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으로 민감해지기 [11기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을 마치고..]
11기성폭력상담교육생 어흥(별칭입니다^^)
성폭력상담교육을 받고서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성(性) 차이에 대한 문제들에 대해 좀 더 민감해졌다는 것이다. 민감해졌다는 건, 전에는 전혀 성차별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건이나 상황들이 매우 차별적임을 인식하게 되어서 마치 영화 ‘매트릭스’처럼 우리가 살던 세상을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고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성폭력전문상담교육을 받기로 결정한 건 상담원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여성관련 이론과 여성관련 사건들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고 싶어서 한 선택이었다. 성폭력상담 교육과정은 여성과 인권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가 남성중심의 시선으로 살아왔다고, 여자로서의 너는 어디 있느냐고 계속 질문을 던지는 듯 하였다.
여자로서의 나.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웠다. 「MBTI」검사는 나의 성향을 알아가는 동시에 남도 이해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특히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조별로 얘기하는 시간은 동질감도 느끼면서 마음이 편했고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 ‘저럴수도 있구나’ 하며 다른 사람을 좀더 이해할 수 있었던 거 같다.
MBTI로 나의 성격의 유형을 알아봤다면 성에 관련한 나의 의사결정능력은 어떨까? 내심 ‘나의 성적자기결정권은 매우 주체적이야’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이해」강의는 부끄러워하고 소극적인 나의 성의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끄러울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부끄러워하는 것.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그럴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알면 마음의 파장이 크다. 내가 가진 편견이나 선입관을 알아내고 벗어버리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우리가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들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움추러든다.
성폭력 상담원 교육일정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 서울고등법원으로 견학을 갔는데 성폭력전담법정에서 재판과정과 어떤 사건들이 진행되는가를 보았다. 강의실에서 얘기했던 가해자와 피해자는 막연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들을 보니 내 몸에 베어있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분위기와 상식(?)이 살아난다.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사실 외에 더해지는 눈으로 보고 분위기로 느끼는 정보들은 그대로 편견이나 선입관이 되어 판단의 기준이 되었고 너무 자연스럽게 진행된 그 과정에 놀란 나는 참 답답했다. 자기생각에 대한 계속적인 검열이 필요한 이 자리를 내가 선택해야 할까? 고민이다.
그래도 나는 자원상담활동을 전제로 한 보수교육을 또 선택해버렸다. 같이 교육받은 멋진 동기들이 있어서 선택했고 그들과 함께 하면서 더욱 성숙해지고 싶어서 그랬다. 보수교육은 64시간 종일로 했던 빡센 기본교육보다 훨씬 널널해서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더 풍부한 얘깃거리로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보수교육 기간 중에 선배자원상담원들의 11기 상담원 환영식이 있었는데 내가 가본 어느 신입환영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상적이지 않은 노력의 흔적이 무척 즐거웠고 정말 우리를 환영해주는구나 하는 마음이 하염없이 우러나는 자리였다. 기뻤다.
이제 교육일정이 모두 끝났고 스터디를 시작하는데 자꾸 기대되는 마음이 드는 건 내 몸과 마음이 민감해지기를 계속 원하는 게 아닐까? 너무 민감해져서 세상에 난무하는 온갖 이중적인 규범과 코드를 읽어내는 THE ONE 이 되면 어쩌지? (여기서 HTE ONE :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Neo를 the one(구원자)으로 칭함)
-> 위 글은 11기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에 참여한 어흥의 소감입니다. 앞으로도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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