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바톤터치] 퓨리의 '페미니스트여서 행복해요'
- 퓨리 -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2년차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갖게 된 퓨리라고 합니다. 조금씩
용기를 낸 뒤로부터 저는 소소한 행복과 자유를 즐기고 있답니다. 저의 어떠한 결함도
저의 페미니스트 정체성과 페미니즘을 향한 저의 사랑을 손상시킬 수 없어요!
그 실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참담한 에피소드는 끝이 없답니다.
사실 제가 분명한 페미니스트가 된 것은 남초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입니다.
입사 첫날부터 언어적 성희롱과 성차별적 멘트를 들었어요.
‘우리 회사에는 여자에게 불이익이 있어. 알고 시작해. 모르는 것보단 낫잖아?’ 부터 시작해서,
‘넌 결혼해도 다닐거니? 왜? 놀면 좋잖아’, ‘요즘 남자애들이 얼마나 공부를 못하면 여자애를 뽑아?’
‘우리 회사 다닐 거면 넌 남자가 되어야 해!’ ‘난 여자들이 우리 회사에 왜 입사하는지 모르겠어.’
‘여자는 출장 안 데려갈거야.’‘김마담 불러줘~’ ‘지난번 휴가 때 수영복 입은 아가씨들 보려고
워터파크 갔지.’ 등등, 참담한 에피소드는 끝이 없답니다.
이런 곳에서 제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니 자연스레 마음과 몸이 모두 피폐해졌어요.
이런 것들을 인사팀에 고발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패배의식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사회의 눈치를 보는 대기업이니 신체적 성희롱이라면 강력하게 대응하리라는 기대가 있었지요.
내가 나를 지킨 자부심이란.
술만 마시면 손버릇이 나빠지는 어느 대리가 있었어요. 저는 세 번 이상 저의 신체를
불쾌하게 만진 그 대리에 대한 제 느낌과 당시 정황들을 기록하여 인사팀에 제출했어요.
4개월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에는 부회장에게까지 보고가 되어
당시 회사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에구 고소해라)!
성희롱 가해자인 그 대리는 감봉을 받고 지방사업장으로 전환배치가 되었어요.
신고 이후 저를 비난하고 의심하는 눈초리와 말들, 그리고 교묘하게 왕따시키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나아져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답니다.
무엇보다 제게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제 자존심을 제가 지켰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절대 후회하지 않은 선택이에요. 생각보다 큰 일 나지 않습니다.
혼자 끙끙대고 힘들어하는 것보다는 백배 나아요! 그러니까 지르세요!
생존의 수단, 여성주의
위와 같이 여자 직원들을 멸시하는 곳에서 일하다 보니, 제게 여성주의 공부란
생존의 수단에 가까웠어요. 제가 존중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책을 통해서라도
스스로 확인시켜주지 않으면, 정말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제가 하찮은 존재가 될 것만 같아
필사적으로 책을 찾아 읽었어요. 특히 현경의 ‘여신 3부작’은 따뜻한 전복죽을 먹는 것
같아 아플 때마다 약 챙겨먹듯 여러 번을 읽었지요.
또 여성학 강의를 듣고, 민우회 독서모임에 가입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책을 읽고 발제하며
궁금증도 해소하고 생각을 나누며 힐링을 하였지요! 지금은 정식으로 민우회 회원이 되어
회원 독서모임도 하고 해보면 기획단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답니다:)
회사에서 소심하게 할 말 하기
페미니즘으로 제 자신을 무장하였지만 아직 많이 용기가 부족한지라, 회사에서 강한 페미니스트
행동을 보여주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나름 힘내서 했다는 게 아래 발언입니다^^;
회식 자리에서 매번 김마담을 찾는 부장에게 “부장님 저도 이제 그만 가겠습니다.
미스터킴 만나러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부장에게 점심 메뉴로 순두부 어떠냐고 하자 “순두부? 그거 여자들이 좋아하는 음식이잖아.”
라며 은근히 여성을 비하하고 나의 심기를 건드릴 때, “순두부 그거 남자들도 좋아하는데요?
그걸로 시켜드릴게요.” 하고 쉬크하게 부장의 의견을 무시하고 순두부를 시켜준다.
어느 대리가 요즘 이상한 남자들이 혼자 사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들 집에 침입해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해서, 나는 ‘진짜 여자들 살기 너무 무서워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대리가 하는 말은 ‘그러니까 너도 빨리 결혼해.’ 였다. 그래서 바로 이렇게 말했다.
