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첫사람 함께 하실래요?"
한국여성민우회 개소 20주년 기념 발표회
"언제나 첫사람이 있었다" 후기
"첫사람 함께 하실래요?"
지난 목요일,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언제나 첫사람이 있었다” 발표회가 열렸다. ‘성폭력 피해에 공감하는 첫사람’ 활동에 참여했던 나에게는 그동안의 시간을 갈무리하는 자리이기도 했기에 기대감과 아쉬움이 섞인 채 발걸음을 옮겼다. 활동 사진 전시 외에 본 행사는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되었다. 활동스케치 영상 상영, 첫사람들의 말하기, 그리고 이와 관련한 토크쇼.
↑ 한 눈으로 보는 2015 첫사람
↑ 첫사람 명단
↑ 재판동행 후기
활동스케치 영상을 통해서는 새록새록 지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처음 교육과정에 참석했던 3월 어느 날의 사진을 봤다. 곳곳에서 성폭력을 마주하면서 남성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 끝에 첫사람에 지원했던 당시의 나를 볼 수 있었다. 재판 모니터링의 사진을 볼 때는 처음으로 방청하는 재판보다도 이후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기다려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쉬이 이해하기 힘든 재판정에서의 풍경에 함께 투덜대기도 했고, 판사의 말 한마디에 묻어나오는 피해자에 대한 배려심에 반가워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함께 이야기 나누며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지점들을 배울 수 있었던, 다른 첫사람들의 존재에 감사했다.
↑ 3월 첫사람의 첫 동행
↑ 첫사람 토크쇼
첫사람 토크를 통해서는 첫사람 활동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첫사람은 기본적으로 성폭력 관련 재판에서 피해생존자 및 그 가족들의 곁에 선다. 그렇게 공감하고, 이들을 지지한다.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첫사람이 피해생존자에게 심리적 안정을 줄 수 있음을 체감했다.
정작 활동을 하면서는 잘 몰랐던 첫사람의 의미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제도상의 공백을 메우고, 사법감시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비공개 재판 요청, 가해자 퇴정 요구, 화상증언실에서 진술, 증인지원실 이용 등 성폭력 관련 재판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절차적·제도적 지원은 현재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이를 잘 알지 못하거나 시행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보호가 이뤄지지 않곤 한다. 첫사람은 재판 모니터링을 통해 이러한 괴리를 메우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또한, 성폭력재판 과정에서의 문제점들을 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시민의 사법참여로서 의미도 있다고 한다. 법이 기존에 작동하는 방식과 틀은 ‘다른’ 목소리와 시선들을 놓치는 위험을 지니는데, 때문에 역설적으로 시민들의 코멘트와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참여했던 첫사람 활동이 이렇게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들에 놀라우면서도 반가웠다.
모든 프로그램이 흥미로웠지만, 아무래도 첫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고, 또 감동적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여 첫사람 활동에 참여한 해월은 피해자를 대리하는 국선변호인이 출석했는지를 꼭 확인하던 판사, 첫사람의 존재에 긴장하여 말을 더듬던 피고 측 변호인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법정 내 다양한 풍경들을 생생히 증언해주었다. 법학을 공부하는 미미는 처음에는 재판의 공정성이나 절차에 따른 객관적 판결을 생각했으나, 이후 중립성과 객관성이라는 것이 허구임을 느끼고 피해생존자의 편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들려주었다. 혜진은 첫사람 활동에서 나아가, 대학의 여성학 전공이 급작스레 폐지되자 이를 되살리기 위해 혼자서 서명 운동을 벌였고, 이후 여성주의 동아리를 만들어 새로운 첫사람이 되었다. 한때 재판동행 활동의 도움을 받았던 무지개는 지금은 첫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나는 이 이야기들을 들으며 어떠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두가 하나의 주체로 발돋움하는 과정을 겪으며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랬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텍스트로 사건을 접하는 게 아니라 직접 당사자의 얼굴을 마주하며 그 곁에 서고 싶어 첫사람에 지원했다. 지원서에는 마음은 앞서지만, 피해생존자가 남성인 나를 반기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된다는 말을 두서없이 적었다. 첫사람 활동에서 만난 사람들이 반겨주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통념으로 성폭력 피해자를 구성했음을 알 수 있었고, 이후 보다 적극적이 될 수 있었다.
결국, 첫사람의 의미는 피해자 지원, 재판 동행을 넘어 첫사람이 ‘되는’ 것에 있지 않을까? 첫사람을 통해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건 우리 자신이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들에게 이 좋은 기회를 권하지 않을 수 없다. 첫사람, 함께 하실래요?
/ 첫사람 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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