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위에 지어진 집, 2024년도 대한민국 정부의 성평등 예산
바람/성폭력상담소 훌라댄스 수업을 등록했다. 시작도 안 했는데 뽐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뭘까?
윤석열 대통령은 ‘여성가족부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제시하며 당선되었고, 당선 직후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했다. 집권 2년 차, 효율성을 운운하며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 120억을 감축했다. 여성 노동자의 마지막 보루였던 고용평등상담실 예산도 12억에서 5억으로 삭감했다. 기존에 고용평등상담실에서 제공하던 상담업무를 8개 고용지청에서 각 1명의 상담사를 고용하여 자체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로 인해 전국의 19개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모두 폐소될 위기에 처해있다. 고용노동부는 고용평등 상담 업무의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 8명의 상담사로 기존의 상담을 대체할 수 있을 거라는 안일한 노동 인식을 드러내 우려를 더하고 있다. 곳곳에서 예산이 삭감되는 요즘, 한국여성민우회는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며, 시민의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초 사회적 약자 지원 정책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2024년 예산을 공개할 때도 강조한 것은 사회적 약자·취약 계층 보호였다. 여성가족부 역시 정부 기조에 맞춰 ‘약자복지·저출산 대응에 집중 투자하는 예산’이라고 보도하였다. 하지만 국가가 말하는 ‘약자복지’에 여성폭력 피해자의 자리는 없었다. 여성폭력 방지 및 폭력 피해자 지원 관련 예산 120억이 삭감된 것이다.
🚫 유사·중복을 이유로 사라지는 여성폭력 방지 예산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이후 마련되었던 장애 청소년 성인권 교육 사업이 폐지되고, 디지털 성폭력 방지 예산 역시 전액 삭감되었다. 폭력피해 예방을 위한 인식개선 및 홍보 예산도 마찬가지다. 여성가족부는 “유사·중복성이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기존의 교육 콘텐츠를 활용하면 되기 때문에”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성인권 교육에서 소외**되는 장애아동·청소년이 여전히 있고,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반복되는 가정폭력·성폭력·성희롱·성매매 예방 교육은 시민의 삶에 가닿지 않는다. 여성폭력 방지 예산 삭감은 여성가족부의 현실 인식 부재를 말해준다.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광주의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인화학교의 설립자 및 학교 관련자들이 2000년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벌인 성폭력사건을 말한다. 2011년 아동·장애인 성폭력범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일명 도가니법)' 개정이 이뤄졌다. 성인권 교육에서 소외**: 2022년 장애아동·청소년 성인권교육사업 사전·사후 의식변화 및 만족도 조사 결과보고서(2023.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장애아동・청소년 성인권 교육 참여 경험이 없는 경우가 27.4%로 여전히 교육에 소외되는 장애학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남
⚡ 실적과 효율을 이유로 삭감되는 피해자 지원 예산, 모래성 위의 통합상담소
가장 큰 폭으로 삭감된 것은 가정폭력상담소 운영 예산으로, 31억9천7백만 원이 삭감되었다. 여성가족부는 ‘가정폭력 신고 건수 감소’를 원인으로 들었다. 그리고 삭감한 예산을 바탕으로 스토킹, 디지털 성폭력, 교제폭력 등 신종 범죄를 통합 지원하는 통합상담소를 만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은 허울일 뿐이다. 통합상담소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재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예산안을 살펴보면, ‘가정폭력·스토킹 방지 및 피해자 지원’으로 세목만 바꿨을 뿐 실제 통합상담소를 운영하기 위해 증액된 예산은 없다. 통합상담소도 전국 25개만을 증설하는 등 아주 소폭의 변화만 있을 뿐이다. 통합상담소 증설을 위해 가정폭력상담소 인력도 스스럼없이 줄인다. 성폭력 피해 경험을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 경험을 말하기 위해 찾은 상담소에서도 그곳이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곳인지 끊임없이 살핀다. 상담소가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 변호사를 연계하고, 재판 동행 등 법률지원을 하고, 병원 연계·상담 치료와 같은 의료적 지원을 하고, 피해자가 안전할 수 있도록 쉼터에 연계하는 과정에서 신뢰가 만들어진다. 신뢰는 시간과 공간, 사람을 필요로 한다.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한다는 것은 모든 과정에 마음을 써야 하고 섬세하고 끈질기게 품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피해자를 지원하는 기관과 사람은 언제나 부족하다. 소수의 통합상담소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가족부는 “해당 상담소의 실적이 낮다, 이용자가 줄고 있다, 효율성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 지원 예산을 손쉽게 삭제하겠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실적’으로만 판단하는 국가 지원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또한, 여성가족부는 통합상담소 전환을 명목으로 디지털 성범죄 지역 특화 상담소 운영 중단을 명령하고, 통합상담소로 해당 업무를 이전할 것을 통보하였다. 전국 14개 디지털 성범죄 지역 특화 상담소는 지난 3년간 디지털 성폭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파악하고, 피해자에게 어떤 조력이 필요한지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해왔는데 여성가족부는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이처럼 실질적 예산 확충도 하지 않고, 통합상담소가 왜 필요한지 정책 검토도 하지 않고, 피해자 지원 현장 단체들과의 소통도 없이 ‘여성폭력피해 통합상담소(가)’전환을 발표한 것이다. 모래 위에 지어진 집 같은 “통합상담소”에선 제대로 된 지원이 불가능하다.
