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회원이야기_민원은 권리다
[2020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회원이야기
민원은 권리다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줄어들었다. 대면 접촉을 좋아하는 나는 스트레스를 풀지 못해 이런저런 비대면 강의, 모임 등에 드나드는 것을 시도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비대면의 편리와 안락이 비말을 튀겨가며 세상의 온갖 것을 몇 시간이고 욕하는 것을 대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난 여름의 대유행 이후 대면 접촉을 완전히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찾은 것이 민우회의 온라인 소모임 활동이었다. 평소 TV를 보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 신청을 일삼는 나였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민원도 넣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다양한 방법으로 민원을 넣고 민원 매뉴얼을 만든다는 소모임 소개에 주저 없이 신청서를 작성했다.
불법촬영 범죄가 있었는데 “안전한 학교 우수사례”가 될 수 있나?
내가 가장 먼저 민원을 넣은 이슈는 “2020년(2019년 실적) 교육부 주관 시도교육청 평가 결과 발표”에 대한 것이었다. 경남지역 한 고등학교의 여자 교직원 화장실 불법 촬영 범죄 발생에도 교육부는 그 학교가 속한 경남교육청을 “안전한 학교 구현” 우수사례로 선정하였다. 우수사례로 선정되면 해당 내용을 다른 교육청에 알리고 유사한 정책이 확산될 수 있도록 공유 기회를 제공하며 전문가 자문 등이 지원되는데, 명백한 범죄인 불법촬영 기기 설치가 있었음에도 우수사례로 선정되었다면 추후 학교라는 공간이 진정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는지 걱정스럽다는 것이 민원 신청의 취지였다.
국민신문고를 두드려라! 둥!둥!둥!
궁금하고 화가 나는 사안이 있다고 해서 민원 제기가 다 가능하지는 않았다. 먼저 해당 사안이 어떤 행정 부처 소관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 또는 행정에 대한 민원이라면 대부분 국민신문고 홈페이지를 통해 민원 제기가 가능하다. 그러나 막상 민원신청서를 작성하려고 보니 어떻게 적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나는 ① 왜 이 사안이 문제인지, ② 구체적으로 어떤 해결을 바라는지, 두 개의 기준을 잡고 민원 내용을 써내려갔다. 구체적으로는 시도교육청 평가 기준이 무엇인지, 그 기준에 따라 왜 경남교육청이 우수사례로 선정되었는지, 선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우수사례 발표 이전에 경남지역 한 고등학교의 불법촬영 범죄는 이미 기사화되었는데 선정을 철회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를 물었다.
고구마 답변과 사이다 모임
담당부서인 교육부 학교정책과에서는 교과서적인 답변을 주었다. 서면과 면접을 통한 질적 평가에 의해 경남교육청의 외부 전문 위원 확보나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 등이 높게 평가되었고, 경남교육청이 이미 우수사례로 선정된 뒤에 불법촬영 범죄가 기사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가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나의 걱정은 하나도 해소되지 않았다. 우수사례 선정 ‘결정’이 불법촬영 범죄 ‘기사화’보다 먼저라 하더라도 우수사례 ‘발표’는 기사화 한참 뒤에 있지 않았나? 각 지역 교육청이 분야별 우수사례에 고르게 선정되도록 하겠다는 것이 이 평가의 취지인가? 교육 현장을 바꿀 수 없는 평가가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형식의 분노를 풀어준 것은 해당 민원 담당자가 아니라 소모임을 함께한 분들이었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답변에 같이 화를 내고 학교에 보장되어야 하는 안전이 무엇인지에 대한 내 생각에 공감을 표했다. 이 민원 이후에도 우리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선정성 표기에 대한 민원1, KBS N SPORT 여자 프로농구 하승진 해설위원의 여장에 대한 민원,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데이트폭력 장면 방영에 대한 민원 등을 제기했다. 분노를 논리적으로 풀어내 원하는 해결책이 무엇인지 글로 정리하는 것의 어려움, 전화로 넣는 민원을 위해 대본을 쓰고 상담원 분의 피로를 함께 견디는 긴장감, 도돌이표 같은 답변에 다시 물음표를 던지고 또 답변을 기다리는 지난함도 같이 고민하고 같이 견디니 모두 다 시도할만한 일이었다.
우리의 활동을 정리하고 민원 넣는 방법을 소개하는 매뉴얼도 만들었다. 국민신문고 홈페이지 대문에는 “국민의 작은 소리도 크게 듣겠”다는 문구가 걸려있는데 누군가에게는 작은 소리를 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될 수 있기에 우리가 만든 매뉴얼이 가이드라인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과 불합리를 이야기하고 그에 대해 답변을 받을 권리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민원 제기는 누구라도 누릴 수 있는 권리니까.
1) 여성이 비스듬히 앉은 이미지를 선정성 등급 표시 픽토그램으로 사용하고 있어 개선을 요구했다.
민원소모임 ‘이건또뭐야’에서 제작한 민원 매뉴얼 표지. QR 코드를 통해 소모임 후기와 민원 매뉴얼 PDF 파일을 확인할 수 있다.
은미
❚여는 민우회 회원
10년째 민우회 회원, 프로민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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