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나는 다방] 즉흥연극하는 회원 이산을 만나다
작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생존자 말하기 대회’에 기획자와 참여자로 만났던 이산과 나.
작년 말하기대회는 참여자들의 짧은 연극과 노래 공연으로 이루어졌는데, 나에게는 참 특별한 경험이었다. 내가 직접 쓴 가사로 노래가 만들어지고 내가 대사를 쓰고 무대의 주인공이 된다는 건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으니까. 세상에, 내가 주인공이 된다니, 이게 말이 돼? 그런데, 되는 거 있지.
공연을 준비하면서 나는 스스로의 감정을 검열하고 억압하는 행위를 멈출 수 있었고 나를 표현한다는 것의 자유로움, 그 맛을 보게 된 것 같다. 그 후 이산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체르니 100번부터...^^;
이산은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였고 지금은 ‘목요일 오후 한시’라는 극단의 배우이다. 말하기 대회 당시 놀라운 추진력과 참여자 한 명 한 명을 챙기는 꼼꼼함, 그러면서도 얼굴 한번 찌푸린 적이 없어 나의 존경심을 자아내던 야물딱진 내 친구 이산.
가끔 레슨할 때 어깨와 등 안마도 해 주고, 커피도 내려주는 언니 같은 친구 이산. 왠지 내 고민을 다 해결해 줄 것만 같은 확신 있고 안정감 있는 포스.
피아노 레슨을 끝내고 그녀의 연습실로 따라가 보았다.
-성폭력 상담소 활동을 하다가 연극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뭐야?
사실 상담소에 있을 때에도 인디극단 ‘판’ 활동을 했었어.
상담소 들어갔을 때 처음 6개월 동안 거의 매일 야근을 하는 거야. 그래서 나도 나랑처럼 야근 안 할 방도, 취미생활을 찾았던 거지. 대학 다닐 때 공연기획 공부도 했었고,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해서 합창동아리를 했었거든. 그래서 인터넷 뒤지다가 뮤지컬 동호회를 알게 되고 거기서 수업을 듣다가 수업 같이 들은 사람들과 인디극단 ‘판’을 만들게 됐어.
상담소 있을 때에도 여악여락,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 등 공연 기획을 맡다보니 점점 더 그쪽 일을 하고 싶어지더라. 근데 상담소 활동과 병행하면서는 길을 못 찾겠더라구. 결국 그만두고 배우 공부를 하게 됐지. 그런데 연기가 너무 재밌는거야. ‘판’을 계속하다가 최근에는 ‘목요일 오후 한시’ 단원이 되었어.
*목요일 오후 한 시(목한시)는?
‘목요일 오후 한 시’는 2004년 창단멤버들이 매주 목요일 오후 한 시마다 퍼포먼스를 해서 붙여진 극단명. 즐거움과 호기심을 원동력으로 플레이백씨어터를 전문으로 하는 공연예술창작집단이다. |
*플레이백씨어터란?
어떤 주제에 관해 관객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배우들과 악사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연극으로 표현하는 형식이다. 미리 만들어진 연극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가는 연극. |
작년에 처음 목한시 공연을 보고 홀딱 반했는데, 관객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어떻게 바로 그 자리에서 연극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정말 다들 천재 같았다. 이미 각본이 정해져있는 연극과는 달리, 배우의 순발력, 배우들 사이의 호흡, 관객과 배우 사이에 소통이 매우 중요한 장르인 것 같다.
-플레이백시어터(즉흥연극)는 어떤 거야?
관객이 해 준 이야기를 충실하게 하는 것보다는 엑기스를 파악하고 그걸로 중심을 잡은 후에는 재미있는 연극으로 신나게 노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요새 꿈 이야기를 듣는데, 스케일이 크고 이미지가 강렬하면 저 사람의 무의식엔 뭐가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해.
얼마 전 목한시는 ‘시장통 이야기 발굴 프로젝트’라는 걸 했다. 시장 상인들을 만나며 즉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보여드렸던 참으로 기특한 기획. 당시 촬영한 동영상을 봤는데 연극을 보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표정이 참 훤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연극으로 만들어지는 그 특별한 경험은 그 분들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이번에 인천 현대시장에서 시장을 돌면서 즉흥연극을 했잖아. 그 기획이 너무 아름다웠어. 그때 어땠어?
