없는 속내를 드러내보였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다양한 연령대의 엄마들이 펼쳐내는 수다는 <미쓰 마마>가 기존의 '미혼모'들을 다룬 영화처럼 어둡거나 무거운 영화가 아니라, 발랄하고 경쾌하게 그려지지만 엄마들의 목소리가 중심에 있는 영화가 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엄마! 왜 이렇게 거북이처럼 느리냐고!
두 번째 기획의도는 더 복잡한 문제였다. 매스컴에서 '미혼모'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회정책이나, 인식 개선에 대한 이야기가 늘 빠지지 않지만 정작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빠져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는지를 현실감 있게 그리고 싶었다. 촬영 초기에는 형숙씨의 아들 준서에게 카메라를 한 대 별도로 배치해 카메라 한 대로는 상황을 담아내고 다른 한 대는 준서에게 집중했다. 또한 준서와 형숙씨의 진솔한 대화를 담아내기 위해 그들이 잠자리에 들어간 후에도 카메라를 끄지 않고 대화를 녹음하기도 했다. 이렇게 담아낸 장면이 영화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을 가지는 부분 중 하나인 ‘거북이 대화’ 씬이다.
준서는 아빠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난다. 형숙씨와 함께 살고 있진 않지만, 준서에게는 좋은 아빠이다. 그런데 준서의 아빠가 다른 여성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한편 형숙씨는 일이 많이 바빠져서 준서를 후배에게 맡기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엄마와 아들은 잠자리에 들어서 티격태격 다투기 시작했다. 급기야 준서가 엄마에게 “엄마, 나가!”라고 말했고, 엄마는 버릇없다며 아들을 혼냈다. 준서는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엄마, 왜 이렇게 거북이처럼 느리게 일하냐고… 아빠처럼 빨리 빨리 일해야지.”
당황한 엄마가 “엄마 거북이처럼 일 안해, 엄마 진짜 열심히 일하고 있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들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한다. “열심히 일하는 것도 문제야!”
이 상황을 보면서 필자 역시 울컥하면서도 뭔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나는 애초에 아이들을 향해 은연 중에 갖게 되는 '아빠랑 같이 살지 않아서 뭔가 다를 거야.‘ 라는 동정심을 꼬집고, 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나도 아빠랑 같이 살지 않을 때 아이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가 궁금했던 것이 아닐까? '혹시 준서가 아빠의 결혼 사실을 알고 있는게 아닐까? 그래서 예민해진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준서는 엄마가 자신과 시간을 보내 주지 않는 것 때문에 힘들어 했던 것이다.
<미쓰 마마>를 촬영하며 2년 가까이 그녀들과 아이들을 지켜보며 함께 생활했다. 그녀들의 고민을 들으며 느낀 점은, 이 모든 이야기들이 단지 결혼하지 않는 엄마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받게 되는 차가운 시선은 다른 여성들이 받고 있는 시선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의든 타의든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육아와 일 사이에서 힘겨워하는 여성. 이들이 받게 되는 차가운 시선 혹은 선입견과 다르지 않다.
사회가 '미혼모'라 부르는 이 여성들은 사실상 나처럼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하며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행복하고, 그래서 힘든 사람들이다. 진정으로 이 세상을 바꾸는 길은 그녀들에게 무책임한 '응원'만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녀들은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내면의 자신을 깨닫고 바꾸는 것부터!
백연아•
다섯 살 난 아들을 키우며 영화를 만들고 있다. 판소리를 하는 두 소년에 관한 이야기 <소리아이>에 이어 연출한 <미쓰마마>는 그녀의 두번째 장편 다큐멘터리이다. 앞으로 꾸준히 영화 작업을 하면서 유쾌한 여성들의 이야기 세상의 편견을 깨뜨리는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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