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일상탐구생활 1.<여자의 짧은 머리>
[편집자주] <사진으로 일상탐구생활>은 민우회 회원인 혜영이 전하는 사진에세이로 올해 총 3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입니다.
사진에세이를 제안 받았을 때 즈음, 한동안 (조금) 길었던 머리를 다시 짧게 잘랐다. 나는 6년 정도 짧은 머리를 유지 중이다. 그리고 짧은 헤어스타일과 관련된 주변의 반응 역시 6년째 반복되고 있다. 이 반복되는 반응에 질려 첫 이야기를 투덜거림으로 시작해보고자 한다. 나 자신을 향한 탐구와 질문을 관찰과 기록으로 이어갈 ‘사진으로 일상탐구생활’의 첫 주제는 이렇게 ‘여자의 짧은 머리’가 되었다.
*이 사진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으로 도용, 복사, 배포, 판매가 이뤄질 시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 2017. HyeYoung all rights reserved.
나는 짧은 머리를 좋아한다. 긴 머리 보다 관리가 쉽고 관리를 위해 사용되는 소비재의 씀씀이도 적게 나가고 무엇보다 내게 잘 어울린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과정을 이야기해보겠다.
문제는 미용실에서부터다. 여자인 내가 원하는 기호의 스타일을 제안하면 열이면 아홉의 헤어디자이너는 당황하고 걱정하고 조금이라도 ‘여성적인’ 스타일로 역제안한다. 여기서 나의 해법은 헤어디자이너에게 과감한 스타일링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임을 전하며 망쳐도 괜찮다는 식으로 안 되는 너스레를 떨어 충분히 안심시키는 것. 미용실에서 노동자와 소비자 간의 감정노동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미용실 선생님은 손님 중에 투블럭 스타일의 여자 손님은 나 하나라며 더 많은 손님들이 이런 스타일을 시도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무리는 꼭 ‘여성스러운’ 드라이 스타일링으로 끝나는데 잠시 참았다가 ‘여자의 머리’라서 남성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나온 억울함과 함께 머리를 바로 흐트러뜨린다. (머리 자르는 과정이나 결과가 대개의 '남자들의 컷‘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왜 여성컷의 비용은 비싸게 책정됐을까.)
달라진 머리모양에 기분 좋은 건 잠시. 단지 (여자가)짧은 머리라는 이유만으로도 불쾌하고 난감하며 당황스러운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주로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반응과 질문으로 인해 생기는 그것들은 이렇다.
(나를 빤히 바라보거나 다 들리는 귓속말로) “남자야? 여자야? 목소리 들어보니 여자인 것 같긴 한데...”
“뒷모습은 남잔 줄 알았는데 앞에서 보니까 아니네~”
“여자가 머리를 왜 그렇게 했어요?”
“어! 혜영 이발 했네~”(남자들에게 쓰는 표현이 내게 어울린다며 한 말)
“남잔 줄 알았어요! 하하하~”
성별을 알아챈 후에는 미안하다는 식으로 웃으며 말하지만 나는 웃기지 않다. 미안함 보다는 특정대상을 향한 외모 편견과 무례함으로 속으로 품을 수도 있는 말을 결국 내뱉고야 마는 그들이 불쾌하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문화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어서 칭찬으로 착각하며 이어지는 말들 또한 대부분 편견 가득한 자신의 외모관을 은근히 내세우는 압박일 때가 많다.
“얼굴이 작아서 머리가 짧아도 잘 어울리네요”
“(지금보다) 머리 길 때는 여성스러워 보였는데 짧으니까 어려보이네. 괜찮다~”
“머리도 짧고 맨날 바지만 입고 다니고 화장도 안 하니까 남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천상여자야, 여자~”
더불어 누군가는 자신을 혼란스럽게 했다며 나를 탓하고 훈계까지 한다. 젊은 여성의 짧은 머리는 이럴 때 마치 죄가 되는 것 같다.
*이 사진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으로 도용, 복사, 배포, 판매가 이뤄질 시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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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불편하다면 누군가는 머리를 기르거나 여성스러운 짧은 머리를 시도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쉽게 말한다. 그럼 나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성별로 구분되는 헤어스타일은 무엇인지, 그렇게 구분되면 당신은 편한지, 혹여 당신은 편하더라도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 있지는 않은지, 나이 보다 성별확인이 더 궁금한 문화는 누구에게 편의를 제공하는지, 짧은 머리의 중/노년층의 여성들의 머리는 왜 이 확인의 대상에서 제외되는지, 나와 당신은 매일 매순간 여성들에게 눈과 귀로 쏟아지는 특정 외모압박의 조력자인지 아닌지 등.
나 역시 민우회의 ‘일상 속 해보면 캠페인’ 중 ‘외모에 대해 말하지 않기’ 실천을 때때로 실패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만나면 외모부터 언급하며 인사를 대신하려 한다거나 내 몸의 부정성을 먼저 보게 되고 외모이슈에 쉽게 동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질문들을 내게로 향하면서 몸과 의식의 변화를 지향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며 동시에 더 나은 문화를 만든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기록의 시작과 끝의 과정 내내 아마도 이 질문들은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질문과 사진으로 스스로를 탐구하는 이야기가 불필요한 떠벌림이 아닌 부디 누군가에게도 공감과 필요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첫 번째 이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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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혜영 (민우회 회원)
프리랜서 사진가/예술교육가. 몸의 정서를 담아내는 사진작업과 교육활동이 가장 긴장되고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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