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보고서] 가족의 화해를 표방했지만 갈등만을 부각시킨 종편의 가족 관련 프로그램
■ 갈등과 차별을 오락화 하는 종편채널 모니터링-2
가족의 화해를 표방했지만 갈등만을 부각시킨 종편의 가족 관련 프로그램
종편이 출범한 이후에는 드라마가 아니라 ‘리얼’한 가족의 생활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거나 ‘리얼’한 고부간의 토론을 설정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대거 등장하였음. 스타 출연자와 그들의 가족을 섭외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이들 프로그램은 시사 프로그램 외에 다른 장르의 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종편채널에 필수 불가결한 존재로 자리 잡았음. 또한 지상파 프로그램에서의 방송심의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이들 프로그램은 더욱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음.
이에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어운동본부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 간의 갈등을 직접 조명하고 공감을 통해 화해와 소통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제작되었다는 JTBC의 <고부 스캔들>, <화끈한 가족>, 채널A의 <웰컴투시월드>, <집나간 가족> 등 4개의 프로그램을 4월 28일부터 5월 18일까지 3주간 모니터 하였음. 이들 프로그램이 기획의도에 충실하게 제작되고 있는지 살펴보았고, 결과는 다음과 같음.
-가족 안에서의 역할만 부각되는 여성출연자
이들 프로그램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가사와 육아, 내조를 여성의 역할로 한정하고 있음. 등장인물들은 기획의도에서도 드러내고 있듯 ‘스타’며느리거나 ‘스타’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명실상부한 ‘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나 전문인으로써 연예인의 직업적인 모습은 모두 등한시한 채, 전근대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에 천착하며 ‘엄마’와 ‘아내’, ‘며느리’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지를 따지고 며느리의 직업은 가정에 충실해야하는 본분을 망각하게 하는 좋은 구실이거나 당신들의 아들을 기죽이는 ‘부업’정도로 다룰 뿐임.
한편 <웰컴투 시월드>를 제외한 3개 프로그램에서 며느리는 대부분 남편을 포함한 ‘시댁’식구들 속에서 홀로 떨어져 밥을 짓거나 설거지를 하고, 거실에 한데 모여 있을 때에도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남편의 가족과 달리 혼자 바닥에 앉아 과일을 깎는 모습이 당연하게 나옴. 그리고 ‘여자가 어디를 가면 남편이 먹을 수 있게 밥을 해놓고 가야지’, ‘우리 때는 밖에서 일했어도 애들 돌잔치 음식을 집에서 손수 다 했어’, ‘빨래를 왜 남자보고 하라고 해’라는 등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직접 꾸지람하는 모습과 함께 괴기스러운 글씨체로 자막 처리하여 나타나고 있음. 또한 시어머니의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주로 보여주고 있으며,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항변하는 경우, 번개, 구름 등의 CG와 음향 효과로 그 과정이 갈등임을 극적으로 연출할 뿐임.
-여성의 사회진출과 엄마의 가치 재생산
이들 프로그램에서 다루고 있는 가족의 갈등은 주로 여성의 사회진출과 더불어 달라진 역할과 그에 따라 재편성되는 역학관계에서 기인함. 시어머니는 이전과 달리 며느리에게 물려줄 ‘곳간 열쇠’가 없으니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다고 느끼고 있음. 이들의 박탈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보니 전원주와 같은 대표 시어머니를 통해서 옛 정취와 효의 미덕을 강조하며 신세대 며느리의 직무유기를 규탄함. 이러한 모습은 ‘엄마’의 가치를 재생산 하는 형식을 주로 갖추고 있는데 <웰컴투 시월드>의 5월 1일, 8일, 15일의 방송에서 이와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음.
<웰컴투 시월드>의 3주간 방송 내용을 보면 ‘일회용품과 시판 음식을 이용하는 며느리’(5월 1일), ‘손주 돌잔치는 호텔에서 하면서 시어머니 생일잔치는 냉면집에서 하자는 며느리’(5월 8일), ‘가방끈이 길어 시어머니를 가르치려드는 며느리’(5월 15일)들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고부간의 토론을 이끌었음. 그러나 각각 다른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 측에서는 엄마/며느리/아내로써 가족을 위해 손수 음식을 하고 매번 걸레와 기저귀를 삶는 ‘정성’의 가치를 강조하고, 일하는 며느리들이 가정에 투자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시어머니를 포함한 남편의 가족들이 겪는 정서적인 박탈감의 위험성을 피력함.
이는 앞서 언급한 여성의 성역할 고정관념에 근거한 가치들로써 시대 흐름과 구조적인 변화가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은 등한시하고 모든 가정의 문제를 며느리에게 떠넘기려는 것으로 보임. 시어머니 세대는 며느리 세대와 동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들의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음. 그렇기 때문에 전근대에 머무르고 있는 듯한 시어머니 세대가 여성의 미덕을 강조하며 며느리 세대를 탓하는 모습만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가족의 문제, 나아가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음.
-여성 간, 세대 간의 갈등을 조장 : 웰컴투 시월드, 고부스캔들, 화끈한 가족
‘김치녀’, ‘된장녀’ 논쟁을 비롯하여 이제는 높아지는 이혼율과 가족 해체, 부모 부양 문제와 경제적인 문제 까지 여성에게 귀인하고 있으며, 특히 가족 해체의 문제에 있어서 지상파의 ‘사랑과 전쟁’을 비롯한 매스컴의 왜곡된 원인 조명으로 ‘고부갈등’을 중심으로 한 여자들이 트러블메이커가 되버렸음. 이런 흐름에서 아예 가족 화합 유도라는 미명아래 ‘고부갈등’, ‘가족 갈등’을 대놓고 내세워 기획한 프로그램들이 애초의 그들의 기획의도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이런 사회문제들을 여성들 간의 문제로 재구성하고 있음. 이들 프로그램의 제작진은 가족의 문제, 여성의 문제를 이러한 방식으로 오락의 소재로 쓸 뿐이지,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 본적이 없는 것처럼 보임.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에 함께 등장하는 시어머니들의 아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고부갈등에 무관심하거나, 무관심한 척 해야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고부갈등에서 남성 요인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음. 이렇게 ‘남성’은 외면한 채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대명제 아래에, 무엇보다 당신들이 며느리 시절에 매운 시집살이로 어려운 시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했으니 너도 해라’는 요구를 지금의 며느리에게 하는 것임.
최근의 여성의 지위 변화를 두고 벌어지는 성대결, 고부갈등을 이용하여 시청자를 현혹하고 있는 만큼 원래의 기획 취지로 돌아가 각 프로그램이 이 사회, 특히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방송사와 제작진의 절실한 각성이 필요함.
■ 자세한 내용은 모니터 보고서(첨부파일)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