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머프의 영화관] 페미니스트의 삶은 흐른다 : 《그랜마》
얼마전 사람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일상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이야기.
누군가가 나를 페미니스트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행동 하나하나를 주의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나 상대방이 인생에 본
첫 페미니스트가 나라면, ‘나 때문에 페미니스트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지면 어쩌지?’라는 고민이 겹친다. 페미니스트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문제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도 문제다. ‘페미니스트라니 대단
하다’라는 반응 이면에는, ‘페미니스트이니 무언가 달라도 다를 것이다’라는 묘한 기대가 섞여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누군가가 페미니스트라는 것이 그 사람이 완벽함을 의미하진 않는다. 나 역시도 페미니스트이지만
욱하면 욕도하고, 엉뚱한 일에 분노를 터트리거나, 사고(?)도 친다. 페미니즘에서 중요한 것은 지식 보다도 일상적인 실
천인데, 항상 여성주의적 실천을 하는 것도 아니다.(논쟁이 피로해서 누군가 불평등하거나 차별적인 발언을 던져도 어
물쩡 넘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페미니스트임을 아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이런 상황은 두 배로 힘들어진다. 상
대방이 ‘쟤는 페미니스트라는 애가’, 혹은 ‘쟤는 페미니스트라서 저러나?’라고 생각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물론 적어도 어떤 ‘주의자’라면, 나는 스스로에 대한 약간의 긴장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기성 사회를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는 인식론이다. 때문에 페미니즘이 제시하는 실천도 기성의 것과 다를
수 밖에 없다. 일상적인 자기 점검은 그래서 필요하다. 의식하지 않으면 그냥 살던대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 같
은 ‘자기점검’이 ‘자기 검열’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문제다. 페미니스트로서 ‘완벽한 나’를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치거나 혹은 흠결을 보일까 두려워 24시간을 긴장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혹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페미니
스트로서의 패배’가 아님에도(오히려 잘못은 제대로 인정하는 것이 여성주의적이다.) 독선적으로 굴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얼마전 민우회에서 연 ‘여성주의 입문강좌: 다시 만난 세계’에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강사
인 김홍미리 선생님은 ‘페미니즘은 빈틈이 많은 사상이다. 페미니즘이 ‘나 항상 옳아’라고 하는 것 같지만, 여백이 없으면
고착화 된다. 빈틈이 있어야 살아진다’라는 언급을 했다. 물론 내가 겪는 문제와는 조금 다른 주제에 대한 언급이었지만,
이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통찰을 주었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완벽하고자 했고 ‘빈틈’이 없이 살고자 했다. 하지만 아무것
도 성찰하고 변화할 여지가 없다면, 삶이 고착화 된다면 그런 삶에 페미니즘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페미니즘이 그런 것
처럼, 나 역시도 내 빈틈을 직시하고 성찰하고 변화하는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영화 <그랜마>의 주인공 엘은 내게 무척이나 반가운 캐릭터였다. 그녀는 영화에서 보기드문 페미니스트
캐릭터에 거기다 주인공이며 문제(?)가 많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이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인간은 아니다. 그녀는 보통이 아닌 성질을 가지고 있고 말이 거칠며 사람들에게 자주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런 사람이 내 편이라면 좋을 것 같지만, 그녀의 공격성은 종종 가까운 사람에게도 향하고 심지어 자기 연인에게도 향
한다. 거기에 그녀는 때로 가족이나 연인에게 솔직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마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엘
의 좌충우돌을 관람하다 보면, 그 속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하지만 주인공 엘의 진정한 덕목은 그 빈틈을 인지하고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면에 있다. 그녀는 자신의 연인에게 돌아
가 마음을 열고 솔직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다. 또한 그녀는 과거 그녀의 결정으로 상처받은 옛 연인에게 사과의 말을
전한다. (물론 그것이 진정 잘못이었는가는 이야기해 볼 여지가 있다.) 그렇다고 허투루 미안하다는 말만 전하는게 아니
라, 어디까지가 자신의 실수였고 어느 부분까지 미안한지 정확하게 짚는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녀의 딸이 엘에게
‘최악의 엄마’라고 이야기하는 부분. 그녀는 엄마로써 자신이 완벽하지 않았음을 구태여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답함으로서 변화해 나가겠다는 의사를 전한다. ‘어쨌든 할머니로서는 더 낫도록 노력하마’
누군가가 나에게 ‘페미니즘이 무엇인가’를 물으면 짧은 식견으로나마 이렇게 답하곤 한다. 그건 마치 흐르는 강 앞에서
‘지금 저 물은 이 강의 물이 맞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페미니즘은 흐르는 강과 같아서 계속해서 흘러가며, 때로는 물이
얼기도, 때로는 흘러간 물이 역류해서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고. 강물이 아닌 강 자체, 그 끊임없는 흐름과 유동성이 페미
니즘이라고. 그리고 페미니즘이 그러하다면 나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삶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삶에 둑을 쌓거나
빈틈을 회피하며 정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빈틈을 직시하고 끊임없이 성찰하고 변화하는 삶. 영화의 시작에 등장한 아
일린 마일스의 말(‘시간은 흐른다, 그것만은 확실하다’)을 변주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페미니스트의 삶은 흐른다, 그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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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스머프
민우회 회원. 안 그런척 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새침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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