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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2021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기획_페미니스트 정부, 여성들은 행복해졌나

202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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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하반기-함께가는여성] 기획

 

페미니스트 정부, 여성들은 행복해졌나


 

약 5개월 정도 후면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끝난다. ‘문재인 정부 5년’이라는 시간이 한국여성민우회 회원들에게는 어떤 시간으로 인식되고 있을까. 개인마다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지난 5년 동안 민우회가 해왔던 활동들을 지지한다면, 문재인 정부 5년이 짧거나 아쉽게 느껴지는 회원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민우회 회원들뿐만 아니라 대다수 여성/페미니스트 시민들에게 문재인 정부 5년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이어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는 것을 또 다시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공허한 외침, ‘페미니스트 대통령’

 

페미니스트들이 치열하게 고민해온 단어들이 정치·선거 구호로 채택되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단어에 포함된 여성/페미니스트들의 고민들이 충분히 이해된 상태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초의 또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내세운 박근혜 정부에서 ‘여성’이 왜곡·오용·남용되었듯이 문재인 정부에서 ‘페미니스트’ 또한 왜곡·오용·남용의 길을 걸었다. 이로 인해 여성/페미니스트들은 왜곡·오용·남용된 단어를 페미니즘의 언어로 되살리기 위해 고된 시간을 보내야 했다.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페미니스트 대통령’ 선언이 ‘여성 대통령’만큼 공허한 구호라는 것은 이미 선거기간에 확인되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선언한 그날, 문재인 후보는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성소수자 페미니스트에 대한 대답을 회피했다.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가 “동성애와 동성혼이 법제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보낸 질의에 “동성애·동성혼을 사실상 허용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발언했다. 

 

“차별에 반대한다”고 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찬성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다. 그나마 최근 법안에 대한 “고려”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지금 필요한 건 ‘고려’가 아니라 ‘제정’이다. 전 세계를 향해 차별과 불평등의 해소를 강조하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청와대 2021)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국민의 인권은 외면하고 있다. 부끄러움은 왜 여성/페미니스트 시민의 몫이어야 할까. 

 

 

젠더관점 부재한 정부 인사, 국가가 시민의 인권 위협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30% 수준에서 출발해 단계적으로 임기 내 남녀 동수내각 실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집권 후 이뤄진 첫 내각에서는 18개 부처 중 5개 부처와 보훈처(장관급) 수장을 여성으로 임명해 여성 비율 30%를 맞추려는 노력을 보였다. 임기 중반인 2020년 초에는 여성비율이 33%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집권 5년차를 앞두고 내각 여성비율은 16%까지 떨어졌고, 2021년 10월 현재는 4명으로 22%이다. 내각의 성별균형은 또 다시 미뤄졌다. 

 

남성(성) 중심의 구조와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정치에서 최고위직에 여성이 임명되는 것만으로 조직이 여성친화적이거나 성평등한 방향으로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여성이 페미니스트는 아니기 때문에 여성 수장이 조직을 성평등한 방향으로 바꿀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질과 자격 논란을 더 겪고, 더 가혹하고 더 낮은 평가를 받는 현실과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여성이 의사결정권한을 가져야 하고, 그들에 대한 지지와 지원이 필요하다.

 

