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12월호 [마포나루에서] 난 왜 나아지지 않지?
난 왜 나아지지 않지?
제이(김진선) ‧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
어느새 연말이다. 난 이맘때쯤이면 평소보다 더 깊게 삽질을 하곤 한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빨리 지났나, 올해 난 뭘 했나’하는 생각에 쓸데없이 우울해진다. 그러다 문득 뺨에 닿는 차가운 공기와 쨍한 햇빛에 괜히 ‘그래, 다 덤벼 이것들아!’하는 호기로운 마음이 되기도 한다. 들쑥날쑥 정신없는 나를 붙잡고 찬찬히 얘길 해보고 싶어지는 시즌이다.
근육을 만드는 습관
올 초에 세웠던 모토가 있었다. 근육 만들기. 혹은 근육을 만드는 습관들이기. 몸의 근육도 물론 해당되지만, 단지 그것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여기엔 감정의 근육, 생각의 근육, 관계의 근육 같은 것들도 포함된다. 갑자기 웬 뜬금없는 근육 타령일까?
지금 생각하면 좀 부끄럽지만, 예전에 나는 내가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된 듯 확 달라지길 원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한층 나아져 있을 나를 갈망했던 것이다. 당연히 매번 실망했다. ‘결국 또 이런 식이군’, ‘왜 난 나아지지 않지?’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 30대에도 40대에도 나 자신으로, 여전히 미숙하고 모르겠는 것투성이라서 애쓰는 나로 살아가게 되는 거구나.’ 이건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다. 과대망상에 가까운 자기애를 내려놓고 특별할 것 없는 나를 어여삐 여기려는 것이다. ‘달라진 나’ 같은 추상적인 뭔가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들을 해나가면서 쌓이는 하루하루의 힘을 믿으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생각했다. 지금은 근육을 키워두어야 할 때, 좋은 습관을 많이 들여 두어야 할 때라고. 게으른 자만심은 군살만 찌운다. 고집스런 자괴감은 힘없이 마르게 한다. 나날의 좋은 습관이 근육을 만든다. 근육은 혼란스럽거나 고통스러울 때 지쳐 포기하거나 뻣뻣하게 뚝 부러지지 않도록 해줄 무언가다. 그것은 내가 움직인 만큼 자리 잡히는 정직한 것이다. 자기 경험이 알알이 박힌 근육은 어떤 상황에서건 유연함과 지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도울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달성되어야 할 결과이기보다는 유지해야 할 태도일 것이다.
둘 사이의 관계를 예로 들자면, 끝내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지속시키는 서로에 대한 관심. 각자의 변화와 관계의 변화를 인식하고 포용하는 것.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해결하려는 부지런함. 힘든 순간에 빛나는 둘 사이의 농담들. 이런 것들이 관계의 잔 근육 같은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단지 시간이 오래 지난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부단히 움직여야 생기는 것들. 그냥 관성적으로 유지된 관계는 가질 수 없는 탄력 같은 것. 아, 그런데 사실 정말 피곤한 일이다. 때론 좋은 게 좋은 거지 싶다. 그리고 그렇게 놔둬도 괜찮은 관계도 있다. 하지만 몸의 근육을 만드는 거랑 똑같은 것 같다. 피곤해도 몸을 움직여 운동하는 즐거움이 있듯이, 관계의 잔 근육을 유지하기 위한 부단함에도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그냥 놔두면, 너무 물렁해지거나 뻣뻣해지곤 한다. 감정도 마찬가지, 생각도 마찬가지다.
한 해를 보내며 숨 고르기
어쨌든 다시, 어느새 연말. 나는 체지방측정기 앞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다. 과연 올해 운동하는 습관, 잘 생각하는 습관, 잘 관계 맺고 잘 노는 습관을 조금이라도 들여 놓았나? 물론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건 엄청나게 만만찮은 일이라는 걸. 그동안 쌓아온 나쁜 습관들은 너무나 편안하고 익숙하다. 내가 ‘올해부턴 이렇게 해보자’ 하고 꼽아 본 좋은 습관들은 매우 사소하고 구체적인 것부터 막연한 것까지 다양했는데, 모두 나랑 안 친하고 실천하기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를테면 대표적인 게 달리기이다. ‘저질 체력→금세 녹초가 됨→운동할 여력 없음→체력 저하’의 서글픈 고리를 끊어보고자, 일주일에 두 번이라도 달리기를 하자고 굳게 마음먹었었다. 심지어 관련된 책도 읽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올해 달린 날이 스무 날은 되려나.
‘어차피 일 년짜리 프로젝트는 아니었어.’라며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다. 여전히 나의 일부는 물렁물렁하게, 또 다른 일부는 앙상하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예년과 질적으로 다른 느낌이 있다. 불필요하게 자책하지 않으려는 것. 이제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하기보단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는 데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어쩌면 남들은 꼬맹이 시절부터 당연하게 알고 있었을지도 모를 결론에 미련하게 돌고 돌아 온 감이 있다만, 그만큼 더 섬세하고 단단할 수도 있다고 믿고, 장기적 프로젝트로 이어갈 테다.
실은 지금도 머리를 감싸 쥐고 ‘난 왜 나아지지 않지?’하며 울상이 될 때가 있다. 어쩔 수 없는 게, 그게 나다. 좀 바보 같긴 하지만, 너무 그런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만 않는다면 그렇게까지 나쁜 건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운동이랑 똑같다니까. 무리하면 다친다. (이래서 나아지지 않는 것이려나?) 문득 또, 내일이 기다려진다. 조금 감상적이어도 덜 뻘쭘하고 회한과 다짐이 많아도 괜찮은 12월이 있어 참 좋다는 생각과 함께.
제이‧
맑은 날을 좋아한다. '이런 날엔 나가 놀아야 되는데'를 입에 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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