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차와 함께 떠나는 잔차여행!
잔차와 함께 떠나는 잔차 여행!
잔차
잔차의 잔차여행은 대체로 불광천으로부터 시작한다. 불광천이 한강과 만나고, 한강을 타고 달리다보면 안양천이랑 만나고, 잘하면 지하철도 탈 수 있고, 못 갈 곳이 없을 정도?
일부 몰지각한 아이들의 잔차질 - 강화도
2007년 초여름, 일부 몰지각한 아이들이 모였다. 강화도에서 일박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몇은 잔차를 타고 가기로 한다. 난 그 때까지 잔차 타고 한강을 넘어서 더 멀리 가본 적이 없었다.
불광천을 따라 한강까지 나와 성산대교를 넘으면 안양천을 만날 수 있다. 하류 쪽으로 달리다보면 다시 한강을 만나고, 이쯤에서 도시락을 먹고, 6-7km 정도 달리다 보면, 김포로 나갈 수 있게 된다. 여기부터는 자전거 도로가 없고 외곽이어서 큰 차들이 많고 속도도 빨라 위험하다.
그늘도 없는 이 길 위에서 일이 터졌다. 스템플러 알이 박혀 바퀴 바람이 빠진 것. 비상 준비물을 동원하여 떼워도 보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30분을 달려가 아예 튜브를 사왔는데 불량품. 헉, 다시 다녀와서 또 갈고 출발. 땡볕불볕에 3시간을 있었다는, 그런데도 결국은 그 잔차와 주인은 차에 실려 갔다는. 허탈하게 맑은 하늘 아래 그늘 한 점 없던 곳, 다들 부산하게 움직이는데 나 혼자 심심해서 어찌할 줄 모르다가 이삭 줍고 머리에 꽃을 달고, 층계 난간에서 묘기까정 부리다가, 혼자 이런 일 당하면 어찌하노, 싶지만 나름 재밌구나, 싶기도 하다.
초지대교서 동막으로 가는 길 농로가 있었는데, 걷기여행 하시는 분의 ‘한국에서 가장 걷고 싶은 길’이라는, 강추에 힘입어 짧은 거리 질러 올 수 있던 오솔길과 둑방길도 좋았다. 결국 7시간이나 걸려서 동막에 도착했는데, 잔차로 처음 멀리까지 와본 것이 스스로 대견하다.
다음날은 강화도 안을 둘러보며 자전거 길도 즐길 수 있었다. 강화대교를 넘어 한강에 도착했더니 3시간 만에 왔다. 차들이 많이 밀려서 그런지 함께 출발한 자동차 팀과 비슷한 시간에 도착했다는 데서 우린 기뻐했다. 자 이제 다시 잔차질 하고 집에 갈 궁리. 아, 땡볕 불볕에 강화도 잔차질이라. 몰지각한들 어떠랴. 좋구나.
철저한 준비 없이 이루어진 이런 몰지각한 잔차질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강과 절이 함께 있어 좋았던 길. - 수종사 끌바! 쫌 짱인듯~
아, 봉천동 하늘가는 길? 내 일터로 가려면 봉천동 국사봉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올라야 한다. 이 오르막을 국화단지길이라 하는데, 처음 오는 사람들은 버스가 뒤집어 질까 저어하는 급경사다.
하지만 수종사의 오르막에 비하면 국회단지의 오르막은 오르막이 아니더이다. 아니, 수종사는 오르막이 아니라 벼랑이더이다.
왜 그랬을까. 왜 아래에 세워놓고 올라가지 않고 이런 미친 짓을 했을까.
사실, 이번 잔차길은 처음부터 대책이 없었다. 초파일이라고 절에 가고 싶은데, 자전거는 타고 싶고. 잔차타고 갈 수 있고 강이 있으면 좋겠고 서울 근교이길 바라고 풍경이 좋은 절을 오래도록 검색한 결과 수종사가 나왔다. 그래 바로 이거야!!! 근데 함께 갈 사람 없음.
