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머프의 영화관] 그녀는 지워지지 않는다 :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나는 글을 쓸 때 개인적인 경험을 자주 풀어놓곤 한다. 좋은 글은 그 글을 쓴 사람이 보이는 글이라고 믿거니와 그것이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쉬운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사람들에게 쉽게 밝히지 않았던 내밀한 경험이나
노출된다면 내게 위협으로 돌아올 이야기는 절대 쓰지 않는다. 뒷감당을 할 용기도 나지 않고, 나 조차도 그것들과 직면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결단을 내리거나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그렇게 묻혀진 채로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내가 꺼내놓지 않은 부분들은, 언제나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였으며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내
앞의 남은 시간들은, 그것들을 안고있는 나를 스치거나 관통하여 지나갈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겠지만, 내
가 꺼내 보이지 않은 ‘나’는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무수한 이야기들 속에 ‘나’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단 한번도 원한적이 없었고 무척이나 고통스럽지만, 어떤 나는 지워지고 기억되지 않고 계속해서 갇혀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자신의 존재가 표백되는 것에 저항하고 용
기있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은 끈질기게 크고 작은 기록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기입할 것
이다. 특정 시간과 공간 속에, 그곳에는 없으리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으로 존재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되었던 이들이 역사 속에 자리 잡고, 사람들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오늘 소개할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의 비비안 마이어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비비안 마이어, 아마 사람들에겐 ‘최초로 셀카를 찍은 사람’으로 더욱 유명하지 않을까 싶다. 그녀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찍은 작품은 마이어의 인장처럼 회자되었으니까. 수십만통의 필름과 엄청난 양의 신문 기사 스크랩, 수표와 영수
증 등 그야말로 자신에 관한 거의 모든 흔적을 모으고 기록했던 그녀이지만 정작 그녀의 삶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심지어 그녀의 작품과 수집품들도 발표는 커녕 주변인들에게 공개조차 되지 않았다. 아마 영화의 감독인 존 말루
프가 우연한 기회에 그것들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녀의 사진들은 창고에 잠들어 있거나 혹은 폐기되었을 것이
다. 이 영화는 그런 비비안 마이어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의 행적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이 영화가 던지는 주된 질문은 이것이다. 왜 비비안 마이어는 그토록 방대한 작업을 해놓고 공개는 하지
않았는가. 물론 중간에 그녀가 자신의 사진들을 엽서로 만들고자 했다는 기록이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이는 그녀 가족
들의 고향인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보내진 우편에 등장하는 말이었고, 어쨌거나 그녀는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창고에
고이 넣어두었다. 몇가지 추측 가능한 이유는 있다. 그녀는 남성들에 대한 증오를 종종 보이곤 했고, 어쩌면 그녀가 직
접적인 폭력을 겪었으리라 추측케하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아동과 여성에 대한 학대를 다룬 기사를 스크
랩하는데 천착하기도 했다. 그런 기사를 보면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역시나 사람들은 이렇다’는 식의 말을 하곤 했다
고 한다.
즉 그녀는 여성으로서 세상에 나와 자신의 생각과 말을 건네기에, 그 공간이 믿을만 하지도 안전하지도 않다고 생각했
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녀가 친절했다고 기억하면서도 동시에 어둡고 비밀도 많았다고 회고했으니 말이다. 그렇다
면 또 다른 질문은 그럼에도 그 작업은 어떻게 가능했는가이다. 영화에 등장한 한 사진 작가의 말처럼, 그녀는 발표는
하지 않고 작업에만 매진하는 예술가였다. 즉 그것이 인정이든 금전적인 것이든 그녀의 작업에는 아무런 댓가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가히 ‘비비안 마이어 박물관’이라 할 만한 작품들과 기록, 수집품을 남겼다.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녀가 그렇게 움직이도록 만들었을까?
어쩌면 그 이유는 여성이자 동시에 빈민이었던 그녀의 사회적 위치와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영화에 등장하다시피 그
녀는 평생 보모 일을 하며 여러 집을 전전했고, 말년에야 자신이 돌봤던 아이들의 도움을 얻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그야말로 사회에서 가장 비가시화되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두 개의 정체성이 그녀에게 부여된 것이다. 그
래서였을까 그녀는 빈민가를 누비며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고, 최초의 ‘셀카’로 유명해진 작품들처럼 자신을 프레임에
담은 사진들을 여럿 남겼다. 보고, 찍는 사람이 (아직까지도) 거의 모두 ‘남성’인 사회에서, 그녀는 그렇게 기록하는 여
성으로서 자신의 흔적을 남긴 것이다.
영화를 본 후, 나는 그녀의 사진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곳에 우리가 있었다. 그리고 이 곳에서 내가
기록하고, 말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천재적인 사진사이자 충실한 기록자의 작품은 공개되었다. 그녀
의 치열한 작업을 가능케 했을지도 몰랐을 바램처럼, 이제 그녀는 지나간 시간 속에 지워지지 않을 스스로의 자리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녀의 삶이 가장 보이지 않고 힘 없는 사람이, 격동의 시기 속에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함
께 했음을 가로새기는 투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는 승리했다. 그녀는 세상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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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스머프
민우회 회원. 안 그런척 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새침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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