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억 을
걷 는 시 간
도담(김은지)/광주여성민우회 다솜누리
은은하게 미지근하게 오래 가고 싶은
“잘 지내고 있어요. 연락할게요!”
문 앞에 서서 밝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문이 닫히고 뒤돌아 선 등이 코너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쯤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무너지듯 쏟아져 내렸다. 내가 담당하던 다솜인*을 처음 정신과병원에 입원시켰던 날이었다. 다솜인을 입원시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명확했다. 반복적인 자해. 당직 활동가들은 밤새 잠도 자지 않고 다솜인을 지켜보며 자해를 하지 못하도록 온 몸으로 막아냈다. 때때로 병원 응급실에 가기도 했다. 나는 당직을 하지 않는 날에도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오늘은 제발 당직자에게 아무 연락도 안 왔으면’ 하는 생각들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혹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달라질 수는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솜인은 우리가 과거라 부르는, 이미 흘러가버렸다고 생각하는 시간 속으로 다시, 다시 또 다시 되돌아가 피해경험을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폭력피해자, 경험자, 생존자 그 어디쯤
“여기 있으면 제가 계속 성폭력피해자라는 걸 생각하게 돼요.” 다른 다솜인의 퇴소사유였다. 생활규칙 위반이 잦기는 했지만**사실 아직은 지원을 더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고, 최대한 쉼터에서 더 생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설득을 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성폭력피해자를 지원하는 쉼터에서 퇴소하고 싶은 이유가 본인이 성폭력피해자임을 계속해서 떠올려야 하는 것이라니. 설득할 수 없다기보다는 설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쉼터 활동가로서 많은 것들을 고민하게 하는 말이었다. 반성폭력운동 과정에서 사용하는 용어에 대한 논의는 계속 되어왔다. 여성의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성폭력피해라는 것을 명백히 하는 것에서부터 피해자를 타자화 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성폭력피해생존자, 그리고 이제는 성폭력피해경험자까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용어의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다솜인이 나에게 던졌던 말은 성폭력피해, 경험, 생존이라고 하는 용어들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여기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다솜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성폭력피해와 경험이라는 것은 어떤 찰나의 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시간 속에서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성폭력이라 정의내린 피해들이 발생하기 전, 발생한 상황, 발생한 이후, 그리고 내가 성폭력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에 대해 말하고 말한 이후의 상황들까지 모두 연속적으로 존재하고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폭력피해자에게 지원을 하면 자연스레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한다. 더 나아진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는 각자에게 다를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전의 것과는 다른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을 생각한다. 하지만 성폭력피해자의 경험은 단순히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쉼터 거실에 모여 앉아 별 것 아닌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며 웃기도 하고, 맛있는 것들을 먹으며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며 가끔은 쉼터 밖으로 나가 환기를 시키기도 한다. 그러다 가끔 TV에서 나오는 성폭력피해 관련 뉴스나 영화에 몸이 얼어붙기도 하고, 경찰서·검찰청·법원에서 피해 진술을 하고 돌아올 때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가족과의 만남 이후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흔들리기도 한다. 성폭력피해자에게 “언제까지 이럴 것인지”, “이미 지나간 일이 아닌지”, “이제 극복해야지” 따위의 얘기를 하며 상처 주는 상황들을 종종 마주한다. 이것은 성폭력피해경험이라는 것이 과거의 어떤 순간에 일어난 것이고 성폭력피해자는 현재를 살고 있다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성폭력피해자는 이따금씩 과거의 자신과 마주치기도 하고 과거의 자신과 얽혀 있는 현재의 자신을 보게 되기도 하며 변화되어 있는 자신을 느끼기도 한다. 시간순서에 따른 당연한 흐름은 사실 없는 것일지 모른다.
