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나는 다방] 노새가 만난 헤움
[탐나는 다방] 노새가 만난 헤움
여덟 번째 <탐나는 다방>은 머리카락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짧은 머리 노새 님이 긴 머리 헤움 님을 만나 여성성/남성성과 가사노동에 대해 이야기 나눴어요. ‘피씨’한 말들을 넘어 행동하기로 한 두 ‘룰 브레이커’의 만남을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우리를 둘러싼 젠더에 관하여
: 긴머리 헤움과 짧은 머리 노새의 머리카락 토크
글 : 노새
탐나는 다방이라면, 어쨌거나(?) 회원으로서 인터뷰를 빌미로 또 다른 회원을 만나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아니던가. “노새가 원하는 누구든 다 연결해주겠다!”는 호방한(호방하다=의기가 장하여 작은 일에 거리낌이 없다) 스누피의 제안에, 긴 머리칼 흩날리는 헤움이 떠올랐다. 지난 9월, 헤움의 <여성주의 바톤터치> - “헤움의 머리 기르기” 글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까닭이다. 짧은 머리를 고수하는 여자로서(?) 머리칼 기르기를 실천하고 있다는 헤움을 만나고 왔다. (참고: 헤움은 민우회의 남성회원입니다.)
(△헤움. 세 마리 고양이의 집사이기도 하다.)
1. 머리카락에 관하여
나의 경우는, 중학교 입학 단발령에 ‘울면서’ 기다란 말총머리를 잘랐었지만(짧은머리는 너무 여성스럽다며 펑펑 울었었다.), 짧은 머리의 편리함과 매력에 빠져 현재까지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미 길을 잃은 건지도.). 반면, 햇수로는 9년째, 긴머리로 살고 있는 헤움. 긴머리로 인한 여러 고충과 불편을 몸소 경험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긴머리를 고수하고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어봤다.
헤움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학원. 학계라는 곳. 비록 진보적인 지식을 생산하고 있는 곳이라 하더라도, <몸의 표현>에 있어서만큼은 그곳 역시 여느 일반회사와 마찬가지로 보수적이라 했다. 가령, 옷 입기라던가, 헤어스타일이라던가, 보이지 않지만 모두에게 통용되는 게임의 규칙이 있는 것이고, 그것은 성별과 직급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헤움은 “내가 혼자 머리 기른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여기서 머릴 자르고 다닌다는 건, 나의 취향과 상관없이 ‘굴복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조금은, 그 마음 알겠더라. 내가 대학 졸업을 눈앞에 뒀을 때 “너도 이제 머리 좀 길러. 취직하고 시집가야지?” 라는 말, 많이도 들었었다. 그 때 나도, 그 느낌 받았었다. 그건 왠지, 굴복하는 거라는 느낌. “남들처럼 너도 보통의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으면, 너도 니 개성은 이제 그만 굴복시켜. 게임의 규칙 안에서만 니 개성을 길러야 해!” (속닥속닥) 나는, 되도록 끝까지 룰 브레이커로 남고 싶었다. (아니 그래봤자 그냥 머리털이잖니!!!)
헤움은, 학위 논문을 “머리 긴 채로 쓰고 싶다”고 했다. 긴 머리칼이 잡아먹는 일상의 수고와 시간은 분명 짧은 머리칼이 잡아먹는 그것 보다 많다. 하지만 헤움에게 그것은 단순한 계산 문제가 아니다. “나는 내가 남성이니까 그렇게 자를 수 있는 거죠.” (아하?) 헤움이 긴머리칼로써 경계하고자 하는 것은 “살아가면서 필요한 시간들(가령, 씻고, 말리고,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고, 청소하고, 밥하는 일)을 없애는 방식으로” 얻어낸 시간과 수고로 사회적 성과(가령, 한국현대사에 한 획을 긋는 논문 같은 것)를 내는 것. 아! 밥하고 설거지하고, 자기 한 몸 건사할 줄 모르는 (남자) 사람들이 생산해낸 지식들이여! (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자꾸만 정희진 선생님 생각이 났다.)
2. 공중화장실, 공중목욕탕에 관하여
‘여자답지 않은’ 겉모습 때문에 웃지 못할 해프닝을 겪을 때가 많다보니, 나는 공중화장실 가기를 꺼려한다. 최근엔 까칠해 보이는 여중생 애들이 버티고 서 있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동네 도서관 화장실에 갇혀있었다는 얘길 헤움에게 했다. 머리 짧은 여자의 화장실 이용기를 요약하자면, <눈치와 긴장의 연속> 정도가 되겠는데, “머리 긴 남자로서 헤움은 어떻냐”고 물어봤다.
(그림△“저 사람들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노새)
헤움의 경우, (시공간을 불문하고 교복 입은 중고딩들이 무섭기는 매 한가지라는 말을 덧붙이며) 찰랑찰랑 긴생머리 뒷모습을 목격한 남자들이 깜짝 놀라 화장실 바깥을 확인하고 다시 갸우뚱하며 들어온다고(‘어라? 남자화장실 맞는데?’). 오호라, 고것은 완전 비슷하다! 하지만, 긴머리 헤움이 두렵거나 긴장을 느끼는 쪽은 화장실이 아니라 공중목욕탕이란다. “몸으로 여/남성성을 표현해야 하는 공간”인 목욕탕에서, 오히려 안도감과 당당함(?)을 느끼는 나에 반해, 헤움의 경우는 “머리를 기르고, 남성들만의 공간에 가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고 했다.
