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바톤터치] 서왓순의 “냉정한 판단과 빠른 행동의 원동력, 여성주의”
- 서왓순 -
여러분 안녕하세요? 매일 지하철만 타면 욕을 하는 서왓순이라고 합니다. 최근 몇 년간 저에게 일어난
변화와 실천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어릴 적부터 ‘순하다’고 불려 오던 저의 사례를 들어볼게요.
사실 저 ‘순하다’라는 라벨링 또한 ‘여성’에게 주입되는 성격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객관적인 판단 후에 빠르게 행동할 수 있게 귀감이 되어주신 고모
사실 불합리한 것을 보면 잘 참지를 못해서 한번은 싸움이 난 적이 있어요. 2013년 말
서울로 취직을 했을 때 박봉에 모아 놓은 돈은 없는 관계로 고모 댁에서 살게 됐습니다.
그 6개월을 친척과 산 건데 살림을 좀 덜 해도 된다는 편리함과 남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불편함이 공존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다 2014년 4월 불편함이 터져버리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같이 살고 있던 사촌오빠라는 사람과 사소한 일로 싸움이 났는데, 그 사람은 사소한 일을
사소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저를 때렸고, 목을 조르려고 했거든요. 술에 취해 있었더라도 말이죠.
아마 고모가 그 자리에 없었으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직도 무섭습니다.
저는 당장 집을 나갈 결심을 했고 월급을 받은 후 대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고모가
저에게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했습니다. 저에겐 고모지만 당신의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생의 딸을
때린 것을 본 어머니의 마음은 제가 지금 가늠해 보려고 해도 잘되지 않겠지요. 하지만 고모는 다음날
저더러 “너 나랑 집 보러 가자. 내가 잠 안자고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구가 이사할 만 한 것 같더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친족 간 폭력, 성폭력이 발생 이후 가족과 친족들의 지지가 있을 경우 피해자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힘을 받습니다. 저 또한 가해자와 가장 가까운 가족의 사과와 빠른 격리 조치를 시키려는
모습은 이 후 닥칠 큰 사건에서 저에게 귀감이 됩니다. 사태에서 나를 분리시킨 후 객관적인 판단 후에
빠르게 행동할 수 있는 힘을 알려주신 거죠.
저는 정말 3일만에 이사를 갔고, 그 사촌오빠라는 인간에게 사과는 아직도 받지 못했지만 받아도 별로
연을 이어가고 싶지는 않네요. 가족들도 제 의사를 존중해 주고 있어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순하다’는 건 주입된 거였구나, 내가 여자이기 때문인 걸까 하는 자각이 약간 들었습니다.
술에 취했다 해도 그 누구도 강간하거나 살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사건은 1년이 지난, 지난해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 당시 이직한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고,
일은 힘들지만 오래 있으려고 마음먹었던 곳이었습니다. 팀 회식을 가졌던 그날 저는 만취해서
그대로 잠들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회사선배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법률용어로는 “준강간”이라고 합니다.
별 일 없다는 듯이 옷을 추스르고는 집으로 가면서 눈물은 났지만 나도 취한 상태니 일단 자고 나서
맑은 정신으로 생각하자며 잠부터 잤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눈뜨자마자 제가 향한 곳은
‘해바라기 원스톱 센터’였습니다.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어 회사에는 오늘 나가지 못한다고 말하고
센터에 가서 진술, 증거채취, 치료까지 다 받고 나왔습니다.
이 사태를 알게 된 사장은 오히려 저를 비난했습니다. 가라는 곳은 안 가고 술이나 먹었다는 둥
‘가시나’가 술을 누가 그렇게 마시냐며 전형적인 2차 가해를 하더라고요.
그리고 가해자는 사장에게 거짓말을 했고요. 그냥 만진 것 뿐 이라면서. 저는 증거 채취 다 했고
국과수에 넘길테니 거짓말 할 생각 말라고 했더니 그제야 인정을 하더군요.
