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봄 [아홉 개의 시선] 춘천은 안녕하십니까?
춘천은 안녕하십니까?
손영옥 춘천여성민우회 공동대표
남양주 평내동에 사는 손씨 아줌마는 오늘도 춘천여성민우회로 출근을 해요. 그녀는 한때 민우회 사무국장을 하다가 6-7년 전에 춘천을 떠나 밥벌이에 매진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밥’ 문제가 좀 해결되어서 잠시 쉬어 보려던 참에 여느 때처럼(?) 민우회 총회에 참석했어요. 근데 뭔가, 좀 잘 안되어서, 얼떨결에 비상대책위원 중 한 사람이 되었어요. 그러다 결국 공동대표도 되었어요.
사실, 손씨 아줌마는 ‘coming soon...'이라는 메시지를 남기며 이사를 가기는 했어요. 그리고 왠지 민우회 안에 늘 있을 거 같았고, 회원이었다가 상근활동가가 되었고, 또 운영위원도 될 것이고, 대표도 해보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기는 했어요. 이게 야심인 건 확실해요. 이런 야심을 품은 사람이 없어서 춘천여성민우회가 뭔가 좀 잘 안 돼가고 있었거든요.
매주 월요일은 사무국회의가 있는 날. 준고속철 ITX를 타고 남춘천역에 도착해서 버스 타고 후평동 1단지 시장에 내려서, 낡은 건물 계단을 올라 민우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요. 30년도 더 된 오래된 건물이지만, 요 몇 년 동안 바닥도 새로 깔고 벽을 회원들이 손수 칠하고 여성문화제를 장식했던 목공예작품도 예쁘게 걸어두었어요.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지만 많은 이들의 고심 끝에(돈 말고 환경문제 땜에^^) 냉온풍기를 들여놓아서 이것도 흠이 되지는 않아요.
혼자서 대표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해서, 없는 와중에도 3명이 함께 대표를 맡고 있어요. 초반엔 완존 빈틈없는 ‘칼있으마’를 과시하지만 2시간이면 방전되는 남궁 샘, 30대의 참신함으로 ‘대표들=그때 그사람들’이라는 오해를 깨주는(이건 순전히 내 입장에서 한 소개!) 의욕충만 호연 씨, 민우회에 상근활동가로 들어온 지는 6개월 남짓이지만 이미 많이 익은 ‘열매’, 조용하지만 꾸준히 활동하는 달팽이 정미 샘, ‘긍정’의 아이콘 민 샘까지 모여 매주 지지고 볶는 회의를 해요.
무슨 사업이든 목표와 프로그램을 꼼꼼히 더듬어가면서 논의를 하는데, 가장 공을 들이는 건 먹을거리를 정하고 누구에게 부탁할까 고민하는 일이에요. 회원만남의 날, 송년회, 총회 같은 큼직한 프로그램에서 우리의 이런 방법은 빛을 발해요. 한 가지씩 들고 온 먹을거리로 마음 따뜻해지고 행복해지는 경험, 다들 있을 거예요. 힘든 일 있을 때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경험. 처음엔 이런 논의에 적응이 되질 않았어요. 폼 나는 일을 하는데 웬 밥 이야기? 그런데 이게 중요하더라구요. 조금씩 마음을 모아서 행복을 만들어내는 거, 이거.
낡은 건물을 살려주는 멋진 현판도 이렇게 만들어서 걸었어요. 인기작가 하 샘이 글씨 써주고, 체육선생님이지만 재야의 고수 권 샘이 서각해주고, 이웃이자 회원인 후평꽃집 사장님이 달아주고, 누구는 콩 가져오고, 누구는 콩물 만들고, 누구는 국수 삶고, 누구는 막걸리, 누구는 떡, 누구는 수박... 일을 벌이니 일사천리로 잔치까지 흥겹게 치렀어요. 그냥 서로 ‘나두, 나두’ 하다 보니 이렇게 되네요.
달팽이지역아동센터 이사도 너끈히 해냈어요. 전셋집은 비워줘야 하고 돈에 맞춰 가려니 마땅치 않고 시간은 없고. 아~이런 스토리~토리...이렇다보니, 평소 ‘없이 살기’를 안팎으로 실천하는 춘천민우회지만 과감하게 집을 장만했어요. 이때 추진력이란, 어우, 지금 생각해도 멋져요. 50일 만에 부족한 돈을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 이사를 했어요. 공모사업에 지원해서 목욕탕과 싱크대도 깔끔하게 수리해서 남부럽지 않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비록 민우회 사무실은 헐벗어도 달팽이 아이들만은 아늑한 곳에서 따숩게 지냈으면 하는 갸륵한 마음들이 모여서 ‘러브하우스’를 만들었어요.
이러고 보니 춘천민우회가 대단하게 느껴져요. 네? 이런 건 친목단체가 하는 거랑 별반 다르지 않다구요? 그럼, 이런 건 어때요? 식당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차림사’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는 캠페인을 7차례 했고, 일일이 식당에 찾아가 설문조사를 100부 넘게 받았어요. 아마도 춘천에서 좋은 여성일자리를 만드는 일에 홀씨 하나는 뿌렸을 거예요. 그리고 면생리대, 팥주머니, 생리주기 팔찌도 부지런히 만들어 춘천과 홍천에 사는 학생들을 많이 만났어요. 학교 보건선생님들이 관심을 보여주어서 기뻤구요, 파릇한 친구들에게 일상에서 만나는 여성주의를 알릴 수 있어서 흐뭇했어요. 사무실에 오는 분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생리대를 만들었고, 황 샘, 김 샘, 정 샘은 유능한 강사가 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어요.
하여튼 이렇게 달리고 달릴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회원님들 덕분이에요. 우리 춘천 식구들은 개인기는 솔직히 없는 거 같아요. 학교 다닐 때 보면 눈에 띄지 않지만 심지 굳은 학생들 있잖아요. 우리 회원들이 그래요. 춘천민우회가 ‘힘들다, 사람이 없다’하면서도 조용히 많은 일들을 해내는 걸 보면요.
점점 살기 팍팍한데, 함께 행복해지는 이 길을 민우회원들과 갈 수 있어서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에요. 올해에는 더 많은 분들을, 더 자주 만나려고 해요. 민우회가 내 인간관계의 ‘블랙홀’ 이 되더라도...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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