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머프의 영화관] 가족도, 결국 관계다 : 《레이첼, 결혼하다》
성소수자인 내 친구는, 언젠가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할 것을 고민했다. 만약 그의 가족들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이었
다면 단념했겠지만, 그들은 여기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단지 그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는 삶을 살기를 원했다.
이것이 그를 큰 고민에 빠트렸다. 커밍아웃 이후의 관계를 그는 전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나빠질까? 배척될까? 아니면 무
덤덤하게 지나갈까? 그는 애매하게 열린 가능성과 위험 앞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그가 누군가와 이 고
민을 나눈 이후다. 그의 친구는 그에게 왜 굳이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려고 하냐고 질문했다.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이유
를 물었다. 가족이니까 당연하다는 답을 하려던 친구는 멈칫했다. 정말 그럴까? 과연 당연한걸까?
시대가 흐르고 가족도 변화했다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상적인 가족상은 존재한다. 화합하고 평화로운 가족. 숨김없이 서로
에게 진솔한 가족. 반목과 갈등이 없는 휴식 공간으로서의 가족. 또한 우리는 공동체란 서로 다른 개개인들이 모여 이룬다고
생각하지만, 가족만큼은 이 부분에서 예외를 둔다. 차이와 간극은 은폐되고 동질성은 거의 한 몸처럼 강조된다. 하지만 모든
공동체가 그렇듯 가족 또한 강렬한 드라마의 현장이다. 소속과 떠남이 그나마 가능한 다른 공동체와 달리, 인생 대부분을 붙
어있어야 하는 탓에 더욱 그렇다. 떨어져 살아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관계는 대부분 평생을 간다.
불가피한 갈등을 내재한 상태에서, 이상적인 가족상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첫 번째는 죄책감이다. 다른 관계에서
실수나 상처 주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가족 관계에서는 이러한 실책에 대한 책임이 보다 엄중하게 부여된다. 심지어
불필요한 죄책감도 등장한다. 상대방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음에도 스스로 죄의식을 부여하는 것이다. 가령 내 친구의 부모님
은 그녀가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우지 못한 것에 지금까지도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에 따르면, 그건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던 그녀가 그냥 던져본 말이었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책임은 방향을 돌려 외부로 표출되기도 한다. 그래서 가족 사이에서는, 다른 관계라면 쉽게 용인될 일들에 대해 더욱
가혹하게 구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 개인적인 문제들이 쉽게 관계의 문제로 치환되는 경향도 있다. 대학 입시나 취직, 결혼은
개인적인 성취의 영역이지만, 유독 우리는 이 부분에서의 실패를 ‘불효’나 ‘부모님에게 못할 짓’으로 여긴다. 물론 거꾸로의 상
황도 발생한다. 다른 관계에서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윤리를 손쉽게 져버리고 ‘가족끼리니까 괜찮다’라고 퉁치는 경우들. 우리
는 쉽게 다른 가족의 사적인 비밀을 들여다보곤 하지만, 오히려 화를 내는 상대방에게 ‘가족인데 뭐 어떠냐’고 말하지 않는가.
영화 <레이첼, 결혼하다>는 주인공 킴이 재활원에서 나와 언니인 레이첼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킴은 약물
중독으로 엉망진창의 삶을 살고, 실수로 어린 남동생을 죽게 만든 과거가 있다. 오랜만의 재결합에 결혼식까지 앞두고 있으니,
이들의 재회가 아름답게 흘러갔으면 좋겠지만 상황은 순조롭지 않다. 재회의 시작부터 이들 사이에는 긴장과 배제, 질투와 과
도한 우려의 감정이 오고간다. 거기에 죽은 남동생의 흔적은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해 이들의 평온을 깨곤 한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들의 이 같은 행위가 서로를 미워하는 감정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가족으로서
애정을 가지고 서로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차이와 각자가 서로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 때문에 갈등과 상처가 발생한다. 가령
레이첼은 결혼식이 망쳐지는 것이 두려워 킴과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킴은 그런 행동 탓에 이미 소외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자신이 더욱 배제되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되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고 이는 레이첼에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또한 폴은 킴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에 항상 그녀를 찾지만, 킴에게는 이러한 행동이 부담으로 다가오고 레이첼은 과보호
탓에 킴이 더욱 망가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킴은 죽은 동생에 대한 죄책감에 짓눌려 제대로 일상을 살아가지 못하
지만, 레이첼은 이것이 킴이 여전히 무책임하며 방종된 삶을 사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갈등이 폭발하는 순간,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명백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했고, 그래서 그런 행동
을 해왔지만, 실상은 너무도 서로를 몰랐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되는 말과 행동을 해왔던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드러났다고 가족 관계가 모두 회복되고, 이 캐릭터들이 행복한 결말을 맞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갈등은 봉합된다. 어떤 갈등은
해결된 것 같지만 여전히 불안 요소를 안고 간다. 어떤 갈등은 그저 유야무야 넘어가고 주인공은 그 상황 속에서 주저와 슬픔
을 드러낸다. 어쩌면 그 갈등은 언젠가 봉합될지 모르지만 또 다른 갈등이 발생할 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때로는 화합하지만
때로는 불화하고, 보다 복합적인 감정이 오고가는 인간 관계로서의 가족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서두에 언급한 그 친구는 결국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문을 닫아놓은 것은 아니지만, 너무 급하게 목을
매지는 않겠다고 답했다. 어떤 인간관계도 모든 것을 열어둘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건 가족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시기가 되고,
필요하다면 그때 말해도 된다. 그는 그렇게 답했다. 자신에게 못해준 것이 많다고 자신에게 죄책감을 드러내는 부모님과 함께
하던 친구는 이렇게 말해주었다고 한다.
‘있지, 내가 지금이 딱 내가 어렸을 때 엄마 나이 때야. 근데 난 아직도 내가 잘 사는것 같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도,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어. 그 때의 엄마도 그랬을 거잖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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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스머프
민우회 회원. 안 그런척 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새침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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