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가산점제 부활을 반대한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2008년 2월 13일, 17대 국회의 마지막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조홍의원이 발의한 ‘병역법일부개정법률안’(이하 군가산점 부활안)을 표결 통과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1999년에 군가산점제 위헌신청에 대하여 ‘제대군인에 대하여 여러 가지 사회정책적 지원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사회 공동체의 다른 집단에게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할 균등한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이어서는 아니 되는데’, ‘가산점제도는 실질적으로 성별에 의한 차별’이라는 “군가산점제 위헌결정”을 내린 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 주성영의원의 ‘제대군인 지원법’을 통한 군가산제 부활 움직임에 이어 2007년 고조흥 의원이 병역법일부개정법률안을 통해 군가산제 부활을 꾀하며 국방위 표결을 추진하였다. 이에 민우회는 여성·장애 단체와 함께 2008년 2월 13일 공동 기자회견을 가져 국방위 표결 반대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결국 같은 날, 국방위 소속 11명의 의원 중 7인 의원의 찬성으로 단 1분만에 군가산점 부활안이 통과되었다. 이는 헌재위헌판결에 대한 불복이자, 역사를 후퇴시키는 처사에 다름 아니다.
이번에 통과된 ‘군가산점 부활안’은 “99년 공무원채용 시험 시 과목별 만점의 5%를 가산점으로 주던 것에서, 과목별 득점의 2%로 가산점을 줄이고, 가산점 부여로 합격한 사람의 인원을 채용인원의 20% 이내로 제한하여 위헌의 요소를 제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99년 헌재의 군가산점제 위헌판결에 대한 올바른 해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제대 군인에 대한 억지 지원을 여성·장애인 등에 대한 차별을 이용하면서 실행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기존 5%에서 3%로(2005년 주성영의원의 ‘제대군인 지원법’), 다시 2%(2007년 고조홍의원의 ‘병역법일부개정법률안’)로 숫자를 바꾸면 피해갈 수 있다는 얄팍한 논리도 문제지만, 더욱 문제는 여성·장애인·병역면제자와 대체복무자 등에 대한 차별을 통해 보상과 지원을 행하려 하는 것이다. 국방부나 정치권이 병역기피나 병역의무에 대한 거부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징집기준의 공정성확보, 군대내 폭력문화개선, 군대내 복지문제, 급여의 현실화, 연금세제 등 예산이 소요되는 보상책 마련 등 전반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함에도 전혀 실질적인 방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이고 실제적인 대책보다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극소수에 대해 ‘가산점’, 즉 ‘예산도 안 들이고 코 푸는’ 식으로, 그 피해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장애인’이 고스란히 받게 하면서 문제를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은 100점 만점의 공무원 시험에 100.5점을 받아야만 합격이 됐던 지난시절이 다시 되풀이 될 위기에 처해있다. 아직도 여전히 전체 여성 임금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무려 67.6%에 달하며, 여성의 임금은 남성임금의 66.2%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여성의 노동권 현실은 열악하다.(노동부 임금구조실태분석/2005년 기준) 이번 군가산점제 표결통과가 결국 여성·장애인 노동권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은 이제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제 공은 국회 법사위로 넘어갔다. 국회 본회의 표결을 가기전에 법사위에서 부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헌재의 위헌판결을 불목하면서까지 여성·장애인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법안을 지지할 국회의원이 더 있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관련글보기1>(클릭)시민사회신문 제 14호 <누구를 위한 군 가산제 도입인가>
<관련글보기2>(클릭) 함께가는 여성 7*8월 호 [쟁점과 현안] <상상력이 필요할 때>
누구를 위한 군가산제 도입인가
박봉정숙 (한국여성민우회 사무처장)
