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관 그래피티, 여성주의적 현실감각으로 담아낸 감동 로맨스
순정만화에서 ‘나쁜 남자’와의 사랑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이다. 진정한 사랑을 모르는 나쁜 남자, 하지만 한 여자에게만큼은 특별하게 느끼며 결국 그녀에게 굴복하여 사랑을 알게 되고 ‘착한 남자’로 개과천선한다. 매력적이지만 위험한 남자를 ‘길들이는’ 유일무이한 ‘특별한 여자’가 된다는 여성들의 판타지는, 별 볼일 없는 주인공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착한데다 S라인까지 갖춘 완벽미녀가 나타나 자신에게만 헌신적인 사랑을 쏟아 붓는다는 남성들의 ‘우렁각시’ 판타지만큼이나 뿌리 깊다. 이러한 설정들은 수많은 만화와 드라마에서 너무나 반복되어 가끔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우리의 욕망인 것을.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상상속에서 라도 채워주는 것이 판타지의 역할이지 않은가. 그러나 이 뻔한 설정을 뻔하지 않은 스토리로 재창조하는 것은 회피할 수 없는 작가의 책임이고 의무이며 능력이다. 그런 면에서 「기린관 그래피티」는 성공적이다. 주요 인물들의 캐릭터와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상황의 묘사에 있어서 새로움과 현실성, 더 나아가 ‘정치적 올바름’까지 잘 담아내었기 때문이다.
「기린관 그래피티」의 ‘나쁜 남자’ 히데츠쿠는 어린 아내 기쿠코를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로 취급한다. 기쿠코가 그의 폭언과 폭행으로부터 달아나 타에와 함께 자신에게 대항해오자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들을 괴롭힌다. 그의 부당함에 정면으로 맞서면서도 또한 그를 끝까지 사랑하는 타에는 강하고 독립적인 여자로, 히데츠쿠를 향한 사랑과 기쿠코와의 우정사이에서 갈등하며 성숙해 간다. 기쿠코는 어두운 출생과 성장과정으로 인해 자존감이 낮고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는 착한 여자이지만, 타에와 만나 히데츠쿠로부터 인격적인 인정을 받기위한 싸움을 해가면서 용기와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을 키워간다. 그리고 그러한 기쿠코를 사랑하는 기린관의 하숙생 히노는 기쿠코의 싸움을 지켜보고 격려하면서, 배려하고 기다리는 사랑을 보여준다.
「기린관 그래피티」의 미덕은 우선 로맨스에 현실성을 고려한 것에 있다. 보통 사회적 맥락과 상관없이 까칠하거나 터프한 소년 정도로 그려지는 순정만화의 ‘나쁜 남자’는 여기서 ‘남성중심적인 사회의 여성혐오자’로 상정된다. 히데츠쿠가 기쿠코에게 가하는 폭언과 폭행은 상당히 강도 높은 것이지만, 여성의 인격을 인정하지 않는 히데츠쿠의 명백한 여성혐오경향을 볼 때 현실적인 설정이다. 그렇게 비뚤어진 인간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개인사(이름하여 ‘아픈 과거’)가 등장하지 않는 것 또한 기존의 순정만화적 공식에서 벗어나면서 히데츠쿠의 여성혐오경향의 사회적 맥락에 무게를 두게 한다. 기쿠코를 고립시키고 더욱 힘들게 하는 주변인들의 오해와 차가운 시선들은 그러한 상황에서 여성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통념들을 잘 보여준다. 우리의 판타지를 따르자면 히데츠쿠가 확실하게 개과천선하고 그 잘생긴 얼굴에 어울리는 해사한 미소를 보여주며 끝나야 마땅하지만 한 인간이 수십 년간 익혀온 생각과 태도가 어디 그리 쉽게 변하는가. 타에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을 암시하는 결말은 아쉽지만 동의할 만하다.
「기린관 그래피티」의 또 한 가지 미덕은 대안적인 남, 녀 캐릭터의 등장이다. 주체적으로 사랑하며 성장해가는, 모든 상황에서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멋진 여자’ 타에. 청순가련에서 명랑쾌활까지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남성의 믿음직한 어깨 아래서 얼굴 붉히는 대부분의 여주인공과 대비되는 캐릭터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갈등하면서 변화하고 성숙해가는 두 여자의 우정이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점 또한 여자들 간의 우정이 부차적이거나 평면적으로 그려지는 대부분의 순정만화와 차별점을 갖는다. 기쿠코의 연하의 연인 히노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고루 갖춘 ‘대안적인’ 남성 캐릭터로, 만화에서 종종 ‘상대방이 원치 않는 성적 접촉은 폭력’이라는, 아주 ‘올바른’ 성의식을 강의하기도 한다. 벽에 밀어붙여 반강제적인 키스를 감행하는 순정만화의 터프남들이 수십 년 동안 여전한 것을 생각할 때, 히노는 기억해야 할 캐릭터이고 소중한 진보이다.
주요 캐릭터들이 이끌어가는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긴장감과 감동을 준다면, 엉뚱한 기린관 하숙생들이 벌이는 여러 사건들은 귀여운 유머와 따뜻한 인간미로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래되어 촌스럽게 느껴지는 그림체도 스토리에 빠져 읽다보면 어느덧 볼만하게 바뀌어져 있다. 일본에서 1986년 말에서 1991년 말까지 연재되었던 현실감각 풍부한 순정만화. 「기린관 그래피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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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보 감사해요 ^^
사무실에 이쏘~~
와~~ 다라이 나도 빌려주오
다라이는! +_+
타에와 히노때문에 봐야겠군요..더군다나 완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