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나는 다방] 썸나잇이 만난 두부
이 세상 마칠 때는 돼지 국밥 한 그릇 시원하게 먹은 기분으로 (feat. 소주)
-글 : 썸나잇
하늘이 높아지는 초가을의 어느 날, 나는 두부네 회사 근처 까페로 두부를 찾아갔다. 두부는한적한 까페에서 여유롭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웨이브 진 머리에 편안해 보이는 표정. 두어 달 전 봤던 그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금방 기억났다.
잘 들어주는 사람인 두부와 할 말이 많은 축에 속하는 내가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 만났으니 재미있는 구도인데, 나는 질문을 한다면서 여러 가지로 떠들어댔고 두부는 그 와중에 침착하게도 대답을 잘해줬다. 이번엔 나도 잘 들어주는 사람이고 싶었지만, 역시 잘 들어주는 쪽은 두부 쪽이었던 것 같다.
‘첫 사람’이란 말이 좋았다고 했다.
두부는 민우회와 공동으로 기사를 쓴 경험이 있는 회사 선배가 ‘고마운 사람을 찾아가는’ 행사의 일환으로 민우회를 방문할 때 따라간 것이 계기가 되어 민우회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 땐 어떤 단체인지 잘 몰랐던 민우회 첫 방문 때, 편하게 수다 떨 듯이 했던 이야기들도 좋고, 소모임도 재미있어 보였던 두부는 그 자리에서 회원 되었다. 두부는 특히 <첫 사람 프로젝트>라는 말이 좋았다고 한다. 나는 첫사람 프로젝트라는 말에 대해 잘 몰랐다.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먼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게 내가 들은 ‘첫 사람’이라는 설레는 말의 뜻이었던 것 같다.
[첫사람프로젝트란 : http://fc.womenlink.or.kr/572]
두부는 회사에서 별명이 ‘조 파머’다.
신입회원의 날에도 두부는 텃밭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었다. 두부를 제일 좋아하기 때문에 별명을 두부로 했다는 것도 그렇고, 처음 봤을 때 왠지 유기농적인(?)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요즘 ‘월든’ 같은 삶을 꿈꿀 정도로 자급자족에 대한 욕구가 높아졌기 때문에 반가웠다. 두부는 식물이 주는 만족감에 대해 얘기했고, 전에 방문했던 ‘파릇한 젊은이’, ‘씨앗들 협동조합’ 같은 도시 농업 공동체들에서 봤던 인상 깊었던 장면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도시 야경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퇴근 후 오피스룩 차림으로 텃밭에 물을 주고 있는 모습. 우리는 언젠가 민우회 옥상을 점령하리라는(?) 포부를 나눠 보았다.
편견을 하나씩 던져버리는 사람
두부의 직업은 기자다. 직업적인 어려움이 있지는 않은지 물어봤더니 잘못 전달하거나, 시류에 휩쓸리거나 해서 좋지 않은 컨텐츠를 만들게 될까봐 늘 걱정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하는 말에 따르면 적당한 걱정이나 불편은 오히려 건강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기자로서도, 개인으로서도. 그는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희망을 페미니즘 공부에 비교해서 얘기했다. 페미니즘이 놀라운 건 공부를 할수록 자신이 갖고 있는 편견을 하나씩 버릴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아서, 일할 때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공부하듯 성장해 나가는 두부의 모습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두부는 얼마 전 검색창에 ‘생명의 근원’이라고 쓰려다가 그만 ‘생명의 근혜’라고 적었다고 했다. 직업병 증세를 보이며 옆 자리 사람에게 국정원 직원으로 의심 받은 바 있다는 두부의 건투를 빌어보자.
요즘의 관심사는 ‘사람’
두부는 요즘 좀 더 알고 싶고, 함께 있으면 즐거울 것 같은 그런 사람이 생긴 모양이었다. 두부는 자신의 연애 감정에 대해 인간적인 매력에 끌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낯설지만 편안한 낯섦. 그 사람으로 인해서 인생의 좋은 계기가 생길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인 모양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도 얘기해줬다. 두부는 대학 입학 이후로 사람을 깊게 사귀지 못하는 게 있었다고 했다. 두부가 어디서 들은 바에 따르면, 청소년기까지는 우리의 인간성이 완성되지 않아 모가 나 있는 모양이라 손바닥이 마주치듯 각과 면이 만날 수 있었는데, 어른이 되면서 점점 모가 난 부분이 깎이기 때문에 타인과 만나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고. 나이가 들수록 타인과의 접점이 미끄러지는 듯한 느낌, 뭔지 알 것 같았다. 두부는 그래서 의식적으로 각을 세우고, 더 솔직해지고 싶다고 말했다.
