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여름 [기획] 함께 살기 15년 기념, 그야말로, 공생의 조건
함께 살기 15년 기념. 그야말로, 공생의 조건
오이 여는 민우회 회원
누군가의 외로움에 대한 질문에 난 매번 외롭지 않다는 대답을 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외로움’을 잠깐 느낄 수는 있으나 길게 나를 누르는 주제는 아니다. 같이 살고 있는 박뽕은 이렇게 말하겠지. “다 내가 있어서 그래.” 그렇다. 내가 외롭지 않은 이유의 큰 부분은 내 삶에 박뽕 이라는 친구가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친구인 동시에 15년을 함께 살고 있는 박뽕은 나에게 어떤 존재감을 갖고 있나. 항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자주 내 편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 내가 이성을 잃고 흥분을 할 때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얘기를 해 줄 거라는 기대, 꼬리를 무는 복잡한 생각과 극도의 심한 걱정에 대한 단순한 해결 제시 등 나의 심오하고 꼬인 성격을 대적할 태도와 인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데... 쓰다 보니 본래 그런 인물이라 같이 살게 되었는지, 같이 살다 보니 이런 존재감을 느끼게 되었는지는 아리송하다. 15년은 너무 긴 세월인 게 분명하다. 여튼, 우리는 도대체 왜, 어떤 마음으로 15년 넘게 함께 살며, 서로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가. 15년동안 (그 어렵다는) 함께 살기를 하며 베프를 유지하고 있는 내공과 노하우가 무엇인가.
일단 우리가 어떻게 같이 살게 되었는지 박뽕에게 물었다. “언제적 얘긴데 그런 걸 기억해.” 박뽕의 일축. 그런 거 물을 때는 지났단다. 그런가? 함께 살면서 깨닫게 된 것, 얻은 것들을 생각해보는 것도 좀 거시기 하다. 너무 추상적인 얘기이기도 하고 15년 동안 함께 살면서 깨닫게 된 것인지 본래 갖고 있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함께 잘 살기 위한 핵심 포인트 정도는 있다. 뽑아볼까?
참을 수 있는가?
1. 누군가 함께 살기 전, 상대방과 나의 다른 점이 서로 참을 수 있을만한 정도인지는 파악하고 있는 것! 즉, 내가 참을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참을 수 없는 부분이 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나와 박뽕은 진짜 게으르고 지저분한 사람과는 못 산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나와 박뽕은 안 게으르고 안 지저분하다.^^) 만약 공통점이 아니었다면 누군가 맞춰주든지 흔쾌히 참아주든지 둘 중의 하나는 해야 같이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나처럼 친구 동거가 아니라 연인사이라면 참기도 하고, 애정으로 극복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혹시나 있다면... 사랑 이딴 것들로 극복이 안 되는 ‘생활의 발견’을 강조하고 싶다. 그래서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함께 살기 또는 결혼을 고려하는 커플에게 난 넌지시 얘기하곤 한다. 빨리 헤어지고 싶으면 같이 살라고.
집안일은 기본
2. 흔한 주제이기는 하지만 ‘가사노동의 분배’는 함께 살기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자 민감한 덩어리. 날이 갈수록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스트레스를 받고 갈등의 주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둘이 살면 둘이 책임진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처리하고 신경 써야 할 온갖 일들 - 물 새는 것부터 마늘 떨어진 것까지 - 이 있는데 무신경, 무관심하면 완전 열받음이다.
넉넉해져라
3. 상대방의 입에 들어가는 것(음식, 간식 등)을 아까워하지 않는 마음. 즉, 경제의 문제다. 처음에는 식생활비와 공과금을 어떻게 할 것인지 합리적 배분을 한다. 하지만 생활이라는 것이 그렇다. 먹고 싶은 것이 다르고 갑자기 사야하는 것도 생긴다. 따지기 시작하면 못 산다. 누가 더 먹는 것도 같고, 내가 더 많이 낸 것도 같고, 본가에서 조달되는 음식과 물품에 대한 기여분도 인정받고 싶고...때문에 ‘정확히’ 나눈다는 의미가 퇴색되는 관계가 되어야, ‘정확히’ 나눌 마음이 없어야 오래 같이 잘 사는 것 같다. 박뽕과 나의 15년 노하우의 가장 큰 것이기도 하다. 내 카드로 긁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것 말이다. 언젠가 상대방도 긁게 되어 있다. 절약정신이 깔려있지만 쓸 때 쓸 줄 아는 경제 센스, 돈에 대한 ‘경우’가 있는 사람 되기는 함께 살기의 기본!
4. 공통의 관심 주제와 무엇을 보고 반응하고 판단하는 방식이 비슷하면 대화도 통하거니와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는 시너지 효과로 작동한다.
15년간 함께 했던 시간을 염두에 두고 뽑았지만 또 다른 사람하고 살아보면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너무 오래 같이 살아서 서로가 기준이 되어 버린 관계라 이거 원... 할 수 없다. 15주년 기념 ‘그야말로, 공생의 조건’은 일단 급마무리 해 버릴테다.
오이 : 박뽕아. 마지막으로, 우리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잘 미화시켜서 얘기해봐라.
박뽕 : 왜? 누가 내 미래를 궁금해 해?
오이 : 그래도 해. 어떤 미래를 꿈꿔?
박뽕 : 난 미래에 대해 별로 생각 안 해.
하지만 친구이자 가족인 박뽕과 나는 (복지국가가 되기 전까지는) 서로가 서로의 노후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서로의 건강도 챙기게 된다. 왜냐? 아프면 간호해야 하니까. 오래 살다보니 미래를 같이 구상하는 관계는 당연하고 서로가 서로의 운명공동체이라는 사실 역시도 의심하지 않으며, 이것이야말로 공생의 조건이 되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