그리고 저는 여기서 젠더 감수성이라고는 1도 없는 사장에게 다음날 저와 가해자를 독대하게 하는
2차 피해를 주고는 저더러 “쟤는 내가 월급을 조금밖에 안 줘서 모아둔 돈이 없을 테니 합의금은
‘성의조’로 받아둬라. 소문나면 너도 좋을 것 없다”고 은근히 협박하더라고요.
저는 ‘성의조’로 합의금을 받을 생각이 없으며 사과문을 써오는 것을 보고 피해 받은 만큼 받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써온 사과문은 전형적인 가해자의 변명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의 본질은 평생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과문 대신 어떤 과정을 통해
나를 성폭행했는지 ‘경위서’를 써오라고 했습니다. 사과는 의미가 없고 제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그리고 그가 시인하는 것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에야 통과한
그 경위서는 합의문과 함께 아직 제 서랍 속에 잘 있습니다.
합의문이 있다는 것은 결국 제가 이 일을 형사사건으로 넘기지 않았다는 뜻이겠지요. 저는 이 사건을
빨리 지나가고 싶은 마음에 합의를 하게 됐습니다. 사실 후회도 많이 했지만 저는 그냥 저부터 챙기기로
했습니다. 일조차 하는 것이 힘들었으니까요. 제 합의문인데 너무 남의 일처럼 처리하는 제가 너무
이상했어요. 이때 아픈 마음으로 제 방을 구해주면서도 월세를 깎던 고모가 많이 생각났고요.
결국 저는 제가 만든 합의서에 서명을 하고, 합의금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직장에서 버틸 수 없어
6개월만에 퇴사를 했고 8개월간 백수였지요. 사실 후폭풍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올 초 3개월 간은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누워있기만 했어요. 제 주변 사람이 없었다면 저는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것조차 힘들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지 술에 취해 바닥에 쓰러졌다 할지라도
그 누구도 저를 강간하거나 살해해선 안 된다는 그 생각 하나로 버텨왔던 것 같습니다.
냉철한 판단과 빠른 행동의 원동력은 여성주의
저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 장점 몇 가지를 발견하면서, 그리고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지면서 많이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여성주의를 접하지 않았다면 저는 성폭행을 당하고도
‘내가 술을 많이 먹어서..’라고 혼자 자책하면서 사장이 하라는 대로 다 해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즉 제게 자존감을 되찾아 준 것이 여성주의며, 그로 인해 제가 생활 속에서 여성주의를 실천할 수 있었다
생각합니다. 힘든 일을 겪으면서 제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제가 무슨 일을 겪어도
주변 사람들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존감, 그리고 나는 잘못하지 않았고
정당한 요구를 하는 것이라는 자존감 덕분이었습니다.
맞은 것도 성폭행도 자랑거리라 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이 일들은 창피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고, 내가 빌미를 제공한 것이 아니며 나는 더렵혀진 것이 아니라 그냥 인간성을
짓밟힌 거고 모욕을 당한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 그 생각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원동력을 줬던 것도 여성주의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부당하게 느껴지는 일에 대해 억지로 웃지 않게 됐습니다.
항의를 할 수 있게 됐고요. 상사가 ‘개저씨’스러운 농담 할 때 항의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웃어주지 않는 것부터 실천했습니다. 웃지 않고 정색부터 하는 것이 생활 속 여성주의 실천의 첫 걸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생활 속의 여성주의라고 하면 저는 큰 걸 실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조금 더 당당하게
거리를 걸어 다닐 뿐이에요. 짧은 옷을 입었다고 위아래를 훑는 사람을 보면 시선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뭐 내가 옷 입었는데 뭐?’ 하는 시선으로 빤히 쳐다보기 같은 일이에요. 또는 누가 이유 없이
시비 걸었는데 옆에서 위로한답시고 들은 “네가 예뻐서 그래” 따위의 소리에 당당하게 반박할 수
있게 됐고요. 당당하게 다닐 수 있는 것도 생활 속의 여성주의 실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길 바라고요.
그저 20년쯤 뒤엔 제가 당당하게 다닐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당당하면서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라며, 앞으로도 계속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다닐 거 에요.
나 하나부터 생활 속에서 여성주의를 실천해 가면 언젠가는 나아지는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면서요.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