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보건법 개정(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 후기
모자보건법 제14조 개정(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
여성의 인공임신중절은 형법상 불법이고, 모자보건법 제 14조에 규정된 사항에 대해서만 허용된다.
모자보건법 제14조에 의하면, ① 본인 또는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② 본인 또는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③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이 된 경우 ④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인공임신중절이 허용되고 있다.
연간 시술건수 추정치는 약 34만 건, 이중 약 4.4%만이 현행법상 합법적 시술.
한국 사회에서 인공임신중절을 둘러싼 표면적인 현실이다. 통계가 보여주듯이 여성의 인공임신중절과 관련한 규정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모자보건법에 대한 개정작업이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지난 13일 법 개정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가 개최되었다.
모자보건법 14조 개정(안)에 대한 발제는 현행 조항의 문제점을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① 1호와 2호에 규정된 우생학적 적응 사유를 판단하기 어렵고, 각종 장애를 산전검사로 모두 밝힐 수 없을 뿐 아니라 부모가 정신적 질환이 있는 경우 낙태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 ② 3호와 4호에서 성범죄로 인한 임신이 강간과 준강간으로만 제한하고 있는 등 윤리적 적응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 ③ 사회적 적응 사유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불충분하다는 점, ④ 현행 모자보건법 상에 규정된 낙태의 허용기간인 28주에 관한 논란 등이 지적되었다.
이에 따라 제안된 개정안은 ① 인공임신중절 사유 중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사유와 전염성 질환을 삭제하는 것, ② 사회적 적응 사유로 인한 허용을 포함시키는 것, ③ 인공임신중절 허용주수를 24주로 축소하는 것, ④ 배우자 동의 규정을 삭제하는 것, ⑤ 인공임신중절을 하고자 하는 경우 상담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것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중 가장 쟁점이 되었던 것은 인공임신중절 허용 사유로 사회적 적응사유를 포함시킬 것인지의 문제였다.
토론에서는 태아의 생명보호를 내세우며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낙태반대운동연합과 종교계의 입장, 그리고 인공임신중절의 주체가 되는 여성들의 현실과 삶을 고려하여 사회적 적응사유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민우회, 산부인과 의사, 이인영 교수(홍익대 법대)의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
‘사회적 적응 사유’를 도입하는 것은 낙태 자유화로 이어질 것이므로 생명존중의 차원에서 허용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민우회 토론자로 나선 유경희 대표는 태아 생명권과 여성 선택권의 이분법적인 인식과 논쟁이 아니라 생명존중과 이를 경험하는 여성의 삶과 사회관계적 맥락에 대한 포괄적인 고려 속에서 현실적인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여성들은 이중적인 성문화, 제대로 된 성교육의 부재, 의학적인 무지, 사회적 지원책의 미비, 경제력의 미비, 부모 됨의 준비 부족 등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 속이 인공임신중절을 결정하게 된다. 즉 인공임신중절은 단순히 무분별한 성행동의 결과나 생명경시로 인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태아와 여성의 삶 전반에 대한 고려, 어쩔수 없는 사회적인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인공임신중절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지 않는 사회적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여성들이 성관계에서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성교육이 필요하며, 정상가족 중심의 사회 인식을 벗어나 혼인여부와 무관하게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과 지원책의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안하였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임신, 출산, 양육의 주체가 되는 여성들의 재생산권리의 측면에서 인공임신중절이 논의되어야 하며, 이에 따라 사회적 적응사유로 인한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인영 교수는 태아의 생명권과 임부의 자기결정권 법익간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제기하였다. ‘낙태의 선택’이 가족계획이라는 보건정책이나 복지정책과 맞물려 있으면서, 성문화, 경제적 상황 등의 사회구조적인 요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아이의 출산 혹은 양육이 임부와 가정 및 그 밖의 상황을 고려하여 임부에게 중대한 부담이 되는 경우에 낙태행위자에 대한 규제 일변도의 논리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낙태를 이념의 문제로만 접근하지 말고 사회복지수준과 여성의 현실을 고려한 하나의 대안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하였다. 특히 낙태를 법적으로 넓게 허용하지만 실제 낙태율은 낮게 나타나는 다른 국가의 사례들에서 낮은 낙태율은 낙태규정이 관대하냐의 여부가 아니라 피임, 낙태상담 그리고 임부에 대한 부조가 잘 되어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이야기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주었다.
‘낙태’를 둘러싼 여성들의 현실은 상당히 복잡하다. 이는 ‘낙태’를 결정하고 실천하는 한 순간의 문제가 아니라 성관계, 임신, 출산, 양육의 전 과정과 관련된 것이다. 그 속에는 개인의 삶만이 아니라 가족의 이해, 사회적 조건, 양육과 아이의 미래에 대한 예측이 함께 포괄되어 있다. 따라서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은 여성들이 건강상의 위협과 평생에 걸친 고통을 감수하면서 ‘낙태’를 결정하게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낙태’ 문제가 공론화되었던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를 담보하지도 해결하지도 못하는 모자보건법의 개정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다른 입장들의 경합과 합의 과정 속에 무엇보다 ‘낙태’의 주체가 되는 여성들의 경험과 목소리가 중요하게 반영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원치 않은 임신’을 감소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법 안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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