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민우ing_여성들의 잃어버린 일상을 찾아서
[2020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민우ing
여성들의 잃어버린 일상을 찾아서
일상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막상 잘 챙기기는 어려운 밥, 잠, 쉼. 성평등복지팀에서는 생존할 권리를 넘어 [‘1인분’의, 충분한] 밥, 잠, 쉼 조건을 만들기 위해 여성들의 일상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여성들의 이야기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조건을 살펴보고, 제도와 일상의 연결고리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3차례 진행된 일상 재구성 집담회에서는 비혼 프리랜서 여성, 직장맘, 교대·야간 근무자 14명을 만나 일상을 영위하기 어려운 조건에 대해 나눴다. 집담회에 이어 온라인 설문을 통해 조금 더 폭넓은 대상의 여성들의 밥, 잠, 쉼 경험을 듣고 변화가 필요한 지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들이 못 먹고, 못 자고, 못 쉬는 이유는?
온라인 설문과 집담회 참여자들의 밥, 잠, 쉼 방해요소는 장시간 노동과 긴 출퇴근 시간, 독박 가사/돌봄 노동,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가구/가족을 중심으로 한 제도의 설계에 대한 문제 등이었다. 비혼 프리랜서 여성들의 경우, 들어오는 일에 따라서 일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밥, 잠, 쉼에 대한 고정적인 시간을 두기 어려워했다. 바쁠 때는 그나마 영양을 챙길 수 있는 김밥과 같은 간단한 음식으로 때우며 일을 하고 있었다. 쉼은 경제적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 일을 멈추고 쉬는 것을 어려워했다. 퇴직금, 실업급여 등의 사회적 안전망에서 배제되어 있어 일이 들어오면 해야 한다는 생각에 밤을 새면서 일을 하거나 쉬는 날이 기쁘기 보다 ‘불안감’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직장맘의 경우 밥, 잠, 쉼을 비롯한 일상이 아이/가족을 중심으로 맞춰져 있어 스스로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가족과 밥을 먹을 때, 반찬을 챙기기 위해 “10번도 넘게 일어나거나”, “혼자만 밥을 차리는” 등 가족들에게 맞춰야 하는 밥 시간이 스트레스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퇴근 후 쌓여있는 집안일을 하느라 늦게 자거나, “일을 하거나 제 3의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잠을 줄여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기도 했다. “밥은 노동이구요. 쉼은 없구요. 잠을 줄여서 자투리로 쉼을 하는 것 같아요.”라는 집담회 참여자의 말처럼 직장맘은 밥, 잠, 쉼 모두 충분히 하기 어려웠다.
교대·야간 근무자들의 경우, 일상의 패턴이 일에 의해 주기적으로 달라져 수면시간과 밥을 먹는 시간, 쉼을 위한 시간 역시 모두 영향을 받고 있었다. 주간과 야간으로 노동시간이 바뀌며 달라지는 수면패턴으로 인해 불면에 시달리고, 수면제를 복용하거나 낮 시간에 잠을 자기 위해 암막커튼을 달고 수면안대를 착용하며 잠을 청하기도 했다. 반복되는 잠 시간의 변화로 한 번 누우면 1~2시간은 잠들기 어렵고, 잠들어도 자주 깨기도 했다. 휴일은 주로 몸의 회복을 위한 시간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근무표에 따라 일상의 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약속을 잡기 어렵고’, 무언가 배우고 싶어도 마감돼 ‘생활의 폭’이 좁아진다고 느끼고 있었다. 노동시간에 맞춰 늦은 시간에 밥을 먹고 더부룩함을 느끼거나 잠을 잘 자지 못해 예민해지고, 우울해지는 등의 신체적 변화를 느끼기도 했다. 일 중심으로 설계된 24시간 노동체제로 인해 몸의 회복이 가능한 일상을 보내기도 어려웠다.
