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가 소설을 썼어 <김애란 소설집 -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내 친구가 소설을 썼어.
어 진짜? 누구?
내 룸메이트였던 애 있잖아, 애란이.
오~ 대단하다. 무슨 내용이야?
뭐, 그냥 우리 사는 얘기야. 진짜 리얼해. ㅎㅎ
ㅋㅋ.. 재밌어?
응. 슬픈데, 웃겨.
하하. 그게 뭐야.
진짜야. 읽어보면 알어.
그래. 함 볼게.
근데 니네집은 보일러 안얼었냐?
울집은 지금 뜨거운 물이 안나온다.
머리도 못감고 출근 했어.
야, 난 하필 토요일에 보일러 고장나서 이틀동안 냉방에서 잤어.
주말이라고 고치러 안 와주더라. 열라 추웠어.
너무 추우니까 괜히 서글퍼지는 거 있지.
이틀 째 밤에는 자다가 울 뻔 했어.
푸하하.. 야, 슬픈데 좀 웃기다.
니가 말한게 이런 거야?
어. 딱 이런 거야.
김애란 소설을 짤막하게 소개해 보자면, 네. 이런 겁니다. 꼭 내 친구가 쓴 글처럼, 우리 사는 얘기고, 웃기면서, 좀 슬픕니다. ‘우리’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볼까요? 아마도 이 ‘우리’는 저의 ‘우리’ 일 테니까요.
김애란 소설에 나타난 ‘우리’는 서울에 사는, 독립한, 독립했으나 가난한, 가난하지만 먹고, 자고, 섹스 할 방이 필요한, 젊은 이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의 배경은 서울, 신도림의 지하철역, 강북의 어느 골목길, 곰팡이가 번지는 반지하, 난간없이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 끝 옥탑, 그리고 집에 가면서 지나치는 24시간 편의점과 떡볶이 포장마차... 그런 것들입니다.
거기엔 ‘베토벤같이 풀린 파마머리를 한 채 귀머거리처럼 만두를 빚’어서 번 돈으로 ‘시대의 풍문에 따라’ 딸아이를 피아노학원에 보냈던 엄마가 있고, “세상에 영어하나만 돼도 주어지는 기회가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라며 편입 시험을 준비하는 언니가 있으며, 초라한 자취방 한 구석에서 연인에게 수줍고도 뜨겁게 “사랑해”라고 말하고 대답을 들으려는 순간, 얇고 허술한 창문 밖 동네 아이들의 “씹탱아! 그게 아니잖아! 저 새낀 항상 저래.” 같은 소음에 무안해져 ‘야한 농담을 했는데 아무도 웃어주지 않았을 때처럼 죽고 싶어’지는 사내가 있습니다. 사내는 고개를 떨구고 괜히, 침묵하는 그녀의 거웃을 만지작거리며 ‘아, 그 새낀 항상 그러는구나’ 생각합니다. ‘진짜 나쁜 새끼네’ 라고요.
아, 그리고 ‘거기에 없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달려라 아비’에서 화자는 어머니의 임신 사실을 알고서 도망간 후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를 상상하며 ‘형광분홍색 반바지’를 입혀 세계를 달리게 합니다.
또 다른 소설에서는 집에 큰 일이 생겼을 때, 아버지는 ‘단풍놀이 하러 설악산에’ 가고 없습니다.
‘아버지의 부재’를 표현한 김애란의 상상력은 정말 기발하거나, 정말 리얼합니다.
이 소설을 가지고 어떤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40대 중반의 남자분이 말하기를, 자기 세대에 있어서 ‘아버지’는 너무나 강한, 그리고 억압하는 상징이자 실체였으며, 자신들은 그 ‘아버지’의 방식을 ‘부정’하기 위해 엄청난 싸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리고 나서, 혹은 그렇기 때문에, 본인들이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을 때, 자신들이 될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 라고요.
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아버지의 부재’를 이해했습니다.
나에게 있어 ‘아버지’는 그런 격렬한 싸움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없다’라고 할 만큼 그 존재는 희미합니다. 내 기억속에는, 소설에서처럼 풀어진 파마머리를 하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단한 노동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크고 분명한 양감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아버지는 영화 속 까메오처럼 드문드문 나타났다 ‘사라질’ 뿐입니다. 그것은 내 경험 속 아버지의 ‘무능력’이나 '무책임', 서로에 대한 ‘무지’, '무관심', 또한 실재적인 부재-‘거기 없음’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겠지요.
그 ‘없음’으로도 이렇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걸 보면, 아마도 ‘부재한’ 아버지라도 ‘무의미’하지는 않은가 봅니다.
돌아가서,
김애란의 소설들은 '우리들의' 여러가지 모습을 리얼하게 스케치 합니다. 그리고 분명, 그 스케치에는 어떤 '관점'이 있어서, 그냥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느끼게 합니다.
탁월한 '우리'의 일상에 대한 묘사와 통찰을 보며, 혹자는 '시대정신'이니, '시대의 초상'이니 하는 말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수식어들이 왠지 김애란의 글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은, 오히려 그만큼 그녀가 '시대정신'을 잘 묘사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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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 나도 정말친군줄 알었어! 이 소설 얼마전 필름2.0에서 만났는데 다라의 소개글이 더욱 생생! 읽어보고싶어욤!
저도 친군줄 알았어요. ^0^
저도 이 책을 읽으며 '무언가'가 무엇인지 느끼고 싶어지네요.
흥미진진한 소개, 감사함다.
나 이 소설 작년인가 재미있게 읽었어요.
소설이라는 장르만이 갖는 재미를 적나라하게 주었던 것으로 기억됨.....
위의 저 대화는 구성된 것입니다~ 저는 김애란이랑 모르는 사이예요 >.<
(오해하는 사람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