지치고 힘들 때 네 곁에 서 있을게
쉼터를 퇴소하는 사유는 다양하다. 입소기간이 끝나서 자연스럽게 자립하기도 하고, 생활규칙을 위반해서 다른 쉼터로 옮겨가거나 독립하기도 하며, 여러 가지 이유로 본인이 퇴소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사유로 퇴소를 하게 되든 끝에는 “잘 살아요” 라는 인사가 따라 붙는다. 듣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함께 지낼 때는 아무리 지지고 볶았던 순간이 있었더라도 진심으로 다솜누리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잘 살기를 바란다. 다솜누리에 입소하는 다솜인은 대부분 친족성폭력피해자다. 가족에게 보호와 지지를 받는 다솜인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다솜인도 있다. 성폭력에 대한 방관, 동조, 비난은 성폭력피해를 치유하는데 있어 큰 걸림돌이 된다. 이는 친족성폭력피해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성폭력피해만이 문제가 아니다. 다솜인이 피해 이전에 살고 있던 세상은 이미 신뢰할 수 없는 안전하지 못한 곳이었을 수 있다. 가족과 사회가 제 역할을 다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퇴소한 다솜인들에게 연락이 온다. “오늘 일이 힘들었다”, “아프다”, “승진을 하게 됐다”, “고양이를 입양하게 됐다” 등등 소소한 일상부터 다솜누리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내용의 이야기가 됐든 다솜누리를 떠올렸다는 것 자체가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힘들 때 비빌 언덕은 필요하다. 가족, 친구, 애인, 선후배, 동료 등등 자신을 지지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라고 말한 다솜인이 있었다. 이런 곳? 그 다솜인에게 ‘이런 곳’은 무엇이었을까?
치유에는 시간이 든다.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성폭력에 대한 통념에서 벗어나 페미니즘 관점에서 재해석해야 한다. 피해로 인해 깨져버린 신뢰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한다. 지금까지 문제를 해결했던 방식을 변화시키고, 다른 문제해결지도를 그려야 한다. 새로운 관계맺기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피해 당사자의 노력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피해경험 재해석, 신뢰회복, 자기방어, 문제해결방식 변화, 새로운 관계맺기는 당사자의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 다솜누리는 일상 속에서 다솜인들이 자신의 의사대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이를 존중하고 결과에 따른 책임을 스스로 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폭력적인 방식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문제는 해결할 수 있으며, 회피하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타인의 경계를 존중하고 이를 침범했을 때는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는 것을 감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함께 고민하고 노력한다.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다시 쌓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충분히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과정은 쉽지 않다. 지칠 때도 많고 지난한 과정을 견뎌야 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성폭력피해자가 고립되지 않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힘이 생겼을 때 곁에 함께할 누군가가 있는 것이다. 거창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급하게 입소하느라 아무런 짐을 챙겨오지 못한 다솜인을 위해 자신의 옷, 신발, 가방을 챙겨준 회원들, 직접 가져다줄 수 없어서 대신 보낸다며 후원금을 보내준 회원들, 다솜인들 먹으라고 쌀, 김치, 과일 등을 보내는 회원들, 자립하는 다솜인을 위해 필요한 물품들을 꼼꼼히 챙겨준 재능기부센터 선생님들이 있다. 오롯이 홀로 있지 않도록 우리가 함께 연대하고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계속 해서 전달하는 것. 그것이 공동체의 역할이 아닐까.
* 입소자, 생활인 대신 ‘다솜인’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것에는 다솜인들이 다솜누리(성폭력피해자쉼터)라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이자, 공동체를 주체적으로 함께 꾸려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 다솜누리는 여러 사람이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합의된 약속들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다솜누리는 월 2회 다솜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회의 전 미리 제출한 안건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며, 이전 회의에서 합의했던 내용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수정해야 할 부분은 없는지 재논의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다솜인들은 서로가 생각하는 경계에 대해 공유하고 공생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 성폭력피해자는 폭력상황을 견디거나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 때 학습한 경험을 토대로 다른 상황,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전략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전략은 때로는 본인과 상대에게 효과적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착취적인 관계를 지속하거나, 피해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거나, 다른 사람과 늘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 있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적절한 전략이라는 것은 존재하며, 이전에 학습했던 전략은 버리고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할 때도 있다.