🔥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예산을 들여다보고 바꿔나갈 것이다
아직 예산은 통과되지 않았다. 11월과 12월, 국회는 정부 예산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의결한다. 아직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민우회는 연대 단체들과 함께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 감축을 막기 위한 1만인 시민 선언’의 흐름을 만들고, 10월 30일 국회 앞에서 500여 명의 시민과 함께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지원 예산 삭감 폐기”를 요구하였다. 국가는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시민이 안전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고, 폭력 피해자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은 그동안 수많은 여성폭력 피해자들의 싸움과 함께 연대한 이들의 목소리로 다져진 제도와 정책의 결괏값이다. 우리는 정부 정책에서 여성을 지우려는 시도에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아직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싸우고 지켜나갈 것이다. 더이상 여성 인권이 퇴행하지 않도록 정책 방향과 예산안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꿔나갈 것이다. |
모래 위에 지어진 집,
2024년도 대한민국 정부의 성평등 예산
바람/성폭력상담소
훌라댄스 수업을 등록했다. 시작도 안 했는데 뽐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뭘까?
윤석열 대통령은 ‘여성가족부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제시하며 당선되었고, 당선 직후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했다. 집권 2년 차, 효율성을 운운하며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 120억을 감축했다. 여성 노동자의 마지막 보루였던 고용평등상담실 예산도 12억에서 5억으로 삭감했다. 기존에 고용평등상담실에서 제공하던 상담업무를 8개 고용지청에서 각 1명의 상담사를 고용하여 자체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로 인해 전국의 19개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모두 폐소될 위기에 처해있다. 고용노동부는 고용평등 상담 업무의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 8명의 상담사로 기존의 상담을 대체할 수 있을 거라는 안일한 노동 인식을 드러내 우려를 더하고 있다. 곳곳에서 예산이 삭감되는 요즘, 한국여성민우회는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며, 시민의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초 사회적 약자 지원 정책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2024년 예산을 공개할 때도 강조한 것은 사회적 약자·취약 계층 보호였다. 여성가족부 역시 정부 기조에 맞춰 ‘약자복지·저출산 대응에 집중 투자하는 예산’이라고 보도하였다. 하지만 국가가 말하는 ‘약자복지’에 여성폭력 피해자의 자리는 없었다. 여성폭력 방지 및 폭력 피해자 지원 관련 예산 120억이 삭감된 것이다.
🚫 유사·중복을 이유로 사라지는 여성폭력 방지 예산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이후 마련되었던 장애 청소년 성인권 교육 사업이 폐지되고, 디지털 성폭력 방지 예산 역시 전액 삭감되었다. 폭력피해 예방을 위한 인식개선 및 홍보 예산도 마찬가지다. 여성가족부는 “유사·중복성이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기존의 교육 콘텐츠를 활용하면 되기 때문에”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성인권 교육에서 소외**되는 장애아동·청소년이 여전히 있고,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반복되는 가정폭력·성폭력·성희롱·성매매 예방 교육은 시민의 삶에 가닿지 않는다. 여성폭력 방지 예산 삭감은 여성가족부의 현실 인식 부재를 말해준다.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광주의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인화학교의 설립자 및 학교 관련자들이 2000년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벌인 성폭력사건을 말한다. 2011년 아동·장애인 성폭력범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일명 도가니법)' 개정이 이뤄졌다.