‘결혼하면 나아져요? 집에서 맞지.’ (이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본인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걸 내가 알기 때문ㅋ)
해외출장지에서 성 구매를 목격한 나는 다음 출장을 가게 될 때 상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과장님 거기서 성 구매 하면 저 진짜 이번에 깽판 칠거에요.’ (그리고 그는 침묵^^)
유두 처음 보니?
전 정말 브라를 싫어해요. 가슴 밑에 꽉 조이는 느낌도 싫고, 더운 날에 땀 차는 것도 너무 싫어요.
밖에 나갈 때 다시 브라 입어야하는 것도 너무 귀찮고요. 유두가 도드라져 보일까봐 배고픈데도
슈퍼에 못 나가고 집에서 굶은 적도 있어요. 그런데 어느 날은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남자도 유두 있는데 왜 여자만 가려야 되지? 이거 누구 좋으라고 만든 거야? 으악! 그치만
회사에 노브라로 갈 자신은 없어서, 주말 나들이 가거나 친구 만날 때는 자주 노브라로 나갑니다~
누가 쳐다볼까 싶으면 더 당당하게 가슴 쫙 피고 걸어요. 그래 실컷 봐라!!! 유두 처음 보니?
왜 나는 부끄러워야 하는가
섹스를 좋아하는지라 남자친구와 자주 모텔에 갔는데, 저도 모르게 쭈뼛쭈뼛하며 남자친구
뒤에 숨어있는 모습이 한심했어요. 그리고 화가 났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섹스를
하고 싶어서 여기 왔는데 왜 나는 부끄러워해야 하는 거지? 그래서 제가 주도적으로
이 남자를 사랑해주기 위해 여기 데려왔다는 것을 호텔 직원들에게 대놓고 보여주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일부러 얼굴이 나온 사원증으로 계산하고, 큰 소리로 ‘여기 월풀 있어요?’라고 물어보고,
직원들이 들리도록 ‘자기야 여기 오니까 좋지?’라고 물어봤어요.
아니, 별 것도 아닌데 왜 그 동안 죄인처럼 말도 없이 눈길도 피하고 뒤에 숨어있었을까요?
행인 코스프레, 더는 안합니다
생리대를 사러 편의점에 갔는데, 직원이 알아서 검은비닐봉지에 넣어주려고 하더군요.
아니 멀쩡하게 흰색 비닐봉지가 있는데!!!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요. ‘아니 그냥 주세요!’
생리대가 비닐 밖으로 비쳐서 다 보이게끔 넣고 룰루랄라 팔을 휘저으며 걸어갔어요.
또, 제가 페미니즘을 알기 전에는 편의점에서 콘돔을 살 때도 항상 남자친구가
계산하게끔 했었어요. 저는 그런 남자친구를 모르는 척 행인 코스프레를했구요.
그런데 도대체 왜? 그래서 이젠 일부러 제가 콘돔을 계산해요.
저를 보고 다른 여자들이 용기 내고 당당하게 콘돔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갈리아의 딸들>을 보고 충격 받은 애인
아마 오늘 글의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싶은데요. 저는 지난 일 년의 교육 끝에
제 남자친구를 ‘자타공인페미니스트’로 변화시켰답니다. 주의할 것이 있다면,
이것은 모든 남성에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제 남자친구는 타인의 말을 진심으로
귀담아 듣고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었기에 페미니스트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남자친구와의 시간 중 80% 이상을 페미니즘을 주제로 이야기했어요.
제가 회사에서 겪었던 열 뻗치는 이야기를 하면서 시원하게 남자 욕을 하고,
책을 통해 깨달은 통찰을 나누고,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사주고, 숙제를 내주고 잘하면
상을 주고, 일상생활에서 공기처럼 마시고 있는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을 매일같이
이야기했어요. 특히 남자친구는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후로 스스로 페미니즘에 대해 친구들에게 전도하러 다니고, 저보다도 먼저 여성혐오를
찾아 욕한답니다. 사실, 제가 성희롱을 겪고 신고 이후 가장 힘들었을 시기에도
저를 버티게 해 준건 바로 제 애인의 경청과 위로, 그리고 사랑이였어요.
여러분도 여자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금기들을 사소한 것부터 깨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거에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나갑니다, 노브라로! 야식 좀 사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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