최근 군가산점제 부활여부를 놓고 논쟁이 뜨겁다. 군가산점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9년 헌법재판소는 제대군인에게 공무원 채용 시 가산점을 부여하는 군가산점제가 평등권, 공무담임권,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동시에 헌법재판소는 정부에게 다른 방식의 합리적 보상책을 강구하라는 제언도 하였다. 여성단체는 평화·장애인·시민단체들과 함께 양심적 병역거부, 군대민주화, 징집제에 대한 검토를 포함한 군대개혁방안 논의를 통해 근본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치권의 진지한 자세는 찾아볼 수 없었고 이후 군대 내 총기사건, 성폭력 및 폭력사건 등이 터지면서 군대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거부감은 커져갔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군가산점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남성들은 군 복무 중 취업준비를 할 수 없어 취업 시 여성보다 불리하며 이 때문에 국가를 위해 희생한 젊은 남성들의 사기가 꺾이고 결과적으로 남성들의 병역기피가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군가산점제로 보상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면 타당한 말이다. 남성들이 군대를 기피하는 것은 사실이고 피해갈 능력이 없거나 재수가 없으면 가게 되는 곳이 군대이니 ‘신성한 국방의 의무’나 ‘자랑스러운 남성의 표상’과 같은 수사는 자신들의 군대 경험을 무가치한 것으로 환원시키기에는 너무나 억울할 때 술자리를 통해 과잉 포장되어 발현될 뿐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군가산점제를 도입하면 한나라당의 우려는 조금이나마 변화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병역기피현상이 사라질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떠나보내는 양 눈물과 이별의 퍼포먼스가 집단적으로 펼쳐지던 논산훈련소 앞의 광경은 볼 수 없게 될까. 청년실업(이 때의 ‘청년’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은 논외로 하자)이 해소될 수 있을까. 1999년 위헌판결 이전의 군대는 군가산점제 덕분에 그나마 갈 만한 곳이었던가?
병역기피현상은 가산점이 주어지지 않아서 생기는 것도 남성만이 군대를 가야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니다. 군대 안에서 발생하는 의문사, 성폭력, 폭력 등 군대의 폭력성, 비민주적 위계구조, 군대복무기간, 군대징집기준, 군대의 역할 등 이 사회에서 징집제가 가지는 의미성과 타당성에 대한 의문이 군대에 징집당하는 중산층 이하의 남성들이 가지는 저항감의 실체이다. 남성들 안에서도 이미 ‘국방의 의무’는 평등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20대의 ‘꽃다운 청춘’을 칙칙하고 무서운 군대에서 2년이나 ‘썩어야’ 하는 서민층 남성들의 정당한 항변을 정부와 정치권은 애써 외면하며 군가산점제로 무마하려 하고 있다. 문제는 군가산점제 도입 여부 논란으로 인해 군대에 대한 남성들의 이유 있는 저항이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근거 없는 화살로 돌아온다는 데 있다. 1999년에도 2007년에도 군가산점제 관련 뉴스에 대한 리플은 처음부터 끝까지 “억울하면 여자도 군대가라”로 일관된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여기에 언론은 남녀대결구도를 만들며 선정적 이슈를 만들기에 바쁘다. 이처럼 군가산점제 논란은 현재의 군대와 징병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왜곡하고 무마시켜 버린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또한 군가산점제 도입 논란은 노동시장 내 성별격차를 보이지 않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여성들의 평균임금이 남성의 60%에 지나지 않고, 여성노동자 중 비정규직의 비율이 70%에 달하며, 대기업의 임원 중 여성비율이 10%는커녕 5%도 되지 않으며, 남성들이 원서 1번 내서 채용될 때 여성은 4번 이상 내야 취업한다는 현실은 이제 그냥 너무 식상한 이야기인가? ‘알파걸’들의 비상은 기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을 속여서는 안 된다.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여성들이 약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공정한 경쟁시장이기에 그곳에 보다 많은 여성들이 집중한다는 사실 또한 함께 보아야 한다.
국민의 약 80%가 군가산점제의 부활을 찬성한다고 입법제안자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국민’들은 제대군인의 10%도 안 되는 공무원 시험 응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군가산점제를 찬성하는 것인가, 아니면 불합리한 현 징집제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인가.
* 이 글은 <시민사회신문> 2007년 8월 6일자 제 14호에 기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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