성인권 교육에서 소외**: 2022년 장애아동·청소년 성인권교육사업 사전·사후 의식변화 및 만족도 조사 결과보고서(2023.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장애아동・청소년 성인권 교육 참여 경험이 없는 경우가 27.4%로 여전히 교육에 소외되는 장애학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남
⚡ 실적과 효율을 이유로 삭감되는 피해자 지원 예산, 모래성 위의 통합상담소
가장 큰 폭으로 삭감된 것은 가정폭력상담소 운영 예산으로, 31억9천7백만 원이 삭감되었다. 여성가족부는 ‘가정폭력 신고 건수 감소’를 원인으로 들었다. 그리고 삭감한 예산을 바탕으로 스토킹, 디지털 성폭력, 교제폭력 등 신종 범죄를 통합 지원하는 통합상담소를 만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은 허울일 뿐이다. 통합상담소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재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예산안을 살펴보면, ‘가정폭력·스토킹 방지 및 피해자 지원’으로 세목만 바꿨을 뿐 실제 통합상담소를 운영하기 위해 증액된 예산은 없다. 통합상담소도 전국 25개만을 증설하는 등 아주 소폭의 변화만 있을 뿐이다. 통합상담소 증설을 위해 가정폭력상담소 인력도 스스럼없이 줄인다.
성폭력 피해 경험을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 경험을 말하기 위해 찾은 상담소에서도 그곳이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곳인지 끊임없이 살핀다. 상담소가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 변호사를 연계하고, 재판 동행 등 법률지원을 하고, 병원 연계·상담 치료와 같은 의료적 지원을 하고, 피해자가 안전할 수 있도록 쉼터에 연계하는 과정에서 신뢰가 만들어진다. 신뢰는 시간과 공간, 사람을 필요로 한다.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한다는 것은 모든 과정에 마음을 써야 하고 섬세하고 끈질기게 품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피해자를 지원하는 기관과 사람은 언제나 부족하다. 소수의 통합상담소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가족부는 “해당 상담소의 실적이 낮다, 이용자가 줄고 있다, 효율성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 지원 예산을 손쉽게 삭제하겠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실적’으로만 판단하는 국가 지원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또한, 여성가족부는 통합상담소 전환을 명목으로 디지털 성범죄 지역 특화 상담소 운영 중단을 명령하고, 통합상담소로 해당 업무를 이전할 것을 통보하였다. 전국 14개 디지털 성범죄 지역 특화 상담소는 지난 3년간 디지털 성폭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파악하고, 피해자에게 어떤 조력이 필요한지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해왔는데 여성가족부는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이처럼 실질적 예산 확충도 하지 않고, 통합상담소가 왜 필요한지 정책 검토도 하지 않고, 피해자 지원 현장 단체들과의 소통도 없이 ‘여성폭력피해 통합상담소(가)’전환을 발표한 것이다. 모래 위에 지어진 집 같은 “통합상담소”에선 제대로 된 지원이 불가능하다.
🔥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예산을 들여다보고 바꿔나갈 것이다
아직 예산은 통과되지 않았다. 11월과 12월, 국회는 정부 예산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의결한다. 아직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민우회는 연대 단체들과 함께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 감축을 막기 위한 1만인 시민 선언’의 흐름을 만들고, 10월 30일 국회 앞에서 500여 명의 시민과 함께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지원 예산 삭감 폐기”를 요구하였다. 국가는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시민이 안전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고, 폭력 피해자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은 그동안 수많은 여성폭력 피해자들의 싸움과 함께 연대한 이들의 목소리로 다져진 제도와 정책의 결괏값이다. 우리는 정부 정책에서 여성을 지우려는 시도에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아직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싸우고 지켜나갈 것이다. 더이상 여성 인권이 퇴행하지 않도록 정책 방향과 예산안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꿔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