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봄 [민우ing] 2012고용평등 상담경향
직장 내 왕따에 주목하는 이유 - 추락하는 여성 노동의 함축적 단면
2012 고용평등 상담 경향
김나현(용가리) 여는 민우회 여성노동팀
“회사가 남자직원만 챙기고 저와 여직원들은 방치해요. 부서회의를 할 때 안건과 관련 없는 남직원은 참석시키면서 정작 저는 제외한 채로 진행하거나 진행 내용도 알려주지 않아요.”
“야간근로를 하라고 해서 하지 않겠다고 했더니 그 이후부터 동료들에게 ‘너 쟤랑 얘기하지 마’라며 왕따를 시키고 일 못한다고 모욕을 주고 사사건건 비난을 해요.”
“회사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는데, ‘유혹해서 돈을 요구하려고 한다’, ‘징계 건을 성추행으로 무마하려고 한다’느니 하는 소문이 돌고 있어 너무 고통스러워요.”
참으로 억울하다. 분명 피해를 당하고 있고 견디다 못해 회사를 떠나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힘든 일인데, 어디 가서도 이를 호소하기가 어렵다. 말해 봤자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겪을 수 있는 문제’고, ‘나약하거나 제대로 적응을 못해서 생긴 네 성격 문제’라고 더 비난 받을 것 같다. 그런데, 이 문제가 정말 그 사람 개인의 잘못인 걸까?
직장 내 차별이 응축된 ‘왕따’
2012년 고용평등상담실에 접수된 상담 중 직장 내 성희롱이 187건(46%)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임신과 출산, 육아휴직 등 모성 관련한 해고 및 불이익은 88건(31.54%)에 이른다. 그런데 직장 내 왕따 그 자체의 주제로만 보자면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상담 239건 중 17건으로 7.1%), 수많은 상담 사례 속에 교묘한 차별과 불이익의 내용으로 직장 내 왕따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육아 휴직을 다녀와서 느끼는 싸늘한 눈빛과 표정 속에, 성희롱 문제제기 후에 등 뒤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문과 모함에서, 혹은 계약기간 만료일을 앞둔 계약직 사원에 대한 인사평가 등에서 다양한 왕따 피해와 불안감을 접할 수 있었다.
한 취업포털에서 직장인 3035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왕따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30.4%의 노동자가 회사에서 왕따를 경험했다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그 중 여성 노동자는 34.1%, 남성은 27.6%로 여성 노동자가 남성보다 더 높은 비율로 왕따를 겪고 있었다. 응답한 노동자의 33.5%는 직장 내 왕따로 인해 회사를 그만둔 적이 있다고 했고, 8.6%는 전문가의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이 설문조사를 통해서 상당수의 노동자가 왕따를 겪고 있고 심지어 회사를 그만두기까지 하는 등 직장 내 왕따 문제가 노동권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해 유형은 험담을 한다거나 회의, 회식 등 내부 정보를 전하지 않는다거나 무시하는 것, 자신의 능력보다 훨씬 단순하거나 쉬운 일만 시키는 것 등으로 나타났다. 최근의 또 다른 연구에서는 최근 6개월간 직장인의 86.6%가 직장 내 왕따를 경험했으며, 왕따를 주도하는 주요 가해자는 직속 상사(59.6%), 동료 (29.8%)라고 말하고 있다.
직장 내 왕따가 발생하는 이유
설문 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여성들이 더 많은 왕따를 겪고 있다. 이처럼 직장 내 왕따가 일어나는 주요 이유를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비정규직의 양산과 여성 고용의 불안정성을 들고 있다. 비정규직도 계약직, 간접고용, 특수고용직 등으로 점차 세분화되고 악화되었다. 2012년 8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남자는 정규직이 617만 명(60.9%), 비정규직이 396만 명(39.1%)로 정규직이 많았으나, 여자는 정규직이 309만 명(40.6%), 비정규직이 452만 명 (59.4%)로 비정규직이 훨씬 많다. 여성 노동자의 고용의 질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바로 임금이다. 남자 정규직의 월 임금을 100으로 할 때 여성 평균은 58.5%이고 여성 비정규직은 35.4%이다. 성별 임금 차이가 이토록 극심한 것을 보면 여성노동자들이 노동 현장에서 어떠한 취급을 받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정규직이고 너는 계약직이니 다르다, 권리도 다르고 대우도 다르게 받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인식이 깔리면서, 이른바 ‘노동신분’에 따라 일상적인 차별이 합리화되는 것이다.
둘째, 노동자가 성희롱 등 조직의 사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경우이다. 노동자로서 정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표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거나 모난 돌을 빼 버리듯 해고를 종용하기도 한다. 직장 내 성희롱을 겪은 뒤에 계약 거부나 해고 등 고용 상 불이익 뿐 아니라, 법적으로 대응하기 애매한 괴롭힘이나 왕따 때문에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
마지막으로 임신 출산 및 양육 때문에 휴직하거나 복귀한 경우에도 왕따 현상이 나타난다. 양립지원과 모성보호 관련 제도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 출산 및 양육을 이유로 조직에서 여성노동자를 배제하는 문화는 여전하다. 이는 임신, 출산 기간 동안 생길 수밖에 없는 공백을 그저 쉬는 것으로 이해하거나 여성의 재생산 활동을 저평가하는 사회적 인식과 동일선상에 있다. 심지어 모성보호 및 양립지원에 관한 상담 47건 중 비정규직 노동자의 상담이 단 1건 뿐이었다는 사실로 볼 때, 불안한 고용형태 때문에 산전후휴가나 육아 휴직은 기대하기도 어려우며, 결혼과 임신이라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장벽에 부딪히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
이처럼 직장 내 왕따는 다양한 여성 노동의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경쟁과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위에 있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확대되며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양상으로, 고립과 괴롭힘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직장 내 왕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직장 내 왕따 문제를 성희롱, 폭행과 같은 노동권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과 함께, 열악한 노동 조건이 개선되고 차별이 일상화되어 있는 조직문화가 변화해야 한다. 더불어 노동자 간에 경쟁이 아닌 상호 협조적인 노동이 가능하도록 하고 건강한 의사소통과 연대가 중요하다는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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