나에게 편안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
두부는 남들보다 ‘오글 지수’ (오그라드는 지수. (손발이) 오그라든다, 혹은 오글거린다는 느낌을 자주 받거나 그런 말을 많이 할수록 높다)가 높은 사람이라는데, 나는 오글 지수가 꽤 높은 질문을 던졌다. ‘자신의 아름다운 점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한참 뜸을 들인 두부는, 스스로를 꾸며내거나 억지로 아름다우려고 하지 않는 점이라고 대답했다. 이런 걸 가지고 우문현답이라고 하는 건가? 두부는 꾸미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이 별로 없는 편이라고 했다.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이란 참 쉬운 듯 쉽지 않은 건데, 처음 봤을 때부터 두부는 정말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두부는 어떤 외압이나 의무 같은 것들 때문에 ‘척’을 해야 할 때, 부자연스럽거나 자기 자신이지 못할 때 불행하게 느낀다고 했다. 솔직한 듯 숨기기를 잘하는 것도 비슷한 듯한 두부와 나는, ‘솔직해져야 한다’는 말에 다시 한 번 동감했다. 자연스럽고 나 자신일 수 있을 때, 진실하고 용감할 수 있으니까.
친구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두부를 처음 만난 건, 6월 신입회원의 날이었다. 어쩐 일인지 나는 그 날 처음 본 두부에게 힘들다고 신세 한탄도 하고 그랬는데, 두부는 마치 오랜 친구인 것처럼 편안하게 들어줬었다. 두부가 내게 한 얘기처럼, 다른 사람에게 나의 생각을 설득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관계는 정신 건강에 좋은 것.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돼서 자꾸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 되리라는 느낌을 받았던 걸까? 두부랑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다들 비슷하면서도 다르지만, 서로가 갖고 있는 면과 각이 잘 들어맞는 사람을 찾는 건 항상 기쁜 일이니까.
푸지게 한 판,
우리는 연극이나 영화에 관심이 많은 것도 비슷했다. 두부가 좋아하는 영화는 <두발로 걷는 말>이라는 이란 영화라고 한다.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게, 어쩌면 잘 비관하는 게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던 두부는 이 영화가 불편하지만 화면을 쓰다듬고 싶을 정도로 좋은 영화였다고 했다. 몇 년 전에 고향인 부산에서 두부는 ‘함께 가는 예술인’이라는 지역 잡지에서 <푸지게 한 판>이라는 코너를 만들어 지역 문화의 장들에 대한 기사를 썼었다. 두부는 무대와 관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마당극이 좋다고 했다. 배우와 관객이 함께 대나무 솟대를 휘두르면서 놀고, 막걸리도 나눠 마시는, 그런 열린 분위기가 좋단다. 전통극에 나오는 병신춤이라는, 자기 자신을 하나씩 버려가는 춤도 좋아한단다. 또 전통극에 나오는 핍박 받는 여성 캐릭터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성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곤 했다고. 그 중에서도 동래 탈춤에 나오는 할미탈의 모습을 보면,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기구한 삶을 사셨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한다. 할미탈이 죽는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했을 두부의 모습이 선했다. 나는 부산이라고 하면 찐한 맛이 있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가 있는데, 두부도 알고 보면 그런 사람일 것 같았다. 과연, 돼지 국밥을 국물까지 다 먹고 나면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 없는 그런 포만감으로 생을 마무리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두부.
그건 정말 기분 좋은 비유였다. 죽을 때가 됐는데 배가 고프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살다보면 한스러운 일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푸지게 한판’ 놀다가는 기분으로, 배부르게 살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s. 시간이 얼마 없어서 더 많은 얘기를 하지 못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기분이 참 좋았다.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니까. 잘 들어주는 것도 기술이라는데, 두부의 기술은 신중함, 사려 깊음, 그런 종류였던 것 같다. 평소에 자기 얘기를 잘 안하는 편이지만 이제 더 많이 해야겠다던 두부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기를 바라야겠다. 우린 행복에 대해 다시 정의해봐야겠다는 얘기를 했었다. 자기 자신 그대로를 알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 그런 것도 아마 행복의 일부가 아닐까? 또 그런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것.
p.s.2. 버벅거리다가 그만 사진을 못 찍었다. 양해를... 두부가 오글거리면서 보내준 사진을 감상하시기 바란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