한강을 달리다가 이촌역에서 잔차를 싣고 중앙선을 탔다. 팔당까지 가도 좋지만 덕소에서 내려 간단한 도시락을 먹고, 다시 잔차를 타고 2시간을 달려 정약용생가를 지나 수종사 입구에 도착했다. 이 근처는 버스타고 여러 번 와본 곳이었다. 동네가 거의 유기농을 하는 곳이었고 공부방에서 행사 때 사용했던 생태농장이 있는 곳이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봉천동 고갯길을 살짝 20도 정도 더 세워 놓은 수종사 진입로. 입구에서 일주문까지 끌바해서 50분! 일주문에서 절로 올라가는 돌층계는 끌바 10분, 어깨에 메고 5분. 이렇게 가서 잔차랑 함께 내려다 보는 북한강이 좋아봤자 얼마나 좋을까, 저어했는데, 웬걸. 대박이더이다.ㅋ.
▲ 수종사 전망대에서 바라 본 두물머리 풍경.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한강이 되는 곳입니다.
산 꼭대기 작은 부지에 아담하고 소박하게 들어앉아있고 북한강, 두물머리 내려다 뵈는 널찍하고 빤빤한 마당이 탁 트여 있다. 마당 한 쪽에 차 마시는 방이 하나 있는데, 보살님이 직접 우려내주는 차를 마시고 싶었지만, 난 늦게 간 터라 문 닫을 시간에 정갈하게 정돈된 모습만 보고 물러났다. 담쟁이가 잘 어울리는 처마며 서까래며 단아하다. 마당, 차마시는 방의 문살, 부도와 탑의 돌이끼 들이 참말로 이뿌요. 대웅전의 꽃문살과 풍경, 흐드러진 수국, 그리고 해우소 가는 길. 그 문 너머로 펼쳐질 세상에 대해 설렌다. 이 문을 나서니 당산나무 같은 아름드리나무가 한강을 내려다보며 있고, 오른 쪽으로 돌아들면 해우소가 있다. 이 널찍하고 한가로운 딴 세상에서 다시 수종사를 올려다보면, 기와 먹은 담장도 예쁘고, 하나 둘 들어오는 연등도 곱다.
다시 마당에 서 본다. 잔차가 내려다보는 북한강을 함께 굽어본다.
앗, 근데 아까 그 벼랑을 내려 갈 때는 어떨까? 그나마 타고 내려올 수 있는 곳은 절반 뿐, 브레이크 터지는 줄 알았다. 나머지는 역시 끌바. 그래도 내려오는데 30분이 안 걸렸으니 오를 때 마음과 내릴 때 마음 다름이 어찌 이 뿐이겠냐만, 여튼 이제 살았구나 싶다.
다시 1시간 반을 달려 덕소역까지 온다. 잔차가 기특하다. 이촌역에 내려 한강 진입. 이제 맛깔난 뒤풀이가 남았다.
강과 절이 함께 있어 좋았던, 잔차랑 잔차 길. 유후~
바람과 바다냄새와 소리들 - 제주도 6박 7일
이 이야기는 내게도 전설이 된 이야기.
지난 6월 어느 날 나는 공부방에 비상 회의를 열고 내게 쉴 시간을 달라고 했다. 내 마음이 많이 병들었다고. 짧은 휴가를 무얼 하며 보낼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짱박히든 수련을 받든 교육을 받든, 나는 마음의 치유를 원하고 있었다.
그날 집에 가며 제주에 잔차를 가지고 가야겠다고 맘을 먹어버린다. 노자돈은 오래도록 모은 책을 팔아 마련했다.
월요일 저녁 인천에서 배를 타고 다음날 아침부터 제주를 반시계방향으로 돌기 시작한다. 220km. 이호, 애월, 한림을 지나 차귀도까지 내려가 일박.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는 것이 목표였으나, 마침 장마라 비바람에 휘청이는 건 아쌀할 정도로 행복했으나, 바람에 날아가버릴 것 같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잠시는 일주도로를 타기도 한다. 신비로운 숲길을 지나 고즈넉한 대평리 마을을 거쳐 중문을 지나서는 서귀포로 들어간다. 밥상까지 차려주시는 <태공각>이라는 할아버지 모텔에 가서 일박을 하는데, 밤에 잠시 내려가 천지연 앞에서 하염없이 앉아 있다 온다. 다음 날 생각지도 않았던 한라산을 올라 한치 앞도 안 보이는 구름 속을 헤치며 무사히 내려왔고 감기에 걸렸다.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남원과 표선을 지나 섭지코지를 들렀다가 성산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제주 걷기 여행을 하던 공부방 친구를 만나 깜깜한 밤,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바라보며 밥과 술을 먹고 가겟집 할머니 방을 빌려 함께 잤다. 다음날 내 기침과 가래는 한결 심해졌고, 제주시에 겨우 와서는 배를 타고 인천에 돌아온다. 완벽한 전문적 잔차족 할머니들을 만나 따라 다니다가 인천에서 고생을 했고, 집근처에 다 와서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바퀴가 구멍났다. 한 시간을 끌바하고는 잔차포에 가서 수리를 하는데, 가기 전에 들렀던 곳이라 무사히 잘 다녀왔다는 인사를 한다. 친구를 만나 뒤풀이. 그리고 나는 덜컥 병이 들었다. 폐렴. 삼일 휴가가 일주일로 늘어나더니 입원하니라고 3주를 쉬어 버렸다.