기 억 을
걷 는 시 간
도담(김은지)/광주여성민우회 다솜누리
은은하게 미지근하게 오래 가고 싶은
“잘 지내고 있어요. 연락할게요!”
문 앞에 서서 밝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문이 닫히고 뒤돌아 선 등이 코너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쯤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무너지듯 쏟아져 내렸다. 내가 담당하던 다솜인*을 처음 정신과병원에 입원시켰던 날이었다. 다솜인을 입원시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명확했다. 반복적인 자해. 당직 활동가들은 밤새 잠도 자지 않고 다솜인을 지켜보며 자해를 하지 못하도록 온 몸으로 막아냈다. 때때로 병원 응급실에 가기도 했다. 나는 당직을 하지 않는 날에도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오늘은 제발 당직자에게 아무 연락도 안 왔으면’ 하는 생각들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혹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달라질 수는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솜인은 우리가 과거라 부르는, 이미 흘러가버렸다고 생각하는 시간 속으로 다시, 다시 또 다시 되돌아가 피해경험을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폭력피해자, 경험자, 생존자 그 어디쯤
“여기 있으면 제가 계속 성폭력피해자라는 걸 생각하게 돼요.” 다른 다솜인의 퇴소사유였다. 생활규칙 위반이 잦기는 했지만**사실 아직은 지원을 더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고, 최대한 쉼터에서 더 생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설득을 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성폭력피해자를 지원하는 쉼터에서 퇴소하고 싶은 이유가 본인이 성폭력피해자임을 계속해서 떠올려야 하는 것이라니. 설득할 수 없다기보다는 설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쉼터 활동가로서 많은 것들을 고민하게 하는 말이었다. 반성폭력운동 과정에서 사용하는 용어에 대한 논의는 계속 되어왔다. 여성의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성폭력피해라는 것을 명백히 하는 것에서부터 피해자를 타자화 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성폭력피해생존자, 그리고 이제는 성폭력피해경험자까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용어의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다솜인이 나에게 던졌던 말은 성폭력피해, 경험, 생존이라고 하는 용어들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여기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다솜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성폭력피해와 경험이라는 것은 어떤 찰나의 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시간 속에서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성폭력이라 정의내린 피해들이 발생하기 전, 발생한 상황, 발생한 이후, 그리고 내가 성폭력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에 대해 말하고 말한 이후의 상황들까지 모두 연속적으로 존재하고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폭력피해자에게 지원을 하면 자연스레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한다. 더 나아진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는 각자에게 다를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전의 것과는 다른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을 생각한다. 하지만 성폭력피해자의 경험은 단순히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쉼터 거실에 모여 앉아 별 것 아닌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며 웃기도 하고, 맛있는 것들을 먹으며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며 가끔은 쉼터 밖으로 나가 환기를 시키기도 한다. 그러다 가끔 TV에서 나오는 성폭력피해 관련 뉴스나 영화에 몸이 얼어붙기도 하고, 경찰서·검찰청·법원에서 피해 진술을 하고 돌아올 때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가족과의 만남 이후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흔들리기도 한다. 성폭력피해자에게 “언제까지 이럴 것인지”, “이미 지나간 일이 아닌지”, “이제 극복해야지” 따위의 얘기를 하며 상처 주는 상황들을 종종 마주한다. 이것은 성폭력피해경험이라는 것이 과거의 어떤 순간에 일어난 것이고 성폭력피해자는 현재를 살고 있다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성폭력피해자는 이따금씩 과거의 자신과 마주치기도 하고 과거의 자신과 얽혀 있는 현재의 자신을 보게 되기도 하며 변화되어 있는 자신을 느끼기도 한다. 시간순서에 따른 당연한 흐름은 사실 없는 것일지 모른다.
