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봄 [기획] 변하면서 변치 않는, 민우회 총회 참가기
변하면서 변치 않는, 민우회 총회 참가기
재윤 여는 민우회 회원, 편집이루미
뭐랄까. 민우회 총회는, 엉터리 천주교 신자인 내가 연례행사처럼 성당 미사에 가는 것과 비슷했다. 신앙의 의지로 참여하듯 회원의 의무로 참석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빠지는 때도 있으나 늘 따뜻하게 맞아주고, 기도문을 읊듯 회원의 다짐을 읽고, 강론말씀을 듣듯 사업보고를 듣고, 성가를 부르며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듯 동의와 재청을 반복하고… 차이가 있다면 기도집 대신 예능프로 소품 같은 투표용 장갑을 들고 있어야 하고, 미사보다는 총회가 예능감 넘치고 재미있다는 정도.
하지만 총회 참석은 자료집의 두께처럼 한편으론 왠지 부담도 되어서 올해도 어째야 할지 재고 있었는데, ‘관록 있는 편집이루미’의 총회 후기가 필요하단다. 부끄러웠다. 한번 빠지면 반 년 만에 만나기도 하는 편집이루미 말고는 하는 일 없는 회원이 웬 관록. 어쨌든 민우회는 일없이 연차만 늘어가는 게으른 회원을 움직이는 계기를 제공한다. 뒤늦게 참석하게 된 총회는 마음가짐부터 남달랐다. 후기를 쓰려면 예전처럼 장갑에 낙서나 하며 앉아있으면 안되지.
참 열심히 참여한 총회
회원에게 총회는 민우회에 대한 관심을 스스로 확인하고 돌아볼 수 있는 기회다. 지나다 얼핏 들여다봤거나 간혹 참여도 했거나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부문별 사업에 대한 정리와 평가는, 요점정리 과외를 받으며 퍼즐을 맞추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성평등 복지국가 가이드라인 : 4W」같은 소책자로만 봤던 성평등 복지 정책 개발과 담론 확산 작업은 총회 자료집을 보며 어떤 흐름과 맥락이었는지 알게 된다. 2011년 『당신이 생각하는 ‘낙태’는 없다』라는 사례집으로만 기억하는 여성건강 부문의 낙태 관련 기획이 중장기 사업으로 지속되고 진화하고 있었구나. 사례집을 갱신해 얼마 전 출판된 『있잖아… 나, 낙태했어』 는 그 결과 중 하나다. 주문했다.
다양한 사업보고는 매번 비슷한 소감으로 요약된다, ‘사업 참 많이도 했네. 언제 이걸 다 했을까’라는 감탄. 총회에서 요약해줄 때만 파악하고 연중에는 잊는 것이 맹점이다. 내겐 취약한 숫자들이 나열되는 결산보고 역시 예산 대비 사업내용을 가늠하는 과도한 시도까지 하며 집중했다. 예나 지금이나 돌아서면 머릿속에서 싹 지워지는게 맹점이다. 사업보고와 함께, ‘감사’라는 팍팍한 단어에 믿음과 애정을 깔아두는 감사보고는 늘 작은 감동을 주고, 먼 길 마다 않고 모인 지부 분들의 말씀과 활동소개는 언제나 인상적이다. 이른바 로컬에서 나오는 뭔가 끈끈하고 독특한 활력이 느껴진다.
작정하고 열심히 듣지만 역시 사업보고는 지루해진다. 지루해질 때쯤 예의 특별프로그램을 끼워준다. 함께가는 회원상부터 특별상까지 상주고 상받기. 특히 평생회원패 받기가 취미가 아닐까 싶은 회원과 활동가에게 느끼는 감정은 존경심이다. 학교 다니며 개근상도 못 받아본 나, 언젠간 저거 한번 받아보고 싶다. 일단 회비나 올리고.
한편 ‘여는’이란 별칭도 새로 정했다. 새로운 별칭에 만족하는 분도 아쉬운 분도 있겠으나, 활동가나 회원이 별칭으로 정체감을 표현하고 확장하듯, 이 별칭이 민우회의 모양새를 잘 드러내면서 넓혀가는 이름이 되면 좋겠다.
새로운(!) 시대, 변하면서 변치 않는
이번 총회에서 귀에 들어온 가장 인상적인 표현은 “당황스러운 여성 대통령의 시대”라는 농담이다. 지나가는 농담인데 시쳇말로 웃기면서 슬프기도 하고, 사태를 정확하게 압축하는 표현인 것 같다. 멘탈붕괴의 시기를 거쳐 어느덧 무념무상, 그 분 개인에게 악의나 적의가 있지 않고 심지어 “부흥․행복․융성” 기조에 가급적 부응하는 신민이 될 계획이지만, 이 분의 ‘성별’이 여성이슈와 얽혀 부각될 때 마다 느껴지는 당황스러움은 어쩔 수 없다. ‘딸 셋 키워봐서 여성문제에 대해 잘 안다’와 같은 무리수를 던지던 전임자님께 황당함을 느꼈다면 이번엔 당황이다. 몇 가지 여성이슈에 대한 말씀으로도 파악되는 개인의 인식수준, 그와 무관하게 활용되는 타고난 성별, 여기에 그럴듯한 정책비전들이 함께 엉키면서 오는 당황스러움. 어떤 사람들에겐 상당히 새로워서 아직 적응하기 어려운 이 새로운 시대는 ‘변하면서 변치 않는’이란 총회 타이틀과 묘하게 겹치기도 한다. 세상은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을 것 같으니 우리도 적절히 변하면서 변치 않겠다는 뜻으로도 들리고.
2013년, 그리고 앞으로
어쨌거나 ‘난 그냥 회원’의 정체성을 가지고, 철저히 후기를 목적으로 2013년 총회에 참석한 결과는, 민우회 사업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봐야 스스로에게 더 좋을 거라는 본의 아닌 자극이다. 하긴 총회는 일 년에 한번쯤 가는 성당 미사가 내게 마음의 평화를 주듯 민우회를 통해 뭔가 힘을 받고 돌아오는 자리긴 했더란다.
더불어 민우회도,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어떻게 맞춰나갈지 궁금해진다. 생각보다 의외로 쉬울까, 아니면 더 어렵고 복잡할까. 뒤틀린 정치적․이념적 잣대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어떻게 시민단체다우면서도 여성단체다운 활동의 단락들을 만들어가게 될까. 혹은 또 어떤 버라이어티 예능 같은 재기를 보여줄까. 궁금하고 기대가 되고, 누군가 표현했듯이 민우회는 출중하고 빼어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데니까, 담담하고 활기 있게 해나가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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