촛불집회와 잔차여행과 입원과 병세의 완연함이 나를 죽였다 살렸다 했다.
다들 촛불집회에서 마음이 참 많이 어려웠을 것임을 안다. 밤을 새는 몸의 기운이 딸리고, 그 안에서 수만 가지 말들과 시선이 오고가니 마음이 넘치다가도 속이 시끄럽고, 모인 우리들이 다양하기에 상처받고 상처 내다가도, 그 모두가 하나 될 수 없음에 오히려 신비롭게도 다시 희망을 안던, 그러나 깡다구는 소진해 버린, 날들이었다.
그 한 자락 끝에서 길을 떠나설랑은 비바람에 휘청거리며 행복해하고, 안개 구름산을 오르며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기침가래 하면서는 그 부질없음에 놀라고, 앓고 나서부터는 ‘살고 싶고 잘 살고 싶고 따뜻하게 살고 싶은’ 욕구를 인정하자, 싶었다.
이 길바닥에서 나는 배 타는 시간 놓치지 않게 잔차 싣고 달려주신 인천 아저씨가 고마웠고, 내 책을 사서 노자돈 마련해 주신 헌책방이 고마웠고, 나를 기특해하던 나보다 더 기특하시던 잔차족 할머니가 고마웠고, 내 제주 잔차여행에 도움을 준 선배들이 고마웠고, 입원할 돈이 없어 걱정하던 나를 그냥 입원시켜준 병원이 고마웠고, 내 마음의 아픔을 헤아려 주며 기다려 주던 많은 사람들이 고마웠다. 여전히 올 여름, 내 마음을 목소리 내는 한 마디. 도처에 귀인이라.
“평화는 상대방이 내 뜻대로 되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그만 둘 때이며, 행복은 그러한 마음이 위로 받을 때이며, 기쁨은 비워진 두 마음이 부딪힐 때다.” 라던 황대권씨의 글이 여행의 끝자락에서 내 맘에 큰 위로가 되었었다. 난 제주에 살아있었고 평화롭고 행복했고 기쁨이 가득했음을, 기억한다.
글고, 제주는 잔차여행이 짱이다. 자동차로는 느끼지 못했던 바람과 바다냄새와 소리들.
잔차들이여, 우리 달리자꾸나.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저도 수종사 데꾸 가욧~~~~~~~~~! 잔차님 짱 멋지고, 짱 부러워요~~~~~~~
이얏.
우리 다같이 잔차타고 수종사 가욜!
나도 갈테에요! 수종사~~~~
잔차 글을 보고 이번 연휴에 수종사를 다녀왔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수종사까지 가는 산길이 참으로 험난했는데(무시무시한 경사)이 길을 잔차를 끌고 오른 잔차가 다시 새롭게 보였다지요! 잔차, 수종사 참말 좋았어! +_+ 열허분도 기회가 되면 한번 다녀오세요!
수종사에서 보는 안개낀 한강, 그냥 바로 출가하고 싶어지죠. 한강변에서는 자전거를 타곤하는데 수종사를 자전거로 도전해 보지 못했네요. 꼭 올해내에 시도해볼 것임
난 20분만 달려도 숨이 턱까지 차서 페달을 밟을 힘도 없는데...멋쪄요. 잔차!
작업을 참말로 잘 해 주셨다요^^
적재적소에 알맞는 사진들을 이렇게... 고맙습니다.
잔차 글을 읽다 보니, 잔차여행을 떠나고 싶어져요.
네 자전거예염^^
'잔차'가 뭔가요? 자전거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