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여름 [기획] 이웃이 생긴다는 것, 이웃을 만든다는 것
이웃이 생긴다는 것, 이웃을 만든다는 것
김희영(꼬깜) 여는 민우회 회원
이사를 앞두고 불안해졌다. 동생과 엄마가 급하게 찾은 집이라 가보지 못한 이유도 있겠지만 가리봉동 근방이라는 소식이 내 안의 편견을 깨웠다. 가리봉동이라면 서울시내 범죄율 1위라는 곳? 중국인들의 메카, 한국의 1970년대의 모습이 재현된다는 그 곳? 밤과 낮이 급격히 달라 여자가 살기는 다소 위험하다는 그 곳? 등등 주변에서 들은 말들이 떠올랐다.
나, 괜찮을까...?
스스로, 함께 사는 연습
서울 살이, 7년을 넘게 하면서도 사무실 사람들이 근방에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동네 이웃이 있어본 적이 없다. 사실 필요를 느낀 적도 별로 없다. 워낙 경계심이 많은 성격도 있겠고, 혼자 살다 보니 동네 슈퍼에서 아저씨가 아는 체를 해도 ‘내 얼굴 어떻게 기억하지?’ 싶고 찝찝하다. 특히 성폭력, 여성 살해 기사가 신문을 도배하는 시기에는 더 강화되는데 취기가 없이 늦게 집에 갈 때나 윗집에서 쿵쿵 들리는 소리도 모두 ‘낯설게’ 들리곤 한다. 더 외롭고 두려움도 커지곤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웃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기도 한 시간이었다.
매일 얼굴을 보고 옆집 통화소리까지 들릴 만큼 아주 코앞에 살면서도 인사 한 마디 건네 본적이 없었다. 경계심은 성향 탓이기도 하겠지만 세상이 그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자취 생활이 길어질수록 주인아저씨 뒷담화랄지, 날씨는 어떻다는 둥의 이야기가, ‘아는 사람’ 있다는 그 살가움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커피 한잔 하며 일요일 저녁의 스산함을 함께 마주할 이웃이 있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것이다. 카레를 한 솥 가득 끓일 때면 “맛 좀 볼래요?”라거나 “이번 카레에는 토마토를 넣어 봤는데 어때? 망한 것 같니?”라며 나눠줄 수 있는 그런 밤의 시간을 갖고 싶어졌다. (사실 누군가 줬으면 싶었을 때가 더 많지만.) 어디든 혼자 아무런 간섭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절박한 때가 있었다. 아무도 나를 건들지 않는 그 안전한 공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겪으니 <혼자> 넘어 <함께> 라는 주제를 아주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되었다. 여성으로 사는 것은 언제나 ‘혼자도 살 수 있다’와 ‘함께 살고 싶다’라는 두 개의 마음이 충돌하면서도 공존의 필요를 깨닫는 과정이었다.
회원 중에 구로동 사는 사람~
동네 걱정이 한참인 때 누군가 “회원인 달리도 그 동네 살지 않아?”한다. ‘아, 맞아! 달리가 있었지.’ 싶어 달리에게 이사 소식을 전했더니, “너 혹시 00아파트야?” “응, 그 아파트 000동인데.”
“얘야 나 그 옆 동이구나.” 오마이갓! 정말이야? 급박하게 ‘가리봉동 포비아’를 얘기했더니 “그거 다 편견이야.”로 한 큐에 정리해주는 달리 언니의 쌈박함과 가까운 이웃이 생겼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달리의 소개로 또세, 엄산 등 다른 회원들도 근방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른 회원들과도 함께 만나자며 집 앞 까페 담소를 추진 중이다. 동네 도서관 투어도 예정되어 있다. 이웃이 생긴다는 것은 큰 심리적 위안처를 얻는 것이기도 했다. 함께 잘 살기를 탐구해볼 수 있는, 일상과 삶이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
저기요… 옆집으로 이사 왔어요
경계하는 마음은 서로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특히 여성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두려움을 요구받고 심지어 숨어 지내야 한다는 희한한 통념은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 숨지 못할 팔자라면, 먼저 인사를 해버리고 나 여기 있다고 외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이사를 하고 며칠 뒤, 처음 만난 옆집 여자 분과 출근 시간이 같아 몇 초 주저하다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 옆집으로 이사 왔어요.” 그 분도 처음엔 무서운 표정이었는데 인사하자마자 활짝 웃으며 자기도 자매랑 산다며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게 됐다. 그 다음부터도 만날 때 이 몹쓸 낯가림 때문에 만날 때 여전히 어색해 죽겠지만 그래도 정말 마음이 달라졌다.
주말아침에 옆집이 현관문을 활짝 열어 놨다. 고소한 찌개 냄새가 확 풍긴다. 나와 동생도 환기한다며 문을 활짝 열어 놨다. 공존은 어떤 저항보다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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