일상의 불평등 - 밥, 잠, 쉼이 코로나19 이후 더 어려워졌다
로나19는 여성들이 ‘일상의 불평등’을 더욱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온라인 설문과 집담회 참여자들은 식구들의 밥을 차리느라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어 쉼이 사라졌거나 학교가 멈추고 비대면 교육으로 수업이 전환되며 퇴근 후 아이의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었다고 말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동시에 가사와 돌봄을 병행하기 어려워 휴가를 쓰고 돌봄을 담당하거나, 휴직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밥, 잠, 쉼〉 질이 떨어졌냐는 질문에 온라인 설문 참여자들은 대체로 그렇다고 응답했다. 코로나19 이후, 돌봄 제도의 공백 상황에서 여성들은 가족에게 전가된 돌봄의 공백을 전적으로 책임지며 어려움을 겪고,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는 저소득 임시·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여성 노동자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있었던 한국사회의 불평등이 취약한 사회적 조건 속에 있었던 여성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제도적 공백과 불평등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 이때, 우리는 어떤 변화를 만들어가야 할까.
충분한 밥, 잠, 쉼이 가능하려면
온라인 설문과 집담회 참여자들의 밥, 잠, 쉼을 방해하는 요소는 장시간 노동인 경우가 많았다. 장시간 노동시간은 개인이 시간 부족을 느끼게 하는 주된 이유였으며 가장 줄이고 싶은 이유였다. 야근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는 직장맘의 경우, 노동시간 단축은 일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이기도 했다. 누구든 시간압박에 느끼지 않고, 삶의 회복이 가능한 노동시간 단축이 모색되는 것이 충분한 밥, 잠, 쉼을 위한 조건일 것이다.
여성들이 밥, 잠, 쉼을 하기 어려운 주된 이유로는 가사/돌봄의 독박 문제가 있었다. 코로나19 동안 여성이 가족 내에서 돌봄 전담자이며, 보조 생계부양자라는 ‘사회적 인식’ 속에서 여성들은 몇 배가 된 노동을 견뎌야만 했다. 이러한 사회 인식이 변화하지 않으면 여성의 가사/돌봄의 독박 현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에게 돌봄을 전가하지 않는 국가차원의 돌봄 정책과 돌봄 체계의 마련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가족 안에서 불평등한 가사/돌봄 현실을 바꾸기 위한 남성의 돌봄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 조건 역시 참여자들에게 충분한 밥, 잠, 쉼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이야기되었다. 지금의 한국 복지제도는 정규직을 중심으로, 4대 보험을 비롯한 사회적 안전망을 두고 있다. 그렇기에 코로나19 동안 불안정한 노동조건에 있는 많은 여성노동자의 경우 보호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온라인 설문과 집담회 참여자들은 충분한 밥, 잠, 쉼을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 “안정적인 노후 복지”, “고정된 수입” 등 일을 갑자기 중단해 생계가 어려워졌을 때도 일상을 무너지지 않는 사회적 조건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누구든 제도 밖으로 밀려나지 않고 삶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이 마련되는 것이 시급한 것이다.
개인단위를 기준으로 한 복지제도의 지원 역시 필요한 조건으로 이야기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지급된 재난지원금이 다른 가족구성원들의 권리에 대한 고려 없이 세대주를 중심으로 지원되며 가정주부, 가정폭력 피해자, 청소년/아동 등에게 있는 시민의 권리가 배제되기도 하였다. 복지제도의 지원이 누구든 배제되지 않는 기준인 개인단위로 자리 잡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집담회와 온라인 설문을 통해 이야기된 충분한 밥, 잠, 쉼을 위해 더 필요한 조건들은 여성뿐만 아니라 모두의 일상이 가능한 삶을 만들기 위한 조건들이었다. 잃어버린 우리들의 일상을 다시 찾기 위해서 변화를 말해야할 때이다.
코로나19 이후, 나의 밥, 잠, 쉼 질 변화
온라인 설문 내용 중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했을 때, 현재 밥, 잠, 쉼의 질은 얼마나 떨어졌나요?"라는 질문에 전체 설문 참여자 130명 중, 10~20% 하락(20명), 20~30% 하락(33명), 30~50% 하락(26명), 50~70% 하락(17명) 등 대체로 떨어졌다고 답했다.
쎄러(서지영)
❚여는 민우회 성평등복지팀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기 위해 곧 2주 휴가를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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