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여성을 위한 생애주기별 경력유지 지원방안’, 매우 유감
[의견서] ‘일하는 여성을 위한 생애주기별 경력유지 지원방안’, 매우 유감
오늘(4일) 오전11시, 6개 부처 합동는 ‘일하는 여성을 위한 생애주기별 경력유지 지원방안(이하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로 경력단절이 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신년구상을 밝힌 뒤 나온 조치다. 그러나 이는 여성노동계(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등)가 지난 1년간 정부가 발표한 여성노동정책의 문제로 지적되어 온 현실과 정책 간의 괴리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가 여전히 여성노동현실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또한, 지원방안은 우리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성별분업을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며, 현행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해야 할 방안이 없기에 성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며, 지난 6월에 발표한 고용률 70% 로드맵에 이어 제대로 된 여성노동정책을 제시하지 못했기에 매우 유감스럽다. 또한 이 많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예산확보 방안과 실제 집행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아서 또 한번 여성들을 위한다며 정부의 ‘생색내기’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경력단절의 주요한 원인은 불안정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생활을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일생활양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경력단절 해소를 위한 대책으로 고용유연성 확대를 제시한 것은 경력단절 원인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경력단절 해소는 고용의 유연성 확대가 아니라 ‘고용의 안정성’에서 찾아야 한다.
현재 여성 일자리 대부분은 저임금이며, 영세업체에 집중되어 있고, 비정규직이며,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제도의 사각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와 반대되는 정규직, 적정임금, 사회보험제도 가입사업장으로 이동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사회구조적으로 구성된 노동시장을 마치 개인의 능력 때문에 이동이 어려운 것으로 간주하고, 여성만의 일생활 양립을 위해 비정규직, 저임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확산하는 것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다.
이번 지원방안의 내용을 살펴본 결과,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기존 정책을 재탕하거나 일부 수정하면서 일순간 여성고용률을 높일 수 있을지라도, 결국 여성노동권의 실질적인 확보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경력단절의 실태 중 하나로 여성의 비정규직 문제를 언급했지만, 이러한 실태를 인지하면서도 대책으로 낸 것은 고용조건의 유연화 정책이다. 여성의 경력단절 원인으로 제기되는 임신출산양육은 계기로 작동하고 있을 뿐, 실제적으로는 파견, 하청, 계약직 등 비정규직과 직장 내 성차별 등의 노동환경으로 인해 경력단절이 발생하고 있음이 주요한 실태이다. 이에 이번 지원방안은 결국 여성의 불안정한 고용형태를 확산하여 여성의 경력단절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정책이 될 뿐이다.
여성의 일자리가 정규직으로 안정적이고, 고용보험 가입자로서 출산전후휴가에 이어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며, 남성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사업장에서도 이를 적극 지지하는 분위기라면, 취업부모가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을 집 주변에서 이용할 수 있다면, 과연 아이돌봄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여성만의 ‘선택’이 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또한, 정부가 경력단절의 원인으로 제시한 ‘유연한 근무환경 미흡’은 현실과 전혀 동떨어져 있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여성의 경력단절은 저임금과 불안정한 비정규직 일자리에서 출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하기도 어렵고, 제도 이용 후 복귀하는 것이 어려우며, 아이를 양육할 수 없는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기인한다. 정부의 무분별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 정책은 이러한 환경을 개선시킬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정부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정책으로 인해 멀쩡한 8시간 일자리가 시간제로 전환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여성들은 저임금이며 4대 보험 적용률도 매우 낮은 가장 열악한 일자리인 시간제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고민해야할 것은 고용의 유연성 확대가 아니라, 여성들에게 적정한 임금과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가임기 여성 중 비정규직의 53.7%, 시간제일자리 중 19.7% 만 고용보험에 가입한 상황에서 출산전후휴가, 육아휴직 사용 확대는 정책적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고용지원금, 대체인력지원금 등 사업주에 대한 지원만 확대할 것이 아니라 출산휴가급여인상, 육아휴직 소득대체율인상 등 여성노동자에 대한 직접지원 및 고용보험 가입대상을 확대하는 방안부터 마련해야 한다.
여성만의 일생활양립이 아닌, 남성의 돌봄참여와 적극적인 사회적 지원을 통해 부모와 사회가 모두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를 지향해야 여성의 ‘경력단절’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저출산·고령사회가 우리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제기될 때 마다 제시되는 여성만의 일가정양립정책. 이에 대해 여성노동계는 지난 10여년 동안 일관되게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의 돌봄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하고, 이를 지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이를 위한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는 취업부모가 일과 아이돌봄을 함께 하고 우리사회가 이를 지지하는 제도와 인식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은 경력단절 없이 지속적으로 일을 하고, 남성은 일만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돌봄을 할 수 있는 사회, 이를 제도적으로 지지하는 사회가 바로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이다.
그러나, 두 번째 육아휴직의 첫 1개월 육아휴직 급여를 통상임금 100%로 상향조정하는 등의 정책만으로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적 의지를 확인하기 어렵다. 결국 여성과 남성의 임금격차를 감안하여, 여성은 통상임금 40%인 육아휴직을, 남성은 첫 1개월은 통상임금 100%의 육아휴직을 사용하게 될 것으로 예상될 뿐이다. 이는 대선 당시 공약으로 제시한 ‘아빠의 달’ 도입이 예산 등의 이유로 관련 법 개정이 지연되자, 공약 실천차원에서 재구성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또한, 부모의 수요에 맞는 맟춤형 보육서비스 제공 및 품질 향상을 위해 시간제 보육반 도입, 어린이집 평가인증 강화를 위해 평가인증제 의무화는 세부 정책이 없기 때문에 더욱 우려스럽다. 시간제 보육반은 현행 어린이집 운영체계의 변화방향과 보육교사의 노동안정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할 경우, 오히려 어린이집 운영자와 부모의 혼란만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평가인증제 의무화를 통해 ‘장기적인 재정지원 연계’까지는 민간어린이집의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오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으므로 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 우리는 보육재정 확대를 통해 어린이집에 대한 재정지원 비율은 높아졌지만, 관리감독의 부재 등으로 인해 실질적인 보육서비스 품질 개선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평가인증제를 통과했더라도 아동학대, 운영비리 사례를 자주 접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차라리 평가인증제 점수가 낮을 경우에는 어린이집 운영을 정지시키는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
오늘 발표한 지원방안은 여성의 각 생애주기에 걸맞게 정책내용을 구성하고자 했으나, 근본적인 해결방안 및 통합적인 문제해결방안으로 매우 부족하기에 유감스럽다.
2014. 2. 4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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