지치고 힘들 때 네 곁에 서 있을게
쉼터를 퇴소하는 사유는 다양하다. 입소기간이 끝나서 자연스럽게 자립하기도 하고, 생활규칙을 위반해서 다른 쉼터로 옮겨가거나 독립하기도 하며, 여러 가지 이유로 본인이 퇴소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사유로 퇴소를 하게 되든 끝에는 “잘 살아요” 라는 인사가 따라 붙는다. 듣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함께 지낼 때는 아무리 지지고 볶았던 순간이 있었더라도 진심으로 다솜누리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잘 살기를 바란다. 다솜누리에 입소하는 다솜인은 대부분 친족성폭력피해자다. 가족에게 보호와 지지를 받는 다솜인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다솜인도 있다. 성폭력에 대한 방관, 동조, 비난은 성폭력피해를 치유하는데 있어 큰 걸림돌이 된다. 이는 친족성폭력피해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성폭력피해만이 문제가 아니다. 다솜인이 피해 이전에 살고 있던 세상은 이미 신뢰할 수 없는 안전하지 못한 곳이었을 수 있다. 가족과 사회가 제 역할을 다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퇴소한 다솜인들에게 연락이 온다. “오늘 일이 힘들었다”, “아프다”, “승진을 하게 됐다”, “고양이를 입양하게 됐다” 등등 소소한 일상부터 다솜누리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내용의 이야기가 됐든 다솜누리를 떠올렸다는 것 자체가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힘들 때 비빌 언덕은 필요하다. 가족, 친구, 애인, 선후배, 동료 등등 자신을 지지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라고 말한 다솜인이 있었다. 이런 곳? 그 다솜인에게 ‘이런 곳’은 무엇이었을까?
치유에는 시간이 든다.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성폭력에 대한 통념에서 벗어나 페미니즘 관점에서 재해석해야 한다. 피해로 인해 깨져버린 신뢰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한다. 지금까지 문제를 해결했던 방식을 변화시키고, 다른 문제해결지도를 그려야 한다. 새로운 관계맺기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피해 당사자의 노력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피해경험 재해석, 신뢰회복, 자기방어, 문제해결방식 변화, 새로운 관계맺기는 당사자의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 다솜누리는 일상 속에서 다솜인들이 자신의 의사대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이를 존중하고 결과에 따른 책임을 스스로 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폭력적인 방식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문제는 해결할 수 있으며, 회피하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타인의 경계를 존중하고 이를 침범했을 때는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는 것을 감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함께 고민하고 노력한다.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다시 쌓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충분히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과정은 쉽지 않다. 지칠 때도 많고 지난한 과정을 견뎌야 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성폭력피해자가 고립되지 않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힘이 생겼을 때 곁에 함께할 누군가가 있는 것이다. 거창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급하게 입소하느라 아무런 짐을 챙겨오지 못한 다솜인을 위해 자신의 옷, 신발, 가방을 챙겨준 회원들, 직접 가져다줄 수 없어서 대신 보낸다며 후원금을 보내준 회원들, 다솜인들 먹으라고 쌀, 김치, 과일 등을 보내는 회원들, 자립하는 다솜인을 위해 필요한 물품들을 꼼꼼히 챙겨준 재능기부센터 선생님들이 있다. 오롯이 홀로 있지 않도록 우리가 함께 연대하고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계속 해서 전달하는 것. 그것이 공동체의 역할이 아닐까.
* 입소자, 생활인 대신 ‘다솜인’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것에는 다솜인들이 다솜누리(성폭력피해자쉼터)라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이자, 공동체를 주체적으로 함께 꾸려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 다솜누리는 여러 사람이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합의된 약속들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다솜누리는 월 2회 다솜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회의 전 미리 제출한 안건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며, 이전 회의에서 합의했던 내용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수정해야 할 부분은 없는지 재논의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다솜인들은 서로가 생각하는 경계에 대해 공유하고 공생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 성폭력피해자는 폭력상황을 견디거나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 때 학습한 경험을 토대로 다른 상황,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전략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전략은 때로는 본인과 상대에게 효과적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착취적인 관계를 지속하거나, 피해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거나, 다른 사람과 늘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 있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적절한 전략이라는 것은 존재하며, 이전에 학습했던 전략은 버리고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할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