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여름 [민우ing] 재판동행 지원단 : 우리가 배후 세력이다
재판동행 지원단 : 우리가 배후 세력이다
지은정(모후아) 여는 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가 증언을 위해 법정에 출석하거나 재판진행과정을 지켜보기 위해 법정에 갈 때 동행한다. 동행의 첫 번째 목적은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다. 법원이 낯선 공간이라 긴장되고, 위축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신뢰관계가 있는 사람이 동석해 안정적인 상태에서 진술하고 재판과정을 지켜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둘째 목적은 성폭력사건 담당법관들의 왜곡된 성의식과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들이 고스란히 피해자에게 전해져 2차 피해로 연결될 수 있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피해자와 함께 법정에 동행하다 보면 방청석에 가해자의 지인 여러 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를 목격하게 된다. 반면에 피해자들은 지인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알렸더라도 지인들이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듣게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혼자 법정에 가게 된다. 피해 사실을 여러 사람들, 심지어 가해자와 그 지인들까지 있는 불편한 공간에서 진술하는 상황은 불안감과 부담감을 증폭시키고, 공격적인 질문을 받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 증언을 하는 것은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진술하고 피해 상황을 알릴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법관에게 서류로 사건을 전달하는 것 보다 피해자가 직접 얼굴 표정, 목소리를 통해 사건을 말할 때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더 잘 전달할 수 있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진술을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동행하는 활동을 상담소에서 꾸준히 해왔다.
용기 있는 발걸음에 동행 : 재판동행 지원단
동행의 다른 말은 ‘피해자를 지지하고 조력하는 활동’이다. 그래서 상담소 활동가 1명이 아니라 10명의 지지자들이 함께 하면 어떨까 구상하게 되었다. 이름하여 「2013년 막무가내로 달려가는 성폭력피해자 재판동행 지원단」(이하 지원단). 지원단은 피해자에게 든든한 배후세력이 생기는 일이기도 하고 수사․재판 관계자와 가해자에게 피해자 혼자가 아니라 조력자가 있음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지난 4월 중순 지원단 홍보 포스터가 배포되자마자 신청관련 문의전화, 신청 이메일이 하루에 서너 통씩 왔고 현재 50여명의 지원단이 모집되었다. 6월부터 10월까지 성폭력피해자의 요청에 따라 10명 내외의 지원단이 서울 소재 법원의 재판에 동행할 예정이고 6월에 벌써 2건의 재판동행이 계획되어 있다.
지원단은 재판방청을 하면서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에 근거하여 부적절한 질문을 하는지’, ‘재판장 등 재판관계자가 피해자에게 위협적이지 않았는지’, ‘피해자의 권리를 위해 마련된 제도들이 실제 잘 운영되고 있는지’등의 내용을 담은 <성폭력 재판 과정에서의 피해자권리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모니터링 할 예정이다.
형사소송 절차에서의 치유와 회복의 경험
상담소에서 지속상담을 하고 있는 내담자 중 형사소송절차를 밟고 있는 A씨가 있다. A씨는 검사로부터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피해사실에 대해 증언 하는 것이 재판과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고소장을 작성하고 수사과정에서 몇 번의 피해 진술을 하는 과정을 거치며 많이 지친 A씨는 증인소환장을 받고 상담소에 찾아오셨다. 법정에 나가 증언을 하는 것이 가해자를 처벌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인지, 여러 번 진술하였는데 했던 말을 다시 또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여 찾아온 것이다.
A씨를 만나 재판진행 분위기와 법정 구조, 증인이 앉게 될 자리위치, 증언내용에 따른 예상 질문에 대해서 안내했다. 검사와 판사가 반복적인 질문을 하는 이유는 추궁하기 위해서가 아닌 진술 내용의 신빙성을 확인하여 피해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며칠 뒤, 재판에서 증언을 마친 A씨를 다시 만났다.
“증언을 하러 가기 전에 상담을 해서 많은 부분 도움이 되었어요. 미리 들어서 예상은 하였지만 법정 공기, 분위기가 처음이라 차갑고, 무겁게 느껴졌어요. 살아오면서 처음 느끼는 공기의 무게였어요. 검사가 가해자를 신문할 때에는 몰아세우듯이 하여 무섭기도 하고 낯설었지만 저에게 질문 할 때에는 눈을 맞추고 천천히 질문해서 안정적으로 진술 할 수 있었어요. 법정이 차갑고 경직되어 있는 공간이라 많이 긴장되었지만 제가 잘 해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라고 법정 증언의 경험을 담담히 전해주셨다.
수사․재판 과정에서 잘못된 통념에 근거한 부적절한 질문들로 인해 자책하게 되거나 반복해서 피해상황을 떠올리며 진술해야 하는 과정들은 심리적으로 많이 지치게 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가해자와 그 지인들을 대면하는 재판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재판에 나와 자신의 피해사실에 대해 증언하는 과정은 피해사건으로부터 회복, 치유되는 과정으로써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제도적 보완 넘어 재판 관계자들의 의식 변화 필요해
성폭력 피해자가 법정증인으로 출석하게 되었을 때 가해자 및 그 지인을 대면하게 될 경우 심리적 불안, 두려움, 스트레스 가중으로 인해 진술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러한 부분을 고려하여 차폐시설을 이용하거나 중계 장치를 이용하여 증언할 수 있게 되었다. 2012년 11월 대거 개정된 성폭력특례법 내용 중 제32조 ‘증인지원시설의 설치․운영’은 피해자가 차폐시설, 중계 장치를 이용하여 증언을 하게 될 경우 별도의 통로를 이용하여 입․퇴정 할 수 있도록 지원해 가해자 및 그 지인을 마주하지 않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진술 할 수 있도록 마련된 근거 법안이다.
법 규정 및 제도들이 개정․신설되면서 성폭력피해자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재판관계자의 마인드에 따라서 지원을 받는 내용과 태도가 다른 것을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성폭력피해자 권리를 위해 개정․신설된 제도들과 함께 재판관계자 인식․태도의 변화속도가 맞춰져야 할 때이다.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을 지지하기
성폭력피해자를 지지하는 것은 특별한 지식과 교육을 거쳐야 할 수 있는 특별한 활동이 아니다. 피해자 중심에서 사건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성폭력피해자의 조력자, 지지자가 될 수 있음을, 나의 주변에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님을 확인하게 되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폭력피해자를 지지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성폭력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주변에 알렸을 때에 자신을 지지해주는 존재가 있음을 확인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으로서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움직임들이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달라지게 하고, 끊임없이 작동하는 잘못된 통념에 균열을 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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