정식명칭이 시장통 이야기 발굴 프로젝트야. “어떻게 장사 시작하게 됐냐”를 주제로 했는데 이야기 밀도가 굉장히 높았어. 사전에 인터뷰를 여러 번 했기 때문에 얼굴 다 알고 서로 정이 붙어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느낌이었어.
얼마 전, 조계사에서 4대강 반대 집회 할 때도 가서 “강에 대한 기억”을 주제로 야외에서 즉흥연극을 했는데 재밌었어.
낮은 곳의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예술이 어떤 의미일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예술은 뭘까. 요새 나의 화두 중 하나이다.
암튼 목한시는 이번에 연해주에 사는 고려인 4세대 이야기 발굴 프로젝트를 하게 됐다고 한다. 이제 외쿡으로까지 진출하는 거야? 므훗~
-여성주의와 연극과의 만남은 어떻게 가능할까?
플레이백씨어터를 하다 보면 관객이 들려주는 이야기 이상으로 확장돼.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까 여성주의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겠지.
공부를 안 하면 해석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공부가 중요해. 그래서 누구는 철학을 공부하고 누구는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상근자이고 난 요새 문학 공부를 하고 있어.
-예술이나 창조적 활동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 같아?
나랑은 피아노 치면서 어때?(역질문을, 허걱;;)
-나? 난... 아직 잘 모르겠어. 그냥 매일 조금씩 연습하고 조금씩 기량이 향상되는 걸 느낄 때 기쁜 거? 피아노로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준은 아직 아닌 것 같아.
난 일단 그걸 할 때만큼은 아무 생각이 없어져. 세상에서 분리된 시간이지.
그래, 진공의 시간, 나의 존재조차도 잊어버리는 그런 몰입, 삼매. 삼매가 주는 희열을 나도 사랑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은 필요하다.
-연극할 때 어떤게 좋아?
연극은 항상 ‘지금’을 생각하는 게 좋아. 무조건 지금 해야 돼. 어제 잘 했거나 내일 잘 하는 건 아무 소용없어. 그런 느낌이 뭔가 개운하고 사람을 계속 살아있게 만드는 것 같아.
공연일 하는 건 사실 오래된 꿈이었는데, 앞으로 10년은 더 하고 싶어. 목한시 사람들이랑 농담 반으로 할머니 돼서도 플레이백시어터 하자, 오래 산만큼 뭔가 나오지 않겠냐, 그런 얘기한 적 있거든.
-창조성 일깨울 수 있는 팁 같은 거 있어?^^;
자기가 하고 있는 건 다 창조적이라고 믿는 거.
-상담소 활동 해 봤으니까 활동가의 고충을 알잖아? 흐흐~ 민우회 활동가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 있어?
가끔은 정말 자기 자신만 생각하세요! 돈 많이 벌면 회비 인상할께요!^^;
인디극단 ‘판’에서 했던 맘마미아 주인공의 이산부터 지금 ‘목요일 오후 한 시’의 이산까지.
팬의 한 명으로서 점점 자연스럽고 자신감 배어나는 이산의 연기를 보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친구는 바람에 걸리지 않는 그물처럼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살꺼라 확신한다.
이산 파이팅!
*8월 12, 13일에도 나루 지하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목요일 오후 한 시'의 공연이 있습니다.
민우회 회원님들, 활동가들 같이 가요!
극단 목요일오후한시의 즉흥연극 '꿈 열흘 밤'
일시 8월 12일(목) 8시 8월 13일(금) 5시
장소 성미산마을극장
관람료 10,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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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언니들이 느무느무 많다효...^^ 반가와요..이산..(이서진이 생각나는건 뭘까?..쿄쿄)
와~! 내가 좋아하는 연극을 하는 사람~ 정말 멋진걸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추진력있게 하는 파워, 진심..너무 감동적이당. +--+^^ 나두 칭구에게 피아노 배웠었는 데, 그 칭구가 갑자기 너무 보고파지네욘~~~ㅎㅎ
세상엔 정말 멋진 언니들이 많아요! +ㅗ+ 이산님, 안녕하세요! :)
와! 이산이다! :) 반갑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