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다이어리_우연히 불어 온 운전 바람은 태풍이 되고

우연히 불어 온 
운전 바람은 
태풍이 되고


리오/여는 민우회 성평등복지팀

캐풍이(차의 애칭)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맛따라 멋따라 페미따라’ 지도를 만들어낼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지난 추석 연휴 때 나는  운전 연수를 받았다. 같이 신청하면 수강 비용이 할인된다는 동료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된 우연이었다. 운전, 언젠가는 해야지? 하는 생각만 20년째 (장롱면허와 함께) 간직하다가 드디어 도전! 연수는 3일간 이루어졌다. 첫 날은 ‘아, 이거 도저히 못 하겠다’, 둘째 날은 ‘어떡하지?’ 그리고 셋째 날은 ‘음… 그래도 해 볼만 하겠는데?’ 하는 심경의 변화를 겪었고. 넷째 날은 혼자 덜덜 떨며 연습운전에 나섰다. 그게 시작이었다. 나의 운전 바람(?)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운전 체질이었다.  한 달간 6,000km를 달렸다. 부산-서울을 왕복으로 5번 다녀오고도 남는 거리다. 아니 이렇게 신나고 재밌는 것을 왜 이제야 하게 된 거야? 게다가 남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니 너무 배가 아프네. 명절마다 음식 안 만들고 방에 들어가서 ‘주무시는’ 가부장들이 생각났다. 운전을 주로 남자가 하니까 그렇게 힘들다고 생색내왔던 건 아닌지?

 


🚜 운전놀이 하던 7살 아이 


운전을 하다 문득 떠올랐다. 어렸을 때 운전이 하고 싶어서 혼자 집에서 운전놀이를 했었다는 것을. 그것은 일종의 발명(?)이었다. 다 마신 우유팩의 아랫단을 접으면 밟아도 다시 복원되는 탄성이 생기는데, 그걸로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대신하였다. 수동기어도 필요했다. (당시에는 오토기어가 흔치 않았다) 두루마리 휴지 안에 ‘효자손’을 꽂으면 적당히 움직이면서도 넘어지지 않는 훌륭한 5단 기어가 되었다. 온갖 궁리 끝에 운전 놀이를 만들어낸 아이가 시간이 흘러서 진짜로 운전러가 되다니. 나는 될성부른 운전 나무의 떡잎이었던 것이다!



🙋 운전은 사람이 한다 


좀 생뚱맞을 수 있는데 나는 운전하면서 타인에 대한 신뢰감, 인류애를 쌓아가고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운전을 하지 않았을 때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저기 마주보는 차가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오면 어떡하지? 횡단보도 빨간불에 행인이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이 계속 들었는데 그러면 단 10미터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우선은 믿어야 한다. 내가 도로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교통수칙을 지킬 것이고, 상식이 통할 것이라고. 물론 간혹 난폭운전을 하는 차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서로를 배려해주고 있었다. 아직은 살 만한 사회라는 것을 도로 위에서 다시 느꼈다고 하면 과언일까? (처음 느낀 것은 페미니즘을 만났을 때!)



🌏 맛따라 멋따라 지평이 넓어지다


여행과 맛집, 최적의 동선짜기에 관심이 많은 나는 ‘맛따라 멋따라’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동안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라 대도시 중심으로 여행을 다녔는데 이젠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다. 운전에 빠진 한 달 간 강원도 설악산, 동해 바다, 전북 군산, 경남 양산, 경기도 포천, 가평 등등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자동차를 타고 가며 만나는 설악산 울산바위가 이렇게나 웅대한지, 고갯길마다 산자락에 든 단풍이 그렇게나 아름다운지 몰랐다. 밤 운전, 새벽 운전, 닥치는 대로 경험하고 있다. 언제 어디든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다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참 감사하다. (본의 아니게 절주도 하게 되었다 ^^) 부산여행을 늘 주변에 홍보하고 다니는데, 조만간 여행루트짜기 전국판이 나올 것 같다. (덧붙여서) 초보운전 한 달차 이지만 벌써 상상해본다. 머지 않아 그 어렵다는 대형면허 따기에 도전하는 순간을! 언젠가 트럭이나 버스를 몰 수 있는 여자가 되고 싶다.


사진 설명: 강원도 고성 아야진 해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