......어떤 건지 알겠다. 아이고. 사람들은.... 누군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규정할 수 없을 때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가봐. (불안함, 고약한 호기심, 그리고 분노까지.)
3. 집청소와 밥해먹기, 가사 노동에 관하여
언젠가, 자취방에 불을 끄고 누워 잠을 청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불을 끄고 누우면 걱정이 밀려왔다. 일생일대의 큰 질문 <내일은 뭐 해먹지...>하는 생각이, 점점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삼시 세끼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어느 날에는 ‘요리 하는 것보다 메뉴 정하는 게 더 고통스럽다’고도 생각했었다. 헤움과, 가사노동에 대해서도 얘길 나눴다.
헤움에게 긴머리와 가사 노동이란 여성주의 실천에 있어 중요한 두 가지인 동시에 아킬레스건. “어렸을 때, 집에 들어와서 배가 고파도, 밥을 차려서 먹지를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되게 한심한 거지.” “자취하는데 방이 너무 쉽게 지저분해지는 거야. 어렸을 때 우리 방은 안 그랬는데. 온갖 생각을 했죠. 서울이라 먼지가 더 많은가. 뭐가 문제가 있나.” 가사노동에 관한 한, 무지몽매했던(?) 지난날들을 회상하며(?) 헤움은 말했다. “스스로 삶을 잘 꾸려나가는 기술이 없는 거죠.”
하지만, 여자라고 해서 저절로 “삶을 잘 꾸려나가는 기술”에 능할까. 나는 집에 쌓아놓고 온 설거지 더미와 이미 유효면적을 잃은 지 오래인 책상과 밥상, 정말 오늘은 꼭 치우기로 나 자신과 새끼손가락 손에 걸고 약속 또 약속했던 집안의 온갖 쓰레기 더미들을 떠올리면서, 하지만 침묵하면서 헤움의 이어지는 고백(?)들을 듣고 있었다.
“요즘도 열심히 집에서 해먹긴 하는데.... 너무 막 해먹는 것 같애. 들어간 재료는 되게 화려한데....... 그릇 잘 안 닦고. 음식도 보기 좋게 자르면 얼마나 좋아. 근데 그렇게 안 하고. 간도.... 이게, 다른 사람을 초대해서 먹일만한 음식인가.. 이게 바로 <남성의 음식법> 아닌가... ”
(△부엌의 새로운 계율이, “상 차리지 않은 자, 설거지라도 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장을 보고,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일. 네 글자로는 ‘가사노동’. 시간도 들고 수고스럽다. 공부에만 집중하면서 식당에 가 밥을 사먹을 수도 있지만, 헤움은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시간과 노력들을 타인에게 전가해버리면서 사는 것이 '언피씨하다("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물길러 친구들에게 배운, 요즘 유행하는 말이라고..?)'고 생각한다. 그리고 헤움의 말대로, 말로 표현하지 말고 행동으로 표현해야 한다. (“사랑한다” 말하는 남자에게 “사랑하지 말고 청소해.”라고 말한 여자의 말을 기억하라!)
나는, <내일은 또 뭐 해먹지...> 클럽(...이란 게 만약 있다면)에서 긴머리 휘날리는 헤움을 만날 수 있겠다 생각하니 좋다. 머리칼에서부터 의복, 손짓, 몸짓에 촘촘히 스며들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젠더라는 것에 대해서도, 헤움과 계속 얘기해나갈 수 있겠으니, 그것도 참! 좋.
아.요!
글쓴이: 노새
중등학교 입학 단발령 이후 줄곧 짧은 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투블럭컷트를 실천하는 민우회원들로 이루어진 “바리깡공동체” 멤버.
2014년 마지막 <탐나는 다방> 을 맡아주신 헤움과 노새 고맙습니다!
만나고 싶은 회원이 있다면 회원팀 꼬깜, 반아, 제이, 스누피
[email protected] 를 찾아주세요!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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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요>.< 긴머리카락에서 무언갈 경계한다는 부분이 정말 인상적이네요!
(짜이) 우왕 본다큐어 헤움이당~ 긴 머리카락에 헤드폰에 타래라니, 이보다 헤움을 잘 표현하는 사진이 없겠군요 ㅎㅅㅎ!
아하핫 진짜 헤움 사진 좋군요. ㅋㅋ
저 설거지하는 개 사진도 좋아요.
살림살이..내팽개친지 너무 오래됐는데...힘을 낼 때!
두분의 이야기 흥미롭게 잘 보았습니다.^^
꼬깜
ㅎㅎ 요즘 (특히), '자기 한 몸 건사'하는 삶을 잘 꾸려나가지 못하고 있던 터라 찔리는군요. 다시 살림살이 정비해야지!
재밌게 읽었어요+ + 끼어들어 수다떨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ㅎ 근데 전해 듣기론 한식대첩 얘기도 많이 했다고....
두사람의 이야기가 함께 들리는 효과는 뭐지 (인터뷰니깐;).ㅎㅎ
헤움의 실천, 머리기르기에 이어 일상 면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걸 들으니 실속있는 내공이 느껴져요. 난 그걸 대단하게 느끼는데 헤움 보면 대단하지 않게 티내지 말아야지. 으흐흣.
머리카락이라니! 주제도 글도 흥미진진하네요ㅋㅋ노새의 그림이 하나의 포인트인듯!ㅋㅋ
재미난글잘봤어요~
헤움사진좋네요^^
오옹! 머리카릭 이야기에서 로 이어지다니 0_0 헤움이 말하는 '언피씨하다' 멋진데요. 단발머리가 여성스럽다고 말총머리를 했다는 노새의 과거도 흥미롭다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