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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2021 상반기-함께가는 여성] 아홉 개의 시선_반가운 ‘가족’ 만들려고, 성평등 동화책 만들게 된 이야기

2021-06-01
조회수 1811

[2021 상반기-함께가는 여성] 아홉 개의 시선

반가운 ‘가족’ 만들려고, 성평등 동화책 만들게 된 이야기

 

성평등 동화책을 왜 만들까?

 

시작은 회원 ‘사슴’과의 대화였다. ‘사슴’은 동화책 속 여성 캐릭터가 너무 납작하게 그려진 경우가 여전히 많아서 고민이라고 했다. 앞치마 입고 주방에 있는 이는 ‘엄마’로만 그려지는 장면을 반복해서 발견하다 보니, 아이들과 읽을 만한 괜찮은 책을 찾기가 어렵다며 성평등한 책을 직접 만들고 싶다고 했다. 더 많은 페미니즘 서사가 생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모두 기다리고 있을 것은 분명했고, “좀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동네 페미니스트를 찾습니다~”라는 홍보에 곧 여럿이 모였다. 그렇게 마스크 장착한 첫인상이 서로의 영원한 인상이 될 것임을 꿈에도 모르고 서로의 눈 아래를 알지 못하게 채 성평등 동화 제작모임 ‘상상벋길’이 꾸려졌다. 2020년 봄이 시작되는 4월이었다.

 

이미지 설명: 동화책 출판기념 북토크에서도 서로의 코를 볼 수 없었던 상상벋길 구성원들. 이응, 사슴, 어흥이, 호롱, 지영, 이화, 앤.


모이긴 했는데 어떻게 만들까

 

그렇게 ‘왜’ 성평등 동화책을 만들고 싶은지 분명한 이들이 모였지만, 막상 ‘무엇’을 만들지는 이제부터 찾아가야 하는 일이었다. 우선 차별과 평등에 대한 서로의 감각을 맞추고자 매주 화요일 저녁, 세미나에서 총 20여 권의 동화책을 한 권 한 권 분석하며 질문거리를 나누었다. ‘롤모델로 삼고 싶은 등장인물의 성별 다양성’, ‘삽화나 대사에서 드러나는 차별 요소’, ‘삽화 속 성별에 따른 색깔 구분’, ‘분홍색에 대한 집착 또는 질색의 경험’ 등. 질문과 답을 나누면서 우리가 만들 ‘무엇’은 △다양한 가족 △성역할 고정관념 비틀기 △친밀한 관계 △주체적인 주인공 △자기 긍정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었다.

 

이후 이러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래동화 속 인물의 맥락을 입체적으로 다시 짚고 글감을 늘려나가며 여름과 가을을 보냈다. 그 결과, 전래동화에 종종 등장하는 ‘재혼에 따른 가족 결합’ 설정을 ‘가족이 되기로 한 두 여자아이가 나누는 낯선 감각’으로 해석하여, 동화책 〈반가워, 나의 가족〉을 제작할 수 있었다. 겨울이 시작되는 같은 해 11월이었다. 책이 완성될 동안 모임 구성원이 마스크를 벗고 서로의 코를 확인한 것은 단 2번의 줌 회의가 전부였다.

 

그래서 가족이 반갑다는 것은 뭘까

이미지 설명: 〈반가워, 나의 가족〉의 본문 내용

 

제목을 보고 누군가는 ‘가족’이라는 단어만 봐도 지겹다고 했다. 그럴 수 있다. 혈연·결혼으로 이뤄진 구성원만을 ‘가족’이라고 말하는 한국 사회·제도의 협소한 정의를 보면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제목은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고 싶은 가족, 내가 원하는 ‘가족’은 무엇으로 이뤄져 있을지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책표지 안쪽엔 일상 속 위안과 평화로움을 나누는 첫 번째 단계인 ‘가족’, 그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생각하며 구성원들이 직접 그린 그림이 있다. 이후 독자의 손에 닿은 책엔 각자가 그린 가족으로 이 부분이 가득 채워지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책에 담고 있는 이야기는 하나지만, 독자의 경험과 해석이 덧붙은 각각의 이야기로 마음에 남으면 좋겠다. 가령, ‘소통 없을 때 일어나는 선한 의지 간의 고군분투’. ‘부치 어린이의 서투른 자기 어필’. ‘낯가려도 타인의 고통에 눈 감지 않고 기꺼이 말 붙이는 자세’. ‘편식하지 말라는 규칙에 no라고 말할 용기와 공동행동’ 등.

 

〈반가워, 나의 가족〉이 더 많은 이에게 닿기 바라며 추가 제작을 계획하고 있다. 올해 연말 오픈될 2차 제작 신청에 관심 가져주시길……. (서울동북여성민우회 페이스북 팔로우하세요. @DBWOMENLINK)

〈반가워, 나의 가족〉은

 

연서는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림일기에 기록하곤 하는 아이입니다. 긴 머리를 쭈욱 올려서 높이 묶고 달리는 것을 좋아하고, 나뭇잎을 닮은 초록색 크레파스를 아끼곤 합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먼저 인사하는 건 떨리지만,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겐 자신의 소중한 인형을 소개해주고 싶어 합니다. 때론, 마음에 드는 친구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새로운 놀이에 도전하기도 하죠.

 

그런 연서는 궁금합니다. 내일 낯선 동네로 이사를 하고 새로운 가족과 함께 살기로 했거든요. 동갑내기 자매와 첫인사도 하기로 했어요. 자매와의 만남을 앞두고 잠자리에 들지 못한 연서는 그림 일기장을 꺼내어 설렘과 긴장이 담긴 말들을 꾹꾹 눌러 적어봅니다. 과연 두 아이는 친해질 수 있을까요?

 

이응(권혜주)

❚ 서울동북여성민우회 사무국장

반려고양이와 함께, 동네에서 잘 쉬고 먹고 놀고 싸우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브리♥ 사료토 하지마♥