이러한 토대를 만드는 의무와 책임이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 기용에서는 페미니스트 정치(인)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탁현민 사퇴’를 건의한 후 “장관부터 경질하라”는 여론의 후폭풍을 겪어야 했던 정현백 전 여성가족부 장관, 반대로 성차별적 인식으로 논란이 됐음에도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의 자리를 지켰고, 청와대를 나간 후에는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얼마 후에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으로 승진해 돌아온 탁현민 사례는 문재인 정부에서 페미니스트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함께 서울·부산 전 시장의 위력 성폭력 사건으로 치러진 보궐선거를 “국민 전체가 성인지 감수성을 집단학습할 기회”라고 발언했던 이정옥 전 여성가족부 장관, 故 변희수 하사에 대해 전역처분을 내렸고, 법원의 전역처분 위법 판결에 대해 항소를 고민했던 육군, 군 성폭력 사건 해결에 미온적인 국방부 등의 사례는 젠더 관점이 부재한 사람을 정부가 정책결정자로 임명했을 때 국가가 시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성평등 정책 거부한 문재인 정부와 여당, 백래시를 키우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여성/성평등 정책의 진전이 이뤄졌다면, 그것은 여성/페미니스트 시민들의 투쟁 덕분이다. 낙태죄, 일터에서의 성차별과 성폭력, 온·오프라인 불법촬영, 온라인 성매매·성착취, 스토킹, 데이트폭력 등 성별에 기초한 구조적 폭력의 문제들을 사회적으로 가시화하고, 여론을 형성하고, 법 제·개정까지 이어지게 한 것은 여성/페미니스트 시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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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설명 : 19대 대선 당시 여성신문사와 범여성계 연대기구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문재인 후보가 서약한 성평등 정책 서약서

*출처: 한국여성단체연합(2017)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는 민주정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여성/페미니스트 시민들의 활동과 투쟁에 놀라면서도 여성/페미니스트 시민들에게 반응하지도 책임을 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여성/페미니스트 시민들이 고생해서 만든 밥상을 차버리는 행패를 부렸다.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낙태죄를 존치시키는 내용을 법 개정안으로 발의했고,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이 아닌 ‘동의’로 변경하는 것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성폭력 범죄로 인한 여성/페미니스트 시민들의 고통은 범죄자가 된 동료 정치인에 대한 안타까움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더욱이 20대 여성/페미니스트 시민들은 20대 남성의 문재인 정부 지지 철회의 책임까지 뒤집어써야 했다. 

 

20대 남성 중심의 반(反)페미니즘 백래시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2016-2017년 촛불을 통해 소멸 위기까지 갔던 국민의힘(당시 자유한국당)이 지금 정권교체를 기대할 수 있게 된 데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페미니즘이 너무나 불충분하고 부족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성평등에 대한 확고한 원칙 없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여성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와 장애인, 이주민 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제어되지 않은 채 확산됐고, 이를 보수 정당 정치인들이 앞장서 정당화해주면서 반페미니즘 백래시가 더욱 힘을 얻는 악순환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이준석은 “성범죄 피해자는 여자가 대다수인 게 당연”하며, “여성들이 느끼는 두려움이나 차별은 망상이나 피해의식”이라며, 성차별의 구조와 현실을 지우는 반페미니즘 남성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 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당대표가 됐다. 그리고 이에 편승한 국민의힘 대선후보들은 ‘여가부 폐지(유승민)’, ‘무고죄 강화(윤석열)’, ‘패밀리즘(홍준표)’ 등을 여성정책의 이름으로 제시하며 성평등 가치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이렇게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를 키운 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다. 

 

 

여성/페미니스트 시민이 새로운 길을 내려면

 

문재인 정부 5년이 확인시켜준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만큼 문재인 정부도 여성/페미니스트 시민에게는 대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곤혹스러운 지점은 제3, 제4의 대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앞으로도 여성/페미니스트 시민들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만이 교대로 정치권력을 차지하는 정치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는 속에서 새로운 길이 곧바로 큰 길이 될 수 없다. 여성/페미니스트 시민들이 만드는 새로운 길이 큰 길이자 미래를 위한 길이 되기 위해서는 유권자로서든 후보자로서든 선거정치에서 집단적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기득권 거대 양당 정치체제에 균열을 내거나 대안 정치세력이 될 때 여성/페미니스트 시민들이 만드는 길이 한국사회가 가야 할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을 만드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겠지만, 함께 한다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권수현

❚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2016년부터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과 인연을 맺어 여성운동 활동가이자 연구자로 생활하고 있다. 여성운동/여성학과 정치운동/정치학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참고문헌 

- 청와대. 2021. “[전문] 문 대통령 SDG 모멘트(지속가능발전목표 고위급회의) 개회 세션 연설문.”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893357

- 한국여성단체연합. 2017. “제19대 대통령 후보 초청 성평등정책 간담회 개최.”http://women